‘친재벌’ 미소에 ‘가시’가 보인다
▲ 19일 대통령 당선 확정 후 여의도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과 기쁨을 나누는 이명박 당선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러나 이 당선자와 삼성을 둘러싼 여러 공통분모는 오히려 삼성이 두발 뻗고 잠자기 어렵게 만들 요인이 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이명박 당선자의 청와대 입성이 삼성의 향후 입지에 득이 될지, 혹은 독이 될지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대선 기간 동안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이 외쳐온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는 분명 삼성의 귀가 솔깃할 만한 대목이다. 지난 8월 재경부가 제출한 상속증여세 개정안에는 기업이 만든 공익재단에 대한 계열사 지분 무과세 증여한도를 현재의 5%에서 20%로 늘리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이는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총수일가에 유리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반 삼성 정서의 현 정권 인사들과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아왔다. 그렇기에 금산법 적용 논란과 차명계좌 파문 등으로 안 그래도 취약한 지배구조의 또 다른 허점을 드러낸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 입장에선 더 없이 반가운 법안이 아닐 수 없다.
이 당선자 진영이 줄곧 주장해온 금산분리 완화 역시 삼성이 기대감을 부풀릴 만한 대목이다. ‘비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 4% 초과 보유 금지’ 규정이 깨질 경우 삼성이 다른 자본과 연대해 이른바 ‘삼성은행’을 소유할 가능성이 열리는 셈이다. 제조업 침체에 따라 삼성이 금융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삼을 것이란 추측이 난무했던 것은 지지율 1위를 달려온 이 당선자의 금산분리 완화 주장 덕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출범이 과연 삼성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곱게 꺼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삼성 입장에선 지배구조 보존이나 금융업 확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당장의 비자금 파문 수습이 최우선 과제다. 지난 12월 20일 ‘삼성 특검’에 임명된 조준웅 전 인천지검장이 필요에 따라 이건희 회장 소환도 가능함을 시사해 만만치 않은 수사 일정이 예고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대선 열기 때문에 오히려 이른바 ‘이명박 특검법’이 여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새해 4월 9일 총선 승리를 위해 대통합민주신당 등이 BBK 특검 불 지피기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명박 특검의 최장 수사기간은 57일인 반면,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기간은 최장 105일로 이변이 없는 한 4월 20일에서야 수사결과 발표가 가능할 전망이다. 총선 일정을 감안할 때 3월 한 달은 BBK 논란보다 삼성 비자금 특검의 여파가 여론을 뒤덮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친 재벌 성향으로 각인돼 온 이명박 당선자 진영 안팎에서도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몇몇 정치권 인사들은 “이 당선자 측이 BBK 특검에 쏟아질 비판적 관심을 분산시키고 이명박-삼성 유착 이미지가 총선 득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고려해 삼성 비자금 파문에 대해 적극 공세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축하금’ 논란을 삼성 특검 범위에 넣기 위해 애썼던 한나라당이 수사기간 중 현 정부 세력과 삼성의 부패 연결 고리 찾기에 주력할 수 있는 까닭에서다.
▲ 20일 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조준웅 특별검사. 청와대사진기자단 | ||
이명박 당선자 진영과 삼성 간의 인적 관계가 향후 삼성 입지에 어떻게 작용할지도 관심거리다. 이 당선자의 대선 승리 직후 고려대 선·후배 사이인 이명박 당선자와 이학수 삼성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의 인연이 주목을 받자 즉각 삼성 측에서 “두 분이 선후배 사이지만 개인적 친분은 절대 없다”고 밝히고 나섰다.
이명박 당선자 진영엔 이건희 회장을 근거리 보좌했던 전직 삼성 임원들이 포진해 눈길을 끌어왔다. 캠프에서 경제살리기특위 부위원장직을 수행해온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과 미디어홍보분과 간사를 맡아온 지승림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부사장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당선자가 청와대에 입성할 경우 이들이 삼성과의 교량 역할을 해줄 것이란 관측이 자연스레 나돌아왔다. 그런데 이들이 지금 처한 상황이나 전력을 볼 때 과연 이들의 존재가 이건희 회장에게 과연 ‘보험’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황 전 사장은 삼성 비자금 파문 초기부터 수사당국이 주목하는 인물로 떠오른 상태다. 삼성 비자금 파문 주역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법무팀장)가 차명계좌 보유 인사로 지목한 황 전 사장에 대해 당국의 출국금지는 물론 계좌추적까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실시한 삼성증권, 그리고 차명계좌 개설 장소인 우리은행의 수장을 지낸 황 전 사장에 대한 특검의 수사 강도가 벌써부터 관심사로 떠오른 상태다. 이명박 정권에서 금융감독위원장 후보로까지 거론됐다가 삼성 비자금 파문으로 상처를 입은 황 전 사장이 특검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지승림 전 부사장 역시 김용철 변호사에 의해 차명계좌 보유 임원으로 지목된 바 있다. 지 전 부사장은 특히 삼성 2인자 이학수 부회장과 묘한 인연을 맺고 있어 눈에 띈다. 비서실 시절부터 삼성 구조본을 주도해온 것은 기획팀 인사들이었는데 외환위기가 닥치고 삼성자동차 사태가 터지면서 기획팀 책임론이 부상하고 반대급부로 재무팀이 구조본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게 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시 기획팀 수장이 지 전 부사장이었으며 기획팀의 힘을 뺀 재무팀의 리더가 바로 이학수 부회장이었다. 기획팀 인사들과 앙금이 남아있을 법한 재무팀 출신들이 차명계좌와 비자금 조성 주역으로 거론되는 현 시점에서 특검의 지 전 부사장 조사가 이뤄질 경우 삼성과 이학수 부회장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등장하게 될지 역시 관전거리다.
대선 기간 동안 다른 정파로부터 ‘삼성이 한나라당에 보낸 특사’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삼성 출신 인사들의 정치권 내 행보가 향후 이건희 회장의 주름살을 쥐락펴락할 변수가 될 것이란 목소리도 들려온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