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축유·나프타·LNG 동시 압박, 산업계 촉각…극단적 변동성 장세 이어질 전망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유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국가 경제 전반이 멈춰설 수 있다는 위기감이 시시각각 커지고 있다. 정부는 비상 대응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월 24일 국무회의에서 범정부 비상 대응 체계의 선제 가동과 에너지 절약 운동을 지시했다. 정부는 3월 25일 0시부터 전기차와 수소차 등을 제외한 공공부문 승용차 5부제를 의무 시행했다. 중동발 원유 수급 차질에 대비해 UAE에서 추가 1800만 배럴을 확보해 기존 600만 배럴을 포함한 총 2400만 배럴을 들여오기로 했다. 다만 이는 국내 하루 소비량의 8배 수준에 그쳐 단기 완충 장치에 가깝다.
석유화학업계 위기는 현실화되고 있다. LG화학은 원유의 부산물인 나프타(납사) 조달 차질로 지난 3월 23일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 2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에틸렌과 프로필렌은 플라스틱 수지와 합성섬유, 포장재, 용기 등에 쓰이는 기초 원료로 자동차와 전기전자 등 제조업 전반에 널리 활용된다. 조선·철강·반도체 업종도 관련 소재와 부자재를 통해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중동발 공급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단순히 석화업계 불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 전반으로 연쇄 충격이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중동 외에 동남아시아 미국 아프리카 등 대체 조달처를 물색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가격과 운임 부담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잇다. 물량 확보 자체는 가능해도 이미 나프타 가격이 급등한 상태에서 먼 거리의 해상운송 비용까지 더해지면 채산성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운반선들이 연료로 쓰는 벙커C유 가격까지 함께 오를 가능성이 있어 운송비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셧다운되지 않은 공장들도 가동률이 점점 내려갈 텐데 무한정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상 가동률이 50~60% 이하로 내려가면 물리적으로 공장을 더 돌릴 수가 없다”며 “결국 나프타 부족이 계속되면 가동률을 단계적으로 낮추다가 한계에 이르면 다시 일부 공장을 멈출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석화 제품을 사용하는 산업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원유를 넘어 가스 공급망도 흔들리고 있다. 최근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세계 2위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인 카타르의 LNG 수출 허브인 라스라판 산업단지의 액화 설비가 폭파됐다. 카타르 국영 에너지사 카타르에너지는 지난 3월 24일 한국을 포함한 일부 수입국과의 장기 공급계약에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업계에서는 생산 차질 여파가 최대 5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한국은 2025년 카타르산 LNG 697만여 톤(t)을 수입했다. 전체 도입량의 14.9%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현물계약 비중이 큰 오만산 192만여t까지 합치면 중동산 비중은 약 19%에 이른다. 정부는 당장 수급에는 차질은 없고 대체 조달도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카타르 물량 공백을 미국과 호주 등 다른 지역 현물시장에서 메워야 하는 상황이다. 이 경우 세계 구매 경쟁이 심화돼 가격 상승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LNG 역시 단기간에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한 관계자는 “액화 플랜트 자체가 한정돼 있어 가동률을 조금 높일 수는 있어도 그 이상 생산을 늘릴 수가 없다. 기존 카타르 물량을 다른 공급처에서 전부 커버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 국가들이 동절기 대비를 위해 여름철부터 재고 확보에 나서기 때문에 사태가 길어지면 가격 상승 압력은 더 커진다. 당장 우리도 하절기 전력 소비량이 많기 때문에 가정용뿐만 아니라 산업용 전기도 수요 관리에 나서야 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증시는 하루 만에 급락과 반등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이고 있다. 코스피는 지난 3월 23일 중동 전쟁 격화와 국제유가 급등 충격에 6.49% 급락했다. 같은 달 24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이란 공습 유예 발표와 휴전 협상 기대가 번지며 2.73% 오른 5553.92로 마감한 데 이어 25일에도 휴전 기대가 이어지며 1.58% 상승한 5642.21으로 정규장을 마감했다. 하지만 26일에는 다시 3.22% 하락하며 5460.46으로 거래를 마쳤다.
변동성은 이례적 수준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에서는 3월 들어서만 7회째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코스피와 코스닥에 서킷브레이커가 함께 걸린 날도 3월 4일과 9일 두 차례나 나왔다. 유가증권시장에서 한 달 안에 서킷브레이커가 두 번 발동된 것은 코로나19 충격이 한창이던 2020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미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식 비중을 줄이고 안전자산과 현금성 자산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동 전쟁 여파로 미국 물가와 국채시장 등 금융시장 전반의 약한 부분이 동시에 자극받고 있다”며 “실제로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비축유가 있다고 해도 현 상황이 지속되면 시장 불안은 더 커지게 된다. 대외 변수에 취약한 한국 증시는 이런 흐름 속에서 하루에도 급락과 급반등을 반복하는 극단적 변동성 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미국 측에서 휴전 또는 협상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이란은 미국과의 휴전 협상이 시작됐다는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주한이란대사관은 지난 3월 25일 “전쟁이 시작된 이후 지난 24일간 미국과 어떠한 협상이나 대화도 진행된 바 없음을 다시 확인한다”며 “호르무즈 해협 및 전쟁 종식 조건에 대한 이란의 입장 역시 어떠한 변화도 없음을 재차 강조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5일간 공격 유예’ 발표 이후에도 이란과 교전을 지속하고 있다. 언제든 중동발 리스크가 다시 확대될 수 있다는 불안이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중동 전쟁 향방은 결국 이란의 전쟁 수행 능력에 달려 있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란이 장기전을 끌고 갈 여력은 크지 않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결국 이란 스스로 자기 목을 조르는 선택인 데다 내부 지지 기반도 약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며 “초기부터 장기전을 염두에 둔 전쟁이 아니었다. 국내에도 비축유가 전혀 없는 상황은 아닌 만큼 과도한 공포에 휩쓸리기보다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