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 관련 법안 줄줄이 폐기, 산재 승인율 30%대…‘장시간 근로’ 매몰된 판단 기준 논란

우리나라는 2020년과 2023년 ‘과로사 예방법’이 발의됐으나 모두 회기만료로 폐기됐다. ‘과로사 예방’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지만 현재 과로사나 과로자살은 공식적인 통계조차 없다.
업무상 사고와 달리 업무상 질병, 이 가운데서도 과로와 연관된 뇌심혈관계 질병의 산재 승인율은 낮은 편이다. 현행법상 과로로 인한 사망이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뇌심혈관계질환이나 정신질환의 업무 관련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근로복지공단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사고 산재 승인율은 90%를 상회하는 반면 뇌심혈관계질병 산재 승인율은 30%대에 그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는 단순한 근로시간을 넘어 직무 변경이나 고용 불안에 따른 ‘질적 과로’가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근로복지공단 지침에서는 근로시간 이외에도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교대 근무 등 근무형태, 작업 환경, 근로자의 연령, 성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산재 승인 과정을 겪은 유족들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정량적 지표인 근로시간이 산재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뇌심혈관계질환 발병 전 12주 이상 한 주에 60시간을 초과해 근무해야 만성과로로 인정된다. 이는 연장근로를 포함해 최대 주 52시간으로 설정된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상한을 초과한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유가족모임)에서 활동 중인 배고은 씨(38)는 “사람마다 ‘힘듦’에 대한 반응이 모두 다르다. 현재의 산재 승인 제도는 ‘타임카드’로 승인 여부가 나뉘며 너무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과로 산재 승인에서 근로시간 기준이 중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예전보다는 규범적 인과관계가 폭넓게 고려되는 추세라는 입장을 보인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장시간 근로에 대한 근거가 있다면 산재를 인정받을 확률이 높은 것은 맞다”면서 “최근에는 업무 환경과 개인적 기질 등 다양한 기준으로 산재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족모임 운영자 강민정 씨는 “기존에 과로사에 대한 인식 자체도 소위 ‘블루칼라’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면, 지금은 사무직이나 전문직을 가리지 않고 과로로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 유가족들은 5년이라는 소멸시효가 길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유가족모임에서 활동 중인 김설 씨(33)는 “고인에 대한 애도와 남은 가족을 챙기는 데 시간을 쏟으면 시간이 훌쩍 간다. 오빠를 잃은 엄마가 일상생활로 돌아오는 데 수년이 걸렸다”며 “오빠가 죽고 4년이 지나고 나서야 산재 신청을 준비했는데 정말 막막했다. 남겨진 증거가 거의 없더라”고 말했다. 이미소 노무법인 HRS 대표 공인노무사는 “소멸시효을 늘리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8년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등 보험급여를 받을 권리에 관한 소멸시효가 3년에서 5년으로 연장된 터라 추가로 연장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의 공단 관계자는 “5년이 짧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는 법률 개정의 영역이라 공단 측에서 확인은 어렵다”며 “소멸시효를 한 차례 더 늘리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귀띔했다.

김설 씨는 “유족 측이 의뢰한 의사의 소견을 종합해 판단한다면 더 공정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미소 노무사는 “산재는 의학적 판단보다 법률적 판단에 가깝다.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의 의학적 소견이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재해자의 건강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오히려 재해자의 주치의다. 과연 공단 자문의는 객관적인 제3자가 맞느냐는 문제도 생긴다”고 말했다.
공단 관계자는 “유족과 저희가 서로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무조건 재해자의 주치의 의견이 맞다고 볼 수는 없다. 질판위 위원들의 구성 역시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며 “의학적 소견은 의사마다 다를 수 있으며 공단에서 요청한 자문의가 감정을 하니까 공단에 유리하다는 것은 오해다. 그분들께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다. 그분들은 공단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분들의 의학적 전문성을 건드릴 수도 없다”고 했다.
유족들은 산재 국선대리인 제도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배고은 씨는 “가장이 과로로 쓰러진 경우 가족들은 생계가 끊기는데 어떻게 산재 신청을 고민할 수 있겠나. 남들은 ‘사람이 죽은 게 문제지 돈이 문제냐'고 하는데 그건 뭘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정부는 올해 산재 국선대리인 제도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월 관련 내용이 담긴 산업재해보상법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으나 여야 의견 차로 본회의 안건에는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