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까지 용수 수요 급증…물은 국가 경쟁력 좌우하는 자원, 재이용 확대·대체 수자원 확보 필요”
초순수·물 재이용 분야 전문가인 장암 성균관대 수자원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서남권 용수 공급대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기후 위기로 가뭄이 잦아지고 강도가 커지는 만큼 물 재이용과 대체 수자원 확대, 합리적인 가격체계, 가뭄 시 물 배분 원칙까지 함께 마련해야 보다 완결된 물 안보 전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장 교수에게 AI·반도체 시대의 물 문제와 해법을 들어봤다.

“‘AI 시대를 움직이는 것은 반도체이고, 반도체를 움직이는 것은 물이다’라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반도체 생산에는 막대한 양의 초순수가 필요하고, AI 데이터센터 역시 서버 열을 식히기 위해 많은 냉각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이 멈추면 반도체 생산도, AI 산업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물은 생활 인프라를 넘어 국가 산업 경쟁력과 안보를 좌우하는 전략 자원이다. 물 안보와 물 주권을 더 이상 환경정책의 영역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서남권의 물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물 문제는 절대적인 물 부족보다 저장하고 활용하는 능력의 한계에 있다. 연평균 강수량은 1252㎜로 비교적 풍부하지만, 국토의 63%가 산지여서 강우의 상당 부분이 단기간에 바다로 유출된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서남권에서 더욱 뚜렷하다. 영산강 유역은 4대강 가운데 유일하게 본류에 다목적댐이 없어 안정적인 저류 기능이 취약하다. 실제 2022~2023년 호남 대가뭄 당시 동복댐 저수율은 18%대, 주암댐은 17%까지 떨어졌고 나주댐도 30%대로 내려갔다. 수질 문제도 존재한다. 2025년 여름 주암호에서는 14년 만에 장기간 조류경보가 발령됐다. 반도체용 초순수의 원수에 녹조가 발생하면 고도처리 공정이 복잡해지고 처리 비용과 에너지 소비가 증가한다. 결국 서남권은 물의 양뿐 아니라 물의 질까지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정부의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용수 공급대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산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팹 1기에는 하루 약 13만 7000㎥의 용수가 필요하며, 광주·서남권에 계획된 4개 팹과 관련 인프라까지 포함하면 하루 65만㎥ 이상의 공업용수가 새롭게 요구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이에 대응해 동복댐 하루 30만 톤, 주암댐·장흥댐 15만 톤, 보성강댐 10만 톤, 나주댐 10만 톤 등 각 댐의 여유 수량을 산업용으로 전환·배분하는 다각적인 공급대책을 마련했다. 단일 수원의 리스크를 분산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실제 가뭄 상황에서도 이 대책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려면 장기적인 보완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정부 공급대책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보완책은.
“확실한 보완책은 ‘물 재이용 확대’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하수처리수 재이용률은 15% 수준이다. 재이용률이 40~50%에 이르는 싱가포르와 호주, 20~30% 수준의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도 낮다. 더 큰 문제는 재이용의 질이다. 국내 재이용수는 처리장 운용용수나 하천유지용수 등 저부가가치 용도에 집중돼 있다. 새로운 댐 건설에 신중한 기조를 유지한다면 하수처리수 재이용, 중수도 이용, 해수 담수화 등을 국가 물 공급 체계의 한 축으로 적극 편입해야 한다. 댐을 덜 짓는 사회를 선택했다면 그만큼 물을 더 순환시키는 사회로 전환하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다.”
―물 재이용 확대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기술 부족이 아니라 경제성과 제도의 문제라고 본다. 수도법·하천법·하수도법·물재이용법으로 분산된 관리체계와 낮게 책정된 수도 요금이 원인이다. 2024년 기준 전국 평균 수도 요금은 ㎥당 829원으로 생산원가 1114원의 74.4% 수준이다. 낮은 수도 요금은 절수와 물 재이용의 경제적 유인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재이용 인프라에 투자할 재원까지 제약하고 있다.”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로드맵을 마련해야 하나.
“삼성전자는 국내 사업장에서 공장 내 재이용률을 90% 수준까지 유지하고 있다.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도 초기 가동 단계부터 팹 내 재이용률 75% 이상을 목표로 설계하고 2030년까지 9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로드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하수처리수 재이용률을 2030년까지 25%, 2035년까지 35%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상향하고, 이를 국가 전략산업의 핵심 용수로 활용해야 한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의 입지와 인허가 과정에서는 전력뿐만 아니라 ‘물 사용량과 냉각수 확보 가능성’을 함께 검토해 ‘전력 병목’과 ‘물 병목’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속 가능한 물순환 체계를 위해서는 물의 가치가 반영되는 가격체계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지역별 요금 현실화율 격차를 좁히고, 확보한 재원을 재이용시설과 스마트 물관리 기술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20세기 산업의 혈액이 석유, 즉 ‘Black Gold’였다면 21세기 AI 산업의 혈액은 물, ‘Blue Gold’다. 대한민국이 반도체를 잘 만드는 나라를 넘어, 그 반도체를 생산할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사용한 물을 다시 순환시키는 나라가 될 때 기후 위기와 AI 시대를 동시에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원평 경인본부 기자 jwp0111@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