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판 벌여놓고 판돈은 현지 조달?
▲ 박삼구 회장 | ||
금호아시아나가 대한통운을 인수할 것이라고 전망한 재계 인사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룹 내부에서조차 “이번엔 아니라고 봤는데 의외였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금호아시아나는 보란 듯이 대한통운 인수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회사 측은 인수에 성공한 후 “글로벌 물류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청사진을 밝혔지만 시장의 반응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듯하다. 인수소식이 전해지자 금호아시아나의 주요계열사 주식이 하락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향후 그룹의 재무 상태가 악화될 것이란 평가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는 “재무적 투자자들이 참가해 회사의 부담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여전히 주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김영진M&A연구소 김영진 소장은 “공동투자라고 하더라도 금호가 짊어질 금액부담은 크다”며 “당분간 주가가 회복하기는 힘들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금호아시아나가 대한통운을 인수하기 위해 써냈다고 알려진 4조 원대의 가격은 대한통운 기업 가치에 비해 너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호아시아나가 자산규모 5조 5000억 원대의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의 금액은 6조 4000억 원가량이었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애초에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을 써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도 “대우건설 자산은 팔지 않겠다”라고 약속했지만 결국 대우건설 빌딩을 매각했다. 이러한 전력 때문인지 금호아시아나가 인수를 마무리하면 부족한 자금 확보에 나설 것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한 것이 지금 금호아시아나의 상황은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보다 더욱 나빠 보인다. 특히 법원이 대한통운 인수 후에 1년 동안은 유상감자를 하지 못하게 한 것이 금호아시아나로서는 뼈아플 듯하다. 유상감자는 주주들이 회사의 자본금을 회수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 인수 후 대우건설 빌딩을 매각한 돈으로 유상감자를 실시해 부족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금호아시아나에서는 이번 대한통운 인수방식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이기 때문에 “재무적 부담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새롭게 발행되는 대한통운 주식 2400만 주를 인수하는 데에 드는 돈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렇지만 인수에 필요한 차입금의 이자만 수백억 원이 될 것으로 예상돼 회사 측의 부담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한통운 인수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대우건설도 금호아시아나 입장에서는 근심거리다. 대우건설이 금호아시아나의 대한통운 인수 전면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우건설 주가는 폭락했다. 재무적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고 예측됐기 때문. 1월 22일 종가 기준 1만 7950원 까지 떨어졌다.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을 인수할 당시 2006년 12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주가가 3만 3085원을 밑돌면 재무적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전해주기로 계약한 바 있다. 따라서 주가가 계속 내려가면 금호아시아나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커지는 것이다. 또한 대우건설 빌딩을 매각하고 남은 3000억 원가량의 돈을 대한통운 인수에 쓰려고 한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대우건설 투자자들은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돈은 필요한데 나올 곳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거론되는 것이 대한통운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이다. 대한통운은 서소문 본사 건물을 포함해 부산 인천 경남 등 전국 곳곳에 알짜배기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대우건설 빌딩을 매각해 재미를 본 경험이 있는 금호아시아나로서는 군침을 흘릴 만도 하다. 하지만 대한통운의 부동산을 매각할 경우 “대우건설에 이어 또다시 피인수업체의 자산을 팔아 인수자금을 돌려받는 행위를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부동산 매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지주회사와 관련된 것이다. 금호아시아나는 지난 2007년 5월에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기 때문에 1년 이내에 부채비율을 200%로 줄여야한다는 법적 요건에 따라 2008년 5월까지 부채를 낮춰야 한다. 하지만 현재 그룹의 지주회사인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의 부채비율은 200%가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비록 대한통운 인수전에 이 두 회사가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룹의 재무 부담이 증가하면 계열사 부채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부동산 매각을 통해 자금을 수혈할 필요성이 커지는 것이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추진하고 있는 지주회사 전환 요건 완화가 현실화되면 이러한 부담은 다소 줄어들 수도 있다. 그래서 재계 일부에서는 금호아시아나가 이번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이명박 당선인의 ‘사돈기업’인 효성그룹과 컨소시엄을 이룬 것을 두고 “정치적인 의도가 있을 것이다”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편 대한통운 인수를 그룹의 후계구도와 연관 짓는 ‘삐딱한’ 시선도 있다. 형제경영으로 유명한 금호아시아나는 창업주인 박인천 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 장남 고 박성용 명예회장과 차남 고 박정구 회장이 차례대로 그룹을 맡았다. 그 뒤를 이은 것이 박삼구 현 회장. 순서로 따지면 다음 회장은 박 회장의 동생인 박찬구 화학부문 회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금호아시아나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박 회장이 자신의 외아들인 박세창 전략경영본부 이사에게 그룹을 물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즉, 박 회장 부자가 항공물류사업을 맡고 동생에게는 화학부문을 떼어주어 계열을 분리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박 회장이 대한통운 인수에 사활을 건 것도 물류부문의 덩치를 키워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수순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대한통운 인수에서 박 이사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들의 경영수완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이번 대한통운 인수는 박 회장에게 절실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전혀 근거 없는 얘기다”라며 일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