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연합군’ 구성에 사위들만 ‘열외’
▲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현대차의 증권사 인수는 금융업 강화 포석 외에도 후계구도와 관련한 여러 가지 해석을 낳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정몽구 회장 외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승계를 위한 밑그림이 증권사 인수를 통해 본격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신흥증권 인수로 현대차는 기존의 자동차산업에 금융업을 성장엔진으로 탑재할 수 있는 초석을 닦게 됐다. 일본의 도요타가 자동차 제조·판매보다 금융에서 더 큰 수익을 올리는 것처럼 현대차도 차세대 동력으로 금융업을 택했다는 평이다.
현대차의 신흥증권 인수가 확정되기 전 ‘설’이 퍼지면서 재계 일각에선 인수 주체로 금융계열사인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이 나설 것으로 전망했으며 일부 언론은 이 같은 시각을 기사화했다. 그런데 실제 신흥증권 인수엔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엠코, 5개 계열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지금까지 그룹 내 금융업을 주도해온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의 이름은 빠진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의 지분구조 특성 때문일 것”이라 밝혔다. 현대캐피탈의 최대주주는 지분 56.48%를 가진 현대자동차며 GE가 43.30%를 보유해 2대 주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대카드에선 GE가 42.95%로 지분율이 가장 높고 현대차가 32.86%, 기아차 11.97%, 현대제철 5.65%로 그 뒤를 잇는다. 현대차가 독자적으로 금융업을 강화하는데 GE 의존도가 높은 현대카드·현대캐피탈보다는 현대차 자체 지분율이 높은 주력 계열사들이 낫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그동안 현대카드·현대캐피탈과 GE의 교류를 통해 금융업 강화를 위한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자통법 시행으로 증권사의 금융투자회사 변신이 가능할 때를 기다리며 증권사 인수 준비도 해왔다. GE 지분율이 높지만 상대적으로 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에 비해 현대차 지분율이 높은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의 신흥증권 지분 인수 컨소시엄 불참은 업계 인사들의 예측과 어긋난 것이었다.
▲ 현대차 제네시스 신차 발표회에 참석한 정몽구 회장.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을 정 회장 둘째 사위인 정태영 사장이 맡아 일궈왔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정태영 사장은 제조업으로 일관해온 현대차그룹 내에서 금융업의 기반을 잘 다져 놓았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정의선 사장의 기아차가 실적 부진에 허덕이자 정태영 사장이 후계 후보군에 오를 수 있다는 ‘불경스러운(?)’ 평이 호사가들 사이에서 잠시 나돌기도 했을 정도다. 그룹 내부에서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이 신흥증권 인수주체가 되지 못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는 전언이다.
정태영 사장이 주도해온 금융계열사들이 증권사 인수주체에서 제외된 것은 또 다른 해석도 낳는다. 만약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이 신흥증권 인수와 경영의 주체가 돼 좋은 결과를 낳을 경우 단기적으로는 그룹 체질개선에 큰 보탬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의선 사장 평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 회장 셋째 사위 신성재 사장의 현대하이스코 역시 증권사 인수 주체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렇게 그룹의 재도약을 위한 담금질인 증권사 인수 과정에 사위들이 경영하는 계열사들이 참여하지 못한 점은 정의선 사장에 대한 힘 실어주기에서 더 나아가 ‘사위 계열사’들을 대상으로 한 그룹 차원의 분가작업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 정의선 기아차 사장 | ||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태영 신성재 사장이 각각 현대카드·현대캐피탈과 현대하이스코의 대표이사직을 맡은 이후부터 이 회사들의 실적이 개선돼 알토란 같은 흑자 계열사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 회장 장녀 정성이 고문이 경영 참여 중인 이노션도 흑자폭을 늘려가고 있다. 딸과 사위들이 잘나갈수록 정의선 시대를 준비하는 정몽구 회장의 주름살은 더 깊어질 수 있다.
신흥증권 인수 작업 이후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염두에 둔 현대차의 생보사 등에 대한 M&A 시도가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향후 금융업을 늘려가는 과정에서 이번 신흥증권 사례처럼 ‘사위 계열사’들이 배제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