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 신세계 혼수에서 밀렸다
인천시 남구 관교동에 있는 인천종합터미널 전경.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신세계 측은 할 말이 많다. 지난 1997년, 지금의 부지에 신세계백화점을 개점한 후 지금까지 인천지역 상권 발전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은 데다 2017년까지 임대계약을 한 상태다. 신세계 관계자는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허허벌판 같은 곳을 지금 같은 상권으로 발전시킨 공을 인정해주기는커녕 이제 와서 배제된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억울해했다.
1997년 개점한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은 현재 전국 매출 3위에 올라 있을 만큼 성장했다. 신세계는 지난 2011년, 2031년까지 20년 장기임대 체결을 조건으로 1450억 원을 투자해 신관 건물과 주차장 건물을 증축하기까지 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이만한 투자와 노력을 들인 곳을 공정성이 의심되는 매각 절차 때문에 통째로 잃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인천시 측 얘기는 다르다. 인천시 관계자는 “신세계는 지역 개발 문제에 대한 고민과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우리에게 가격을 얘기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지역개발에 대해 아무런 계획도 없었으면서 잃고 나니 특혜로 몰아붙이는 것은 억지”라고 밝혔다. 롯데 측 역시 “사업 기반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계약을 지연하거나 무산시켜 보려는 의도”라며 “패자의 투정이나 꼼수”라며 신세계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에 신세계 관계자는 “(인천시가) 구체적인 가격을 얘기해달라는 것 자체가 무리 아니냐”며 “어느 기업이 딜(거래)을 하는데 입찰하기도 전에 가격을 공개하느냐”고 반박했다.
표면적으로는 신세계가 억울해 보인다. 만약 신세계가 낸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신세계는 15년 이상 공을 들인 인천점을 고스란히 내줘야 한다. 신세계가 개점과 증축 과정에서 투자한 돈도 어마어마하다. 롯데는 백화점과 주차장건물을 새로 지을 것 없이 리모델링만 하고 들어오면 된다. 무엇보다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은 지난해 매출 7600억 원가량으로 전국 10개의 신세계백화점 중 매출 3위다. 롯데백화점 인천점보다 매출이 2~3배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주요 지점을 경쟁사인 롯데에 경쟁입찰 기회도 없이 넘겨줘야 할 판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번 계약의 핵심은 백화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터미널 부지와 그 주변 지역 개발에 있다는 것을 <일요신문>이 처음 확인한 것이다. 인천시 측은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터미널 지역을 개발하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는데 신세계는 여기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인천시의 진행방식이 깔끔하지 못한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10월 이미 신세계가 인천시를 상대로 터미널 부지 매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도 신세계의 손을 들어준 마당에 인천시가 롯데와 본계약을 강행한 것은 무리였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더욱이 신세계가 매입 의지를 적극 표명한 데다 입찰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온 터에 굳이 인천시가 법원이 지적한 부분을 수정하면서까지 롯데와 본계약을 할 이유가 있었느냐는 의문이 든다.
지난해 10월 신세계가 인천지법에 매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을 당시 법원은 인천시의 롯데에 대한 금리보전 조항을 지적하고 감정가 이하 매각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지난 30일 인천시와 롯데의 본계약 때는 문제가 된 금리보전 조항이 삭제됐으며 매매대금도 가계약 때 맺은 8751억 원보다 높은 9000억 원으로 했다. 재계 관계자는 “인천시가 신세계를 괘씸하게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공개적으로 입찰 의사를 밝혔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계약서를 수정해가며 롯데와 계약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오죽하면 기업이 지방정부를 상대로 싸우겠느냐”며 절박함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또 “우리가 일궈놓은 상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며 “적어도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매각 절차를 재고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천시 관계자는 “계약은 끝났다”고 못 박았다.
신세계의 가처분 신청이 어떻게 결론 나든 그 후유증은 클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신세계의 손을 들어준다면 인천시와 롯데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 자칫하다간 인천시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 가뜩이나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터에 지방자치단체의 권위와 명예에도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반대로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개발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지 알 수 없다. 신세계백화점은 2017년까지 임대하기로 돼 있고 2011년 신세계가 증축한 신관과 주차건물은 2031년까지 임대하기로 돼 있다. 롯데가 당장 개발사업을 진행한다 해도 2017년까지 백화점 건물에는 손을 대지 못하며 신관과 주차건물은 2031년까지 그대로 두어야 한다. ‘롯데 땅’에 신세계 로고가 박혀 있는 그림이 연출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세계가 임대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곱게 물러난다면 괜찮지만 현재로서는 신세계가 그럴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터미널 부지 개발에 신세계의 임대건물은 문제될 게 없다”며 “백화점 건물 등은 임대기간이 끝나면 롯데가 알아서 개발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대전’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