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의 무대? 꿈의 무덤 될 수도
무명부터 왕년의 A급까지 최근 많은 선수들이 태국 진출을 꿈꾸고 있다.
# 동남아, 과연 한국 축구의 신대륙인가?
2월 초 태국 방콕에서 만난 한 에이전트는 “어느 구단에서든 입단 테스트를 받으려는 한국 선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랬다. 작년 말부터 이달 초까지 무수히 많은 선수들이 태국 땅을 밟았다는 후문이다. 또 다른 축구계 인사도 “선수 200~300여 명이 (태국을) 들락날락했다고 들었다. 이 중에는 나름 유명한 선수들도 일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과거 명성이 높던 선수들만 현재 태국 프리미어리그(1부 리그) 진출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국내 프로축구 K리그에 몸담았던 선수들도 있는 반면, 프로와 실업축구 내셔널리그 등지를 전전하던 ‘그저 그런’ 선수들도 분명 있다. 당연히 전혀 이름값이 없는, 국내 축구 팬들조차 모르는 무명 선수들도 상당히 많다.
요즘 일각에서는 한국 축구도 동남아 시장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이 일은 진행돼 왔고, 현재진행형이었다. 다만 K리그에서 동남아 용병들을 찾기 어려울 뿐이다.
사실 동남아의 축구 열기는 인정할 만하다. 앞서 거
론된 부분만이 이유는 아니다. 자국 리그에 대한 관심도 지대하다. 현지 종합 일간지에도 스포츠면, 그것도 축구 지면이 따로 배정될 정도다. 그 가운데 유럽 축구에 대한 소식이 50%, 자국 축구는 나머지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에는 국가대표팀이 2015 호주 아시안컵 지역 예선을 위해 소집된 탓인지 대표팀 뉴스가 대부분이었지만 꾸준히 현지 클럽들과 관련된 소식도 다뤄지고 있었다.
# 무자격자도 판치는 세상?
태국에 전훈을 떠난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선 숱한 한국 선수들의 태국 클럽 트라이얼(입단 테스트) 소식이 회자됐다. 더불어 누가 테스트에 합격했는지, 어떤 이가 탈락의 쓴 잔을 들었는지에 대해서도 꾸준히 얘기가 나왔다. 한국 선수의 동남아, 그것도 입단 테스트까지 진행한 뒤 진출하는 소식은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이들의 스토리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최근 들어 인도네시아 및 베트남 프로축구도 태국처럼 한국 선수들의 제2의 인생 코스로 각광 받는다고 했다.
확인 결과, 태국 프리미어리그에 용병으로 등록되면 연봉을 410만 바트(약 1억 4000여 만 원)까지 받을 수 있기에 현지의 생활수준과 싼 물가를 감안하면 금전 수준이 그리 낮다고 보기는 어렵다. 태국의 슈퍼 스타급도 한화 기준으로 1억 2000만~1억 3000만 원가량 받는다고 하니 한국 선수는 과거가 어찌됐든 나름 A급으로 인정받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도 있다. 아직 동남아 진출이 국내에 낯설고,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일부 있었다. 승부조작으로 전 세계 어디서도 뛸 수 없게 된 선수들이 동남아를 진입 무대로 내다본 경우다. 실제로 지난 1월 초, 국제축구연맹(FIFA)이 K리그 승부조작 징계를 당한 한국 선수들이 어디서나 뛸 수 없다는 내용을 공식 발표했을 때조차 승부조작에 연루된 몇몇 선수들이 태국 팀의 입단 테스트를 받으려 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한때 준 대표급으로 알려진 K 선수가 대표적인 예. 결과적으로 그는 입단하지 못했으나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문제 제기가 될 만한 상황이었다.
승부조작, 혹은 전 소속 팀에서의 방출 등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선수의 절박함을 악용하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었다. 현지에서 중계자로 활동하는 에이전트들이 한국 선수들로부터 태국 클럽 입단 테스트를 빌미 삼아 왕복 항공료와 체류비조로 약 300여 만 원을 요구하고, 나중에 입단에 성공하면 앞서 받은 300만 원을 선수 측에 돌려주되 구단-선수 간 계약금 일부를 챙기는 형식으로 돈벌이를 하는 일부가 있다고 했다. 물론 입단에 실패하면 선수는 선불로 지급한 300만 원을 고스란히 날릴 수밖에 없는 구조. 현지 유력 클럽에서 활약하는 W 선수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상당수가 FIFA나 대한축구협회의 공식 인가를 받지 못한 무자격 에이전트들이고, 이 중에는 아마추어 축구계에서 물의를 일으킨 채 한국을 떠난 뒤 태국에 안착한 전직 학원 축구 지도자 출신이 이들과 함께 활동한다는 데 있다. 국내법이 태국에까지 미치지 않다는 점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수법이다. 이런 현실을 잘 아는 유력 에이전트는 “테스트를 위해 돈을 미리 지급하는 건 K리그 등 국내 클럽들이 용병을 테스트할 때 흔히 하는 일이지만 그 대상이 한국 선수라면 분명 문제 소지가 있다. 만약 (입단 테스트를 허용한) 해당 구단과 이들 무자격 중개인들이 서로 짜고 이런 일을 벌인다면 선수는 미래를 보장받지 못할뿐더러 손해만 입는다. 선수들도 향후 철저히 중개인의 정체를 확인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는 부정적인 견해를 전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