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삼성 대수술’ 수혈이 필요해
▲ 최근 삼성 내부는 비자금, 태안 사태 해결을 위해 계열사 매각설이 나도는 등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삼성의 비자금 파문을 규탄하는 민노총의 집회 모습. | ||
최근의 위기상황과 맞물려 삼성 내부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란 갖가지 관측이 삼성 안팎에 나돌고 있다. ‘포스트 이학수설’에서 ‘계열사 매각설’까지 안 그래도 어수선한 삼성의 안팎을 휘젓고 있는 이야기들의 실체를 짚어봤다.
특검 수사팀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의혹 관련 고위 간부 줄소환에 들어가면서 이학수 부회장(전략기획실장)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평이 나돈다. 이 부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이건희-이재용 부자 승계과정의 핵심 연결고리다.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당국의 기소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정·관·재계에선 삼성 내 ‘포스트 이학수’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이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천명한 이명박 당선인의 새 정부 출범과도 무관치 않다. 이 부회장은 이 당선인과 고려대 동문이지만 이보다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부산상고 선후배로 곧잘 수식돼 왔다. 삼성 안팎에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동생 정몽준 의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해 최고위원직에 오르면서 범 현대가의 현대건설 인수설이 퍼지는 것에 주목하는 시선들이 늘고 있다. 그룹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한 터라 삼성도 이명박 정부와 어느 정도 코드를 맞출 수 있는 시스템 구축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최근 업계 정보통들 사이에선 입지가 흔들리는 이 부회장을 대신할 후임 격으로 한 핵심 계열사의 A 사장이 주목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다. A 사장은 이명박 당선인의 대학 후배로 이건희 회장 비서실을 비롯해 여러 계열사 요직을 거쳤다. A 사장 같은 인사들을 필두로 한 새로운 ‘고대 인맥’이 삼성 내 새로운 핵심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꿈틀거린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2004년 대선자금 수사와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의 풍랑에도 자리를 지켜온 이 부회장과 재무팀 세력의 저력을 간과할 수 없는 까닭에 자칫 잘못하면 내부 갈등으로 비춰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비자금 사태로 인해 연초 정기 임원인사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일부 인사들 간에 희비가 엇갈린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지난해 인사에선 이건희 회장 시대를 풍미한 몇몇 인사들이 안식년을 받거나 ‘직급상 승진’은 하더라도 결제라인에서 제외되는 식으로 밀려났는데 올해 인사에서도 같은 풍경이 연출될 것으로 전망돼 왔다. 이른바 ‘이재용 시대’를 위한 포석으로 풀이됐지만 인사 단행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쓸쓸히 퇴장할 것으로 전망되던 인사들의 명줄이 길어졌다는 평이다. 반면 ‘노신’들이 물러날 자리를 엿보던 신진 세력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을 듯하다.
재계 인사들 사이에선 ‘삼성 수뇌부가 제2의 김용철 탄생을 막기 위한 스크린 작업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는 상태다. 김용철 변호사처럼 외부에서 영입됐다가 좋지 않은 모양새로 나간 인사들을 대상으로 집중 관리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삼성 안팎에선 ‘이 회장 취임 20주년을 맞아 특별 상여금 지급 계획이 잡혔다가 비자금 사태로 백지화됐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삼성을 향한 민심이 흉흉한 상태라 집안에서 돈 잔치하는 풍경 연출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지적과 동시에 ‘나간 사람 챙기느라 안에 있는 사람 돌보지 못한다’는 수군거림도 들려온다.
게다가 특검 수사팀은 이미 삼성 차명계좌 자금 규모가 1조 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중 상당액이 탈세 혐의로 환수될 가능성과 함께 거액의 사회환원을 통해 여론을 달래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첩첩산중으로 태안 기름유출 사고 책임론과 보상 요구가 빗발쳐 이 회장과 삼성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일련의 사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실탄 마련 방안으로 계열사 지분 매각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재계 호사가들은 이건희 회장 일가의 그룹 지배력이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거액 마련이 가능한 방안으로 삼성카드 지분 매각을 거론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상장될 당시 삼성카드에 지분 참여 중인 삼성 계열사들이 지분 매각을 통해 상장 이익을 챙길 것이란 관측이 이미 나돈 바 있다.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에서 삼성카드는 그룹 지배구조를 떠받치는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카드가 당장 빠진다 해도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 형태의 그룹 지배가 여전히 가능하다. 삼성에버랜드 지분구조에서 이 회장 우호지분율이 90%를 넘고 자녀들인 이재용-이부진-이서현 남매의 지분율이 41.84%에 달하는 까닭에 경영권 승계에도 문제가 없다.
다른 계열사들 지분을 골고루 갖고 있는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에 비해 삼성카드의 타 법인 출자현황에선 삼성에버랜드(25.64%) 정도가 눈에 띈다. 어차피 이는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 지분 5% 초과 보유할 수 없다’는 금산법 개정안에 저촉되므로 삼성카드가 마냥 갖고 있을 수도 없는 지분이다. 해당 지분을 외부에 넘긴다 해도 이재용 전무의 그룹 경영권 승계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삼성차 채무를 변제할 수 있는 지분가치를 지닌 우량 계열사들 중 이 회장 우호지분율이 삼성카드만큼 높은 곳도 없다.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삼성 계열사들이 삼성카드 지분 71.60%를 갖고 있으며 이를 모두 처분할 경우 4조 원 정도의 현금을 마련할 수 있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영업이익 5056억 원을 기록한 알짜 계열사다. 전년(2006년) 대비 영업이익 신장률 43.8%를 올렸을 만큼 성장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자본시장통합법 시대에 맞춘 삼성의 금융업 강화 움직임을 볼 때 삼성카드 매각설은 어불성설이란 지적도 뒤를 따른다. 삼성카드가 르노삼성자동차 지분 19.90%를 갖고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훗날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재개할 수도 있다고 보는 호사가들은 삼성카드 매각 가능성을 낮게 보는 반면 삼성카드의 르노삼성 지분 보유가 삼성카드 몸값을 높일 요인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삼성카드 매각 가능성에 삼성 측은 손사래를 치지만 삼성차 문제를 해결할 묘수가 딱히 없기에 당분간 자주 거론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