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 “선배님 밀어치기 짱!”, 이 - “성범이는 추신수급”
NC의 중심타선을 책임지는 이호준과 나성범. 무려 13세나 나이 차가 나는 베테랑과 기대주의 만남이다.
# 첫 인상
나성범(나): 처음에 이호준 선배님이 우리 팀에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긴장 많이 했다. 인상도 무서우시고, 굉장히 깐깐한 스타일이실 것 같아 지레 겁을 먹은 것 같다. 그런데 막상 팀에 합류한 선배님을 보니 영락없는 ‘옆집 아저씨’였다.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와서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야구에 대한 조언도 아낌없이 전해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이다.
이호준(이): 성범이가 내 옆에 앉아 있으니까 자꾸 ‘거짓말’만 하는 것 같다(웃음). 사실 NC 입단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선수가 나성범이었다. 지난해 퓨처스리그의 스타로 떠오를 만큼 실력이 막강하다는 소문이 났던 터라 직접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처음엔 조금 건방을 떨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두어 달 지켜보니까 이 아이가 왜 실력이 좋고 스타가 될 자질을 갖췄는지 알 것 같더라. 훈련할 때 성범이처럼 진지한 선수가 없다. 하기 싫은 훈련도 정말 열심히 한다. 또 한 가지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부분도 있다. 아마 집안 증고조 할아버지 중에 몽골족이 계시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몸이 ‘국산’ 몸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유연하다. 광주일고 출신이 아닌데도 이렇게 잘 큰 선수가 있다니 신기할 정도다(웃음).
(이호준은 광주일고 출신이다. 나성범은 광주진흥고를 나왔다. 둘은 모두 투수에서 야수로 전향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 이호준의 나성범 바라기
이: 성범이랑 인터뷰를 하면 주로 내가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그 내용의 대부분은 성범이 자랑이다. 마치 내가 나성범 홍보팀장이 된 것처럼(웃음). 그만큼 괜찮은 선수라는 것이다. 난 성범이가 메이저리그의 추신수에 견줄 만한 실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어깨, 다리, 힘, 모든 것을 갖췄다. 한국에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선수가 (박)재홍이 형 이후로 찾아보기 힘들었다. 성범이가 재홍이 형 성격은 빼고 야구적인 부분만 닮았으면 좋겠다(웃음). 난 성범이한테 항상 얘기한다. 운동만 잘하면 100억 시대가 열린다고.
나: 선배님의 과분한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난 아직 배워가는 단계고, 지난해 프로 유니폼을 입었지만, 진정한 프로는 올해가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애리조나 캠프 기간 동안 넥센, KIA 등과 연습경기를 치르면서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자꾸 눈에 띄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호준 선배님 같은 분이 우리 팀에 계신다는 게 큰 위안이 된다.
# 서로에게 부러운 점
나: 내가 갖지 못한 선배님의 밀어치기를 배우고 싶다. 선배님의 타구 방향이 대부분 다 밀어치기인데, 그 노하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 성범아, 이 나이가 되면 당겨 칠 힘이 없어. 그래서 밀어치는 거야(웃음).
나: 어떻게 하면 그렇게 선수들을 편하게 대하시는지, 후배들 중에는 선배님 좋아하는 선수들이 정말 많다. 열아홉 살 나이 차이까지 커버하시는 걸 보고 선배님의 넓은 마음 씀씀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요즘은 후배들한테 잘 보여야 하는 세상이다. ‘왕고’가 왔다고 해서 후배들이 잘해주길 바라면 안 된다. 내가 머리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넓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웃음). 난 프로 입문 후 아주 오랫동안 방탕한 생활을 해왔다. 한마디로 자기관리에선 낙제 점수였다. 나중에 후회해 보니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거슬러 왔더라.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가 만든 이미지 때문에 날 믿지 못하는 지도자들이 많았다. 결국엔 내 손해인 것이다. 그래서 NC 후배들만큼은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이런저런 잔소리를 할 예정이다. 프로는 인내의 삶이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꺼진 뒤의 쓸쓸함을 곱씹을 줄 알아야 한다. 성범이는 그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나: 아직 난 스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위에선 벌써부터 날 스타라고 말하며 기대를 부풀리는데, 난 보여준 것도 없고, 인정받을 만큼 잘한 것도 없다. 그래서 조금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 누구보다 내 실력에 대해선 내가 가장 잘 안다. 난 가야 할 길이 너무 많이 남았다.
# 정근우, 최정한테 배워야 하는 것
이: 선수들 중에는 코칭스태프가 나눠주는 전력분석 종이를 슬쩍 보고 그냥 버리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그걸 뚫어져라 쳐다보며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하는 선수도 있다. 후자가 정근우, 최정 같은 선수들이다. 데이터 야구는 무시할 수 없다.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투수는 분명 반복된 투구를 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난 성범이가 앞으로 1년 동안은 그냥 부딪히며 많은 걸 경험했으면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코스가 있더라도 그것만 노리고 치지 말고 나름 대책을 세우고 타석에 들어서길 바란다.
나: 가까이서 이런 조언을 해준 선배가 없었다. 워낙 프로 경험이 많으신 선배님이라 다른 팀 투수들의 장단점에 대해 훤히 꿰뚫고 계신다. 그런 정보가 큰 도움이 된다. 앞으로 전력분석 종이가 생기면 절대 버리지 않고 선수 연구하는 데 자료로 이용해야 할 것 같다.
# 시즌 개막을 기다리는 이유
나: 솔직히 한국을 떠나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하루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여긴 야구 외에 딱히 할 게 없다. 지루하고 심심할 때가 많다. 무엇보다 하루빨리 시즌이 시작됐으면 좋겠다. 그래야 깨지고 넘어지면서 많은 걸 배우지 않겠나. 무엇보다 TV에도 내 얼굴이 자주 나올 테니까^^.
이: 나 또한 시즌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 팀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지, 상대팀이 NC를 만나서 어떤 대응을 해가는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다. NC는 내 야구인생의 마지막 팀이다. 이런 팀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게 가장 큰 목표이다. 그리고 마지막 욕심이 있다면 프로야구 인생 20년 동안 단 한 번도 갖지 못했던 ‘황금장갑’을 손에 쥐는 것이다.
나: 선배님, 진짜 골든글러브 수상을 못했어요?
이: 창피하게 뭘 또 물어보냐?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이다. 내 인생의 장벽은 ‘이승엽’이었다. 홈런 36개를 쳐도 승엽이가 56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판을 뒤집었고, 지난해 지명타자 부문에서 유력한 수상 후보였는데도 승엽이가 1루수 박병호한테 밀려 지명타자 부문 후보에 오르는 바람에 결국 내가 미역국을 먹었다. 은퇴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내 포지션에서 최고라는 인정을 받고 싶다.
나성범은 인터뷰 말미에 삼성 오승환의 공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냈다. 이호준에게 오승환 공략법에 대해 물은 것. 그러자 이호준은 “승환이는 발 딛는 타이밍을 맞추기 힘든 스타일이다. 이 타이밍이 공의 구속을 10km는 먹고 들어간다. 승환이랑 상대할 때는 대기타석에서 정말 많은 준비를 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성범은 LA 다저스 류현진의 공이 실제로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나타냈다. 그러자 이호준이 이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한다. “성범아! 넌 현진이한테 밥 사야 해. 올해 한국을 떠나준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괴물’이 달리 ‘괴물’인 줄 알아? 현진이는 인간이 아니야(웃음).”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