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 도전’ ‘신당 창당’…조기등판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경기도 군포시 산본역 중앙광장에서 공동유세를 벌이는 모습. 사진제공=문재인
지난 3월 3일, 안철수 전 후보의 측근인 무소속 송호창 의원은 국회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안철수 전 후보가 3월 10일경, 귀국할 예정”이라며 “오는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 노원병에 출마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동안 정계에서 소문이 파다했던 안 전 후보의 ‘노원병 출마설’은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결국, 안 전 후보는 자신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기점으로 이번 재보선을 택했다는 뜻이다.
문재인 전 후보의 경우 5월 4일 치러질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 당 대표로 출마하는 시나리오가 친노진영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 산하 대선평가위원회 토론회에서 “민주당 혁신을 위해서는 친노 주류세력이 퇴진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올 만큼 수세에 몰린 상황을 반전시키는 카드는 당권 장악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위한 친노의 구심점으로 대선 후보였던 문 전 후보가 떠오른 것이다.
안 전 후보 측은 일단 내년 지방선거까지를 내다보며 중기 플랜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월 초 안철수 귀국→발기인 모집 등 신당 창당 작업 돌입→안철수의 4월 재보선 당선으로 원내 진출→창당준비위원회 구성→정당으로 인정받는 창준위 상태로 10월 재보선 후보 배출→창당 완료 및 민주당 세력 선별 흡수→2014년 지방선거로 본격 승부수’가 최선의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정치분석가인 김능구 e윈컴 대표는 지난 2월 27일 MBN에 출연, “안 전 후보 측에서 4월 재보선에 참여해 정치세력화에 시동을 건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인수위 70일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대선 득표율보다 낮아졌다”며 “시민들은 민주당도 제대로 쇄신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안철수 현상’이 다시 살아났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대안세력으로 서지 못한 민주당의 한계가 안 전 후보에게 최대의 호기를 제공하고 있으며, 안 전 후보는 이를 놓치지 않고 4월 재보선 출마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분석이다.
송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안 전 후보가 귀국 후, 3월 12일경 그간 정리된 입장과 그 밖의 자세한 말씀을 본인이 직접 밝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 전 후보는 이 자리에서 대선 패배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본인의 재보궐 선거 출마 결심 및 향후 정치 행보의 청사진과 미국에서 가다듬은 정치적 비전을 발표할 것으로 관측된다.
안 전 후보의 4월 재보선 직접 출마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점쳐졌다. 무엇보다 금태섭 전 상황실장 등을 대리 투입한 경우 패배의 부담이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 특히 안 전 후보가 직접 나서느냐, 대리인을 내세우느냐에 따라 노원병의 선거지형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확실한 승리를 위해 안 전 후보 자신이 ‘선수’로 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정계 인사들의 분석이다. 안 전 후보 측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서울 노원병 지역에 실무진을 파견, 지역 여론 파악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관계자는 “안 전 후보가 직접 노원병에 나선 것은 100% 당선을 위해서다”며 “만약 그렇지 않고 측근들을 내세웠다가 실패한다면 신당 창당의 동력마저 잃을 수 있다. 안 전 후보는 결국 ‘모험’이 아닌 ‘안전’을 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노원병 지역에는 야권에서 여러 후보들이 하마평에 올라있다. 민주당에서는 임종석 전 의원과 박용진 대변인, 이동섭 지역위원장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역시 노원병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정 전 장관 측 관계자는 “현재로선 출마와 불출마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진보정의당에서는 노회찬 전 의원 부인을 내세운다는 말이 나오고, 통합진보당에서도 이정희 대표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형국이다.
송 의원에 따르면 안 전 후보는 노원병 의원직을 상실한 노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본인의 재보궐 선거 출마와 관련한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의원은 최근 <일요신문>(1085호)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만약 안 전 후보가 이번 재보궐에 출마한다면 새누리당 지역(부산 영도구 의미)에 가서 의석을 빼앗아오는 게 더 낫지 않냐”며 안 전 후보의 노원병 출마에 대한 경계를 드러낸 바 있다.
한편 문재인 전 후보는 지난 2월 26일 모처럼 국회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지난해 12월 19일 대선 패배 이후 국회 의사일정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그간 지역구인 부산 사상에 주로 머물면서 서울에 오면 의원회관의 자기 사무실에 들르고 말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문 전 후보는 이날 오후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등 2월 임시국회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열린 본회의에 참석했다. 본회의장에서 2시간 30분가량 안건 처리에 참여한 뒤 먼저 자리를 떴다. 감회를 묻는 기자에게 그는 “특별한 감회는 없다”며 “오늘 의결사항도 많고 중요하니까 당연히 참석해야한다”고 답했다. 문 전 후보는 그 이틀 전에는 부산 사상구 삼락생태공원에서 열린 정월대보름 행사에서 지역구민들과 만났다.
민주당 내에서는 문 전 후보의 이 같은 행보를 의미 있는 변화로 보고 있다. 본격적으로 정치 일선에 복귀하는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문 전 후보 측은 “확대해석을 하지 말아달라”고 하지만, 당내 비주류의 의심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비주류가 경계하는 이유는 친노 일부에서 제기되는 ‘문재인 당 대표 출마론’ 때문이다. 대선 패배 책임론으로 수세에 몰렸던 친노세력이 역으로 대선후보였던 문 전 후보를 당권주자로 내세워 정면돌파한다는 것이다. 대표 경선에서 문 전 후보의 성적에 따라 책임론도 자연스레 희석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대표 출마론이 나온 배경은 친노의 위기감이다. 당초 친노 주류는 대선 과정에서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았던 김부겸 전 의원을 민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김 전 의원에 대해서는 친노 내부에서도 호불호가 갈린다. 한때 손학규계였던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기류도 있다.
반대로 김 전 의원 입장에서도 언제든 친노에게 토사구팽 당할 수 있다는 의심을 버리기 어렵다. 특히 주류에서 범친노로 분류되는 정세균 전 대표의 출마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알려져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 전 대표는 전대 출마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선거 공천권을 갖는 임기 2년의 당권이 비주류로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면 문 전 후보가 유일한 카드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전환되면서 대표의 권한이 막강해진 것도 친노 입장에서 당권을 포기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와 관련해 문 전 후보의 당권 도전에 긍정적인 친노 인사들은 ‘당 혁신작업을 성사시킬 리더십을 갖춘 유일한 대안’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한 친노성향 인사는 “리더십은 사람이 중요하지, 지방선거 공천권을 갖는다고 자연스레 리더십이 생기지 않는다”며 “지난 대선에서 1469만 표를 얻은 문 전 후보보다 더 리더십을 갖춘 인사가 당내에 누가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문 전 후보가 이번 전대에 직접 뛰어들기보다는 당분간은 의정활동에만 전념하면서 기회를 엿볼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또 다른 친노 관계자는 “문 전 후보 자신부터 출마에 부정적이며, 출마론은 일부에서 설왕설래하는 수준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소위 친노로 분류되는 사람들 중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고, 괜히 무리수를 두다가 자칫 당의 소중한 자산인 문 전 후보에게 회복 불가능한 상처만 입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문신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