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구석 있어 ‘호가’ 높이나
▲ 이재현 CJ회장(왼쪽), 최근 CJ가 계열 금융사 매각에 나서 그 의도를 놓고 추측이 무성하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재계 정보통들 사이에선 이미 ‘CJ와 몇몇 업체가 접촉했다가 가격 차이가 너무 커 협상이 결렬됐다’는 소문까지 퍼진 바 있다. 여러 재벌들이 금융업 확대를 도모하는 시점에 CJ가 해당 계열사들을 처분하려는 진짜 속셈과 더불어 CJ가 원하는 매각가에 대한 ‘거품 논란’이 업계 인사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30대 재벌군에 속하는 여러 대기업들이 최근 금융업 신규 진출 혹은 강화를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는 이야기가 재계에 파다하다. 증권사의 지급결제 기능이 허용되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이 2009년 2월로 다가오면서 그동안 제한돼온 재벌의 은행 소유의 길이 사실상 열린 까닭에서다. 이 같은 추세와는 대조적으로 이재현 회장의 CJ그룹은 금융계열사인 CJ투자증권과 CJ자산운용을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이는 CJ그룹이 지주회사제로 전환됨에 따라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요건을 맞추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비금융 지주사는 증권사 같은 금융계열사를 보유할 수 없으므로 그룹 지주사인 CJ㈜는 2009년 말까지 보유 중인 금융계열사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별도의 금융지주사 설립으로 CJ투자증권과 CJ자산운용을 지킬 수도 있겠지만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터라 매각을 통한 ‘실탄 장전’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평이다.
일각에선 CJ투자증권·자산운용 매각을 지주사인 CJ㈜의 경영상태 개선을 위한 조치로 해석하기도 한다. 공시에 따르면 CJ㈜의 지난해 3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2분기에 비해 각각 26%와 40%씩 감소했다. 지난해 2분기 영업이익이 1분기에 비해 10.7% 감소한 것에 이은 하락세의 연속이다.
CJ투자증권의 최대주주는 지분 59.69%를 보유한 CJ㈜며, 그 뒤를 CJ개발(11.05%), 이재현 회장(2.95%)이 잇고 있다. CJ그룹이 CJ투자증권·자산운용을 고액에 매각할 경우 하강곡선을 그려온 CJ㈜ 재무제표에 단비가 내리는 셈이다.
지난 3일 공시에 따르면 CJ㈜는 189억 원을 들여 CJ투자증권 주식 33만 주를 추가 매집하기로 결정했다. 실적 하락에 처한 상황에서도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지분 매입에 나선 것은 CJ투자증권 매각에 대비한 최대주주 지분율 높이기 포석으로 받아들여진다. 공시에 나온 주식 취득목적은 ‘주가 안정을 통한 주주이익 제고’였지만 결국 ‘회사 매각에 대비한 주주이익 제고’로 풀이되는 것이다. 항간에는 CJ가 CJ투자증권·자산운용을 턱없이 고가에 팔아넘기려 한다는 논란도 제기된다. CJ투자증권의 자본총액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1969억 원이다. CJ투자증권이 CJ자산운용의 지분 91.8%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CJ투자증권만 인수하면 CJ자산운용은 부수적으로 따라오게 된다.
이 회장과 CJ 측이 보유한 CJ투자증권 지분율은 73.7%. 최소한 1451억 원에 프리미엄이 붙는 정도를 매각가로 추산해볼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재무제표 수치로만 놓고 봤을 때 위 계산처럼 나올 뿐 경영권 인수 효과와 증권사·자산운용사의 라이선스 가치, 상장 후 주식가치 상승 가능성 등을 모두 고려하면 위 금액을 크게 웃돌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CJ가 책정한 CJ투자증권·자산운용 매각가격이 1조 원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론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많은 업계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치다. CJ투자증권·자산운용 인수 효과를 감안한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라 해도 자본총액을 다섯 배 이상 웃도는 가격이 과연 적정한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것이다.
CJ가 이 같은 가격을 원하는 배경엔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최근 들어 금융업 강화를 위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현대차그룹은 올 초 신흥증권을 인수해 제조업 기반의 그룹 몸통에 금융업을 신 성장 엔진으로 탑재하는 첫 발을 뗐다. 일각에선 신흥 금융강자를 꿈꾸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자본금 580억 원 규모의 신흥증권으로 만족할 수 없을 것이란 관점에서 현대차의 CJ투자증권 인수설이 제기됐다. 이에 현대차는 지난 10일 공시를 통해 ‘CJ투자증권·자산운용 인수설은 사실무근’임을 밝혔다. 그러나 금융업 강화 의지와 자금력을 겸비한 현대차는 원하든 원치 않든 CJ 금융계열사 매각과정 내내 인수 후보군에 오르내릴 전망이다. 한편 CJ는 CJ투자증권·자산운용 매각 방침과 함께 CJ투자증권의 상장 가능성도 흘리고 있다. 상장될 경우 지분 가치가 폭등해 매각 단가가 치솟을 수 있다는 점을 CJ가 이용하고 있을 가능성에 재계 인사들이 주목하고 있다. 현재 CJ가 주장하는 1조 원이 당장은 비싸 보일지 몰라도 상장 변수를 감안하면 결코 무리한 가격이 아니라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