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은 A업체, 어깨는 C업체가 ‘수술’
“너무 충격이다.” “어느 병원인지 알고 싶다.”
J 병원의 불법 수술 실체를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김해 시민들은 J 병원을 직접 알아내 일부는 항의 전화와 방문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J 병원은 김해에서 유명한 종합병원으로 손꼽힌다. 250병상 규모의 J 병원은 특히 정형외과 치료로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사건 실체가 드러난 것은 J 병원 출신의 한 직원이 경찰에 J 병원의 실체를 제보하면서부터다. 간호조무사로 알려진 제보자는 “환자 수술을 해보라”는 원장의 말을 거부하자 바로 병원에서 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제보자 외에도 원장의 수술 권유를 거부하고 해고된 직원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라고 전했다.
경찰이 확인한 J 병원의 실체는 충격적이었다. 이 병원 간호조무사 허 씨는 수술실에서 수술복을 착용하고 치질과 맹장 수술 등을 70회에 걸쳐 진행했다. 뼈를 갈아내거나 골절 부위에 드릴로 핀을 박는 고난이도 수술도 허 씨의 몫이었다. 허 씨가 병원에서 불린 직함은 ‘수술실장’. 환자가 마취되면 김 원장은 “허 씨가 20여 년간 간호조무사 생활을 해 수술을 많이 지켜본 경험이 있다”며 수술을 맡기곤 했다고 한다.
허 씨와 더불어 수술에 가담한 이들은 의료기 판매업체 대표와 직원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대표가 환자 수술을 하면 직원들은 간호사처럼 이를 보조하는 식이었다. J 병원과 거래하는 의료기기 판매업체는 총 4곳. 직원들은 자신의 업체가 납품하는 의료기 종류에 따라 수술 분야를 나눴다고 한다. 무릎, 발목, 팔꿈치 관절 수술은 A와 B 업체, 어깨관절 수술은 C 업체, 허리디스크 등 척추수술은 D 업체가 하는 식이다. 이렇게 이들이 ‘집도’한 수술만 1100여건에 달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불법 수술을 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바로 원장 김 씨의 ‘한탕주의’ 때문이었다. 김 씨가 J 병원을 설립한 시기는 2011년 2월. 김 씨는 병원을 설립하자마자 “수술 잘하고 진단서 잘 끊어주는 병원”으로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보험금을 노리는 ‘나이롱 환자’를 유치하고 자신 역시 보험공단으로부터 보험급여를 타기 위한 것.
경찰 관계자는 “김 씨는 지난 2009년 정형외과를 운영하다가 진료비 수가를 허위 조작해서 보험금을 타내 구속된 바가 있다. 그만큼 돈에 대한 애착심이 강한 인물이다. J 병원을 설립할 당시 딱 3년만 운영해서 대박을 터뜨리고 손 털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J 병원의 소문이 퍼지자 전국 각지에서 가짜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가족들을 모두 끌고 오거나 심지어 제주도에서 찾아온 가짜 환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환자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많아지자 김 씨는 간호조무사와 의료기 판매업자에게 수술을 맡기기 시작한 것이다.
가짜 환자들은 보통 수천만 원에서 억대의 보험금을 타냈다고 전해진다. 이들이 부당 수령한 보험금 규모는 총 100억 원에 달한다. 3억 원의 보험금을 타낸 한 가짜 환자는 멀쩡한 몸임에도 발목, 무릎, 허리, 어깨 수술 등을 받았다고 한다.
불법 수술과 보험금 수령 사실은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J 병원과 김 씨와 관련한 의혹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병원장 김 씨가 병원을 운영하며 마약을 투약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향정신성 의약품인 브롬을 수차례에 걸쳐 투약했다는 간호사들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조만간 수사 결과가 발표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밖에 경찰은 J 병원과 조직폭력배의 연관성을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자세하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김해 일대의 조직폭력배가 J 병원을 찾아가 ‘프로포폴’을 요구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 역시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고 밝혔다. 무자격자들의 수술뿐 아니라 병원관계자들의 마약 투여설, 조폭과의 연계설 등 의료기관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의 엽기행각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한편 J 병원의 엽기적인 행각으로 ‘진짜 환자’들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간호조무사와 의료기기 판매업자가 진행한 수술 중에는 왼발을 다친 환자의 오른발을 수술하거나 심장이 아픈 환자에게 “어깨에 뼈가 자라서 깎아야 한다”며 수술을 진행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의료사고도 속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술을 받았는데 걷지 못하거나 팔을 못 올리는 후유증을 앓고 있는 피해자도 있다”며 “아직도 이런 제보가 하루에도 5~6건씩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의료기 판매업자 수술 비일비재? “기기 사용법 설명 위해…” 기기를 납품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수술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밖에 기기 사용법을 병원 측에 쉽고 빠르게 알려주기 위해 수술을 진행한다는 의료기기 판매업자들의 제보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J 병원에서 불법 수술을 했던 의료기기 판매업자 중 한 명인 오 씨는 최근 부산의 한 병원에서도 수술한 정황이 포착되어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기기 판매업자들의 수술 관행은 많이 알려져 있긴 하지만, 워낙 암암리에 진행돼 제보가 없이는 적발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