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삼성 철옹성’ 분당에 우뚝
▲ 분당에 있는 국내 최고가 오피스텔 타임브릿지 전경. 입주자 대부분이 삼성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타임브릿지는 국내에서 가장 비싼 오피스텔이란 점 외에도 소유주들이 대부분 삼성의 전·현직 임원들이란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는다. 타임브릿지에 있는 228세대의 주인 중 삼성 직원이 아닌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올 가을 삼성그룹의 강남사옥 이전을 앞둔 시점이라 삼성이 강남시대를 대비해 인근에 구축해놓은 전초기지로 해석되기도 한다. 특히 분당은 강남 삼성타운과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 수원공장의 중간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지리적 요충지’라고도 할 수 있다. 삼성과 관련이 없을 경우 입주는커녕 안을 구경해 보기조차 어려운, 철옹성과도 같은 타임브릿지의 비밀 속으로 들어가 본다.
타임브릿지는 호화 오피스텔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는 분당구 정자동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곳이다. 37층으로 이뤄진 114m짜리 고층빌딩이 마치 개선문을 연상시키듯 높다랗게 뻗어 있어 주변을 압도한다. 1층과 2층엔 40㎡(12평)형 이내의 작은 개인 사무실용 공간들이 40여 개 있고 3층부터 37층까지 195~300㎡(58평~90평)형 오피스텔들이 들어서 있다. 오피스텔이라고는 하지만 195㎡형 이상의 경우 방 네 개와 주방 거실 욕실 세탁실 등이 구비된 전형적인 아파트형 구조다. 내부에 공동이용시설로 연회실과 방문객 접견실 및 노래방 독서실 휘트니스센터 사우나까지 갖추고 있다.
얼핏 이야기만 들어도 호사스럽기 이를 데 없는 타임브릿지 내 대부분의 공간은 전·현직 삼성 임원들 명의로 돼 있다. 지난 2004년 10월 삼성전자가 자사의 상무급 이상 직원들에게만 분양을 한 까닭에 일반에 분양된 적은 없다. 분양 이후 지금까지 228세대 중 몇몇 오피스텔의 주인이 바뀌기는 했지만 공개적으로 매물이 등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인근 부동산업자들도 타임브릿지에 대해서는 “전세밖에 다뤄보지 못했다”며 “그나마 몇 번의 매매도 은밀히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밝힐 정도다.
공개적인 매물이 없다 보니 시세를 평가하기가 애매하지만 주변 부동산 업자들은 인근 오피스텔 시세를 참고해 적어도 ㎡당 1000만 원(평당 3300만 원)에 육박하는 가치를 지닐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분양 당시 가격의 세 배 이상이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삼성 측의 특별분양으로 인해 분양받은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막대한 평가차익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타임브릿지는 보안이 삼엄해 외부인은 절대 출입할 수 없으며 설사 내부로 운 좋게 들어간다 해도 출입증이나 내부 승인이 없으면 엘리베이터 작동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타임브릿지를 어떤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지는 부동산등기부를 통해서나 알 수 있다. 해당 등기부에 소유주로 등장하는 인사들은 대부분 삼성전자 혹은 삼성전자에서 그룹 전략기획실(옛 비서실·구조조정본부)에 파견돼 오랫동안 일한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삼성 측이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특별분양을 할 때 공헌도를 십분 감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타임브릿지 소유주 명부에선 대중에게도 제법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전·현직 임원들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N 에스원 대표이사 사장(전 전략기획실 부사장)과 L 전 구조조정본부 법무실장(사장급), L 전략기획실 사장과 J 전략기획실 부사장, P 삼성전자 부사장과 N 삼성전자 고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고층에 있는 264~300㎡(80~90평)형대의 오피스텔과 2층에 위치한 작은 개인용 사무실 하나씩을 갖고 있다. 그밖에 해외법인장 출신이나 삼성 펠로우(삼성그룹이 최고급 기술인력에게 부여하는 명예직)로 선정된 인사들이 타임브릿지 등기부를 채우고 있다.
이름깨나 알려진 인사들이 타임브릿지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정작 이 오피스텔 일대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고 한다. 인근 부동산업자들은 “삼성 사람들이 여기 살기보다는 별도 사무실 등으로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고 입을 모은다.
타임브릿지 228세대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이 오피스텔 한 채만을 소유하고 있는 인사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들 중 타워팰리스도 소유한 사람이 68명에 이르며 그 외에 서울 강남이나 분당 일대 호화 주택을 거주지로 해놓은 인사들도 많다. 등기부상에서 타임브릿지를 현 주소지로 해놓은 소유주는 18명에 불과하다.
타임브릿지가 주거공간보다는 별도의 목적을 위한 장소로 여겨지다 보니 타임브릿지 등기부에 대거 올라 있는 법조 출신 인사들의 면모가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타임브릿지 내 대부분의 공간이 그룹에 장기간 공헌도가 높은 인사들 위주로 분양됐지만 2000년 이후 삼성에 입사한 인사들의 이름도 제법 눈에 띄는데 이들이 대부분 법조계 출신이다.
광주지검 부부장을 지낸 K 전무, 서울중앙지검 출신 L 전무와 Y 상무, L 상무, 서울중앙지법 판사 출신 K 부사장과 K상무 등은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분양이 시작된 타임브릿지 등기부에 이름이 올라있다. 지난 2006년 2월 ‘삼성공화국’ 논란 수습책으로 그룹 법무실이 해체되면서 외형상 위축된 삼성의 법무진이 중대 사안에 대한 전략을 짜내는 별도 공간 중 하나로 타임브릿지가 주목받을 수 있는 셈이다.
정부 부처 경력을 지닌 인사들 또한 타임브릿지 등기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노무현 정권 말기 외교통상부 지적소유권부문 통상교섭자문위원을 지낸 K 삼성전자 법무팀장(부사장)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1과장 출신 C 삼성전자 상무가 타임브릿지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특검 수사와 이건희 회장 퇴진 등의 여파를 딛고 강남시대를 맞아 재도약하려는 삼성그룹의 향후 청사진이 삼성본관이나 계열사 집무실과 동시에 타임브릿지 내 어느 공간에서 마련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