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삼각 커넥션에 또다른 ‘징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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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풍언(왼쪽), 김우중 | ||
지난 6월 3일 ‘대우그룹 구명 로비’의 핵심인물로 의심받는 재미교포 사업가 조풍언 씨가 구속 기소된 후 검찰 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이 말은 조 씨의 구속을 신호탄으로 검찰이 DJ(김대중 전 대통령) 정권 실세-조풍언-김우중으로 이어지는 커넥션 전모를 파헤치겠다는 의지로 풀이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조 씨의 수사를 맡고 있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또 다른 인물인 중견 정보통신기업 D 사 L 회장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L 회장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정·재계에서는 ‘거물’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만큼 유력한 인사들과의 교분이 두텁기 때문. L 회장은 전두환 정권 때부터 김대중 정부까지 실세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L 회장은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 1980년대 중반 국내에 들어와 부도 직전이던 D 사를 인수한 후 회사를 정보통신업계의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 배경에 그의 막강한 연줄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L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구성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위원장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여기엔 L 회장 부인이 숙명여대 출신인 데다 관련 단체 간부를 맡으며 이 위원장과 친분이 있고 L 회장도 숙명여대와 관련 있는 사적 모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L 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DJ 정부 핵심 실세였던 A 씨와도 각별한 사이라고 전해진다. L 회장은 사업을 하기 위해 도미한 1970년대 중반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A 씨를 만나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둘의 관계는 A 씨가 불미스러운 일로 공직에서 낙마했을 때 L 회장이 D 사가 입주해 있는 건물에 A 씨의 자리를 마련해준 것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면서 알려졌다. 또한 수년 전 L 회장이 미국에 지었던 호화 저택도 사실은 A 씨를 위한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었다. 현지 교민들 사이에서는 “L 회장이 A 씨의 미국 재산 관리인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검찰이 L 회장을 대우그룹 정·관계 로비 의혹, 더 나아가 DJ 비자금 의혹과 관련 있는 인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DJ 정부에서 실세 중의 실세라고 불렸던 A 씨와의 관계로 봤을 때 L 회장도 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L’이라는 이름이 자주 나왔다”면서 “(L 회장이) 조풍언 씨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검찰은 L 회장에 대한 자료 수집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D 사가 과거 정권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는지와 L 회장이 대우그룹 퇴출 저지를 위한 정·관계 로비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가 핵심이다. 두 사안 모두 DJ 정부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결국 L 회장 수사도 조 씨의 구속 기소와 마찬가지로 DJ 정부를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우선 검찰은 과거 D 사가 대기업과 관공서 등에 통신용 전원장치 제품을 사실상 독점 납품하게 된 것에 권력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히 DJ 정부 들어 회사 매출액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등 급성장한 것에 주목하는 것. 당시 청와대와 감사원 등에는 “D 사가 정권을 등에 업고 특혜를 누리고 있다. 이 때문에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고 있다”라는 투서가 여러 차례 들어왔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 제기만 있었을 뿐 조사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어 “이번엔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검찰 측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L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쟁사들의 시샘일 뿐”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검찰은 DJ 정부 말기에 D 사의 일부 자금이 해외로 나간 것에 대한 분석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D 사는 2002년 C 사의 주식 140만 주가량을 대주주로부터 약 60억 원에 사들였다. 검찰은 미국에 소재한 C 사가 사실상 L 회장 개인 소유의 회사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D 사는 L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사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듬해 C 사는 영업을 중단하고 폐업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D 사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10억 원 상당의 C 사 지분을 합쳐 모두 70억 원의 손실을 보게 됐다. 검찰의 시각대로라면 L 회장은 청산을 앞둔 C 사의 지분을 D 사에 매각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것이다. 자신의 개인 회사가 사정이 어려워 곧 문을 닫게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분을 판 것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많아 보인다.
또한 D 사의 ‘해외시장 개척비’ 집행 내역을 확인해보면 2002년부터 급증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999년 3억 2000만 원, 2000년 4억 2000만 원가량이던 것이 2002년 13억 2000만 원, 2005년 21억 3000만 원으로 늘어났다. 검찰은 이 기간 D 사의 해외시장 개척비가 증가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과다하게 집행된 것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 검찰은 L 회장이 C 사 매각 대금이나 해외시장 개척비 등이 본인과 가족의 미국 체재비 혹은 A 씨의 해외 비자금 등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어떤 경우든 회사 돈을 해외로 빼돌린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사용처를 확인해야 한다는 게 검찰의 판단으로 보인다. 실제로 L 회장은 노무현 정권 시절 상당 기간을 미국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D 사의 성장세도 정권이 바뀐 2003년부터 한풀 꺾였다. 한때 900억 원가량을 기록했던 매출액이 2003년 600억 원, 2005년 460억 원까지 떨어진 것이다.
D 사는 ‘구명로비 의혹’의 진원지인 대우정보시스템 지분도 2.59% 가지고 있다. 지난 2002년 1주당 2만 원에 10만 주를 매입한 것. 한데 같은 기간 대우정보시스템의 최대주주인 조풍언 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KMC Ltd.의 대우정보시스템 지분도 48.86%에서 45.34%로 3.52% 줄어들었다. 지분이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L 회장과 조 씨가 지분 거래를 했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우중 전 회장이 조 씨를 통해 인수하려다 실패한 대우통신 TDX(전자교환기) 사업(<일요신문> 837호 보도)도 L 회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말이 검찰 주변에서 들리고 있다. D 사의 핵심 사업도 TDX 부문이기 때문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DJ의 측근인 A 씨의 후광을 바탕으로 L 회장이 대우그룹 퇴출 저지에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김우중 회장이 대우통신의 TDX 사업권을 D 사에 주려는 시나리오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일요신문>은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의혹에 대해 L 회장의 입장을 직접 듣기 위해 D 사 회장 비서실에 질문 요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L 회장 측은 “그동안 이런 저런 의혹들이 있었지만 사실로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관련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