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살 깎아 ‘미다스 손’에 수백억 안겨
▲ 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된 조풍언 씨. 연합뉴스 | ||
구 씨에 대한 검찰 조사 사실이 알려지면서 구 씨가 대주주인 회사 레드캡투어의 주요주주로 부상한 ‘카인드익스프레스 리미티드’(Kind Express Limited·카인드익스프레스)라는 홍콩계 회사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글로리초이스차이나’(Glory Choice China·글로리초이스)와 더불어 조풍언 씨와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보이는 이 회사가 구 씨 ‘주식대박’의 밑거름이 돼준 까닭에서다.
<일요신문> 837호는 조풍언 씨가 사실상 소유해온 것으로 알려진 대우정보시스템의 1대 주주인 글로리초이스가 카인드익스프레스와 연결된 정황을 보도한 바 있다. 조 씨는 지난 2006년 자신이 사실상 대주주로 있는 대우정보시스템의 전환사채(CB)를 시세보다 저가로 글로리초이스에 매각해 회사에 365억 원가량의 손해를 입힌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 석연치 않은 거래 결과 글로리초이스는 대우정보시스템의 1대 주주로 등극했는데 검찰은 글로리초이스를 사실상 조 씨가 지배하는 해외 법인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글로리초이스는 같은 해 9월 구본호 씨와 더불어 레드캡투어(당시 미디어솔루션)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20만 주를 배정받았다. 이후 레드캡투어의 대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회사가 바로 카인드익스프레스다. 공교롭게도 이 회사는 글로리초이스와 회사 소재지, 대표이사 이름이 동일한 것으로 공시내역에 나타나 있다. 카인드익스프레스가 글로리초이스와 마찬가지로 조 씨와 밀접하게 연결된 회사일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따라서 구본호 씨가 이 두 회사의 뒷배로 보이는 조 씨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구 씨가 레드캡투어의 대주주가 된 시기는 지난 2006년 9월. 구 씨는 그해 9월 29일 주당 7000원으로 실시된 유상증자에 참여해 100만 주를 배정받았으며 행사가격이 8390원인 신주인수권부사채(BW·일정 기간이 지나면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청구할 수 있는 사채) 180만 주도 함께 취득했다. 아울러 그해 12월엔 장외매수를 통해 45만 주를 주당 1만 9500원에 인수했다.
그런데 구 씨가 대주주 반열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그해 10월 18일 카인드익스프레스가 구 씨로부터 BW 90만 주를 넘겨받게 된다. 당시 매입가격은 주당 4만 5000원. 카인드익스프레스가 총 405억 원을 구 씨에게 지불한 셈이다.
구 씨가 레드캡투어 대주주가 되는 과정에서 투자한 돈은 유상증자 참여 금액 70억 원, BW 매입비용 151억 원, 장외매수 투자액 88억 등 총 309억 원이다. 그런데 구 씨가 자신이 보유한 BW 중 절반을 카인드익스프레스에 넘기면서 405억 원을 챙겼으니 주식 투자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본전을 뽑고도 남은 셈이다. 결국 카인드익스프레스가 ‘구본호 주식대박 신화’의 밑거름이 돼 준 것이다.
구 씨가 8390원에 산 BW를 카인드익스프레스가 5배 넘는 가격에 사들인 까닭은 무엇일까. 일단 레드캡투어 주가 상승폭에 대한 기대감 반영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LG그룹과는 지분관계가 전혀 없으면서도 LG 총수일가 일원이라는 점 때문에 당시 구 씨의 레드캡투어 대주주 등극 과정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주가 역시 급상승곡선을 그려나갔다. 7000원 대에 머물러 있던 레드캡투어 주가는 구 씨의 유상증자 참여 소식 이후 폭등해 당국으로부터 ‘이상급등종목 지정’(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했으니 투자시 유의하라는 일종의 경고)을 받기도 했다.
2006년 9월 발행된 레드캡투어 BW가 지난 4월 보통주로 전환돼 추가 상장되면서 카인드익스프레스는 레드캡투어 지분 10.48%(90만 주)를 보유한 대주주 반열에 오르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레드캡투어의 주가다. 6월 4일 현재 1만 700원에 불과하다. 최근 구 씨에 대한 검찰 조사 여파가 주식시장에 미쳐 급락한 부분도 있지만 한때 주식시장을 호령했던 대박주의 위용은 찾아볼 수가 없는 셈이다.
주당 4만 5000원에 BW를 사들였던 카인드익스프레스의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BW 매입 시점과 현재를 비교해볼 때 평가손이 309억 원에 이른다. 구 씨가 카인드익스프레스에 BW를 매각해 레드캡투어 투자원금을 회수하고 다른 업체들에 재투자했던 것과 극명하게 대조될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카인드익스프레스의 다른 투자 내역을 살펴보자. 카인드익스프레스는 지난 2004년 5월 28일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할리스이앤티(당시 에이치비엔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주당 1700원)에 참여해 주식 300만 주를 배정받아 대주주 반열에 올랐다. 투자금액은 총 51억 원이다.
카인드익스프레스는 이 회사 지분 매입 1년 6개월 만인 2005년 11월 28일 보유 지분 중 절반인 150만 주를 처분했다. 당시 주가는 3500원 대였다. 결국 1년 6개월 만에 보유 지분 절반만 팔고도 투자금액을 회수한 셈이다. 카인드익스프레스는 현재도 여전히 할리스이앤티 지분 150만 주(5.81%)를 보유하고 있다.
카인드익스프레스가 주식 절반을 매각한 직후 할리스이앤티 주가는 4000원 선을 잠시 돌파하기도 했지만 이후 줄곧 하강곡선을 그려 6월 4일 현재 775원에 머물러 있다. 카인드익스프레스가 주가 흐름을 적절히 간파해 이익을 취해온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추후 할리스이앤티 주가가 상승세를 맞게 되면 지분 150만 주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카인드익스프레스가 취하게 될 이익도 늘어나게 된다. 현재 카인드익스프레스의 지분 보유 목적은 종전의 ‘경영참여’에서 ‘단순투자’로 바뀌어 있는 상태다.
이렇다 보니 ‘카인드익스프레스가 2006년 10월 당시 구 씨의 BW를 왜 5배나 비싼 가격에 사들였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레드캡투어의 주가 흐름을 잘못 해석한 것인지 아니면 구본호 씨와의 ‘말 못할 특별한 거래’가 있었던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다.
카인드익스프레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조풍언 씨에 대한 검찰 수사는 최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주변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검찰 주변에선 옛 대우 측 자금이 돌고 돌아 레드캡투어의 유상증자 대금으로까지 흘러갔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조풍언 씨에 대한 보다 상세한 검찰 조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조 씨와 구본호 씨 사이의 ‘거래’에 얽힌 비밀도 조금씩 드러날 전망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