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MB를 구하라’ 황영기의 밀어주기?
▲ 노무현 정부 시절 기업회생의 달인으로 불리던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 | ||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이 퇴임한 것은 지난 5월 27일. 행장 취임 1년 2개월 만이었다. 지난해 3월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은행장의 임기가 끝나고 회장직과 행장직이 분리되면서 신임 은행장으로 부임했던 박 전 행장. 그는 새 정부의 금융·공기업 CEO들 재신임 과정에서 탈락하고 그의 이력은 그렇게 끝을 맺는 듯했다.
박 전 행장은 우리은행의 자산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저조했던 카드부문의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랬기에 재신임 실패 배경을 놓고 하마평이 무성했다. 일각에선 함께 퇴진한 박병원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의 불화설에서 원인을 찾는 등 구구한 억측이 나돌았다(<일요신문> 836호 보도).
박 전 행장은 이른바 ‘이헌재 사단’(IMF 당시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이헌재 전 부총리 인맥)의 일원으로 분류돼 왔다. 삼성화재 상무로 ‘잘나가던’ 박 전 행장을 서울보증보험에 앉힌 것도, 카드대란 때 사면초가에 몰린 LG카드에 투입한 것도 이헌재 전 부총리였던 까닭에서다. 박 전 행장은 지난 1998년 외환위기로 공적자금이 투입돼 있던 서울보증보험 사장직에 올라 20조 원대에 달하던 부실을 털고 5년 만에 회사를 정상화시켰다. 2004년엔 LG카드 사장에 올라 6조 원대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1년 만에 1조 원 순이익을 내는 흑자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박 전 행장은 김대중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경제정책을 주도한 이른바 ‘재경부 마피아’의 수장으로 불린 이 전 부총리가 위기 때마다 활용한 ‘특급 구원투수’였던 셈.
▲ 대선 전 선대위 출정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가운데)과 황영기 전 우리금융 회장(맨 오른쪽). | ||
황영기 전 회장은 우리금융에 가기 전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이사를 거쳐 삼성증권 사장을 지냈고 박 전 행장은 서울보증보험 사장이 되기 전 삼성화재 상무로 있었다. 같은 시기에 삼성 금융계열사 사장·임원을 지낸 두 사람은 이후 전·현직 우리은행장의 인연까지 맺는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다음날인 2월 26일 박해춘 당시 우리은행장은 황영기 전 회장과 중국행 비행기에 동승했는데 우리은행의 중국 개인 대상 인민폐 영업허가를 받기 위해 박 전 행장이 황 전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이뤄진 일이었다. 방중 과정에서 황 전 회장은 친분이 있던 중국 고위인사들과 일일이 만나 영업허가를 따내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다. 박 전 행장과 함께 ‘이헌재 사단’의 핵심으로 불려온 황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 초대 금융위원장 물망에 올랐지만 정의구현사제단이 공개한 떡값로비 명부에 올라 구설수에 휩싸이면서 무산됐다. 최근엔 산업은행 신임 총재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됐으나 결국 민유성 전 리먼 브러더스 서울지점 대표가 그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황 전 회장은 여전히 정부 산하 주요 기관 수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재계 일각엔 황 전 회장이 전면에 나서기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코드가 맞으면서도 능력을 검증받은 박 전 행장을 일선에 내세우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박 전 행장의 국민연금관리공단 입성 의미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경제정책을 이끈 ‘이헌재 사단’색을 탈피해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경제 브레인이 되는 과정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한편 박 전 행장의 발탁이 인사 문제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파문으로 입지가 축소된 현 정부에게 국민연금 문제 개선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드러낸 것이란 평도 있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 중 하나로 평가받는 국민연금 문제 해결을 통해 전 정권에 대한 비교우위를 얻겠다는 의도로 풀이되는 것이다.
아울러 이명박 정부의 ‘삼성’에 대한 고려가 있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경제발전을 모토로 한 현 정부가 특검 수사와 재판으로 움츠러든 삼성의 활동반경을 넓혀 고용과 투자를 확대하도록 만드는 데 삼성 출신 인사들을 가교로서 활용할 공산이 클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