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절망 가득할 때가 투자 적기
▲ 위험과 공포는 체험 없이도 느낄 수 있다. 사진은 지난 9·11 테러 당시 모습. | ||
투자에서는 공포심이나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개 시장에 공포심이 가득할 때가 최적의 매수 타이밍이었다. 가까운 예로 1997년 외환위기가 그랬고 9·11 테러 때도 그랬다. 대형 악재로 인해 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진다면 그 시기는 투자를 멈출 때가 아니라 오히려 투자를 해야 할 때다.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면 이렇게 자명한데도 사람들은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사람들은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게 될까.
사람의 귀 위 끝부분과 같은 높이의 뇌 중심부에는 편도체라는 작은 복숭아 모양의 조직이 있다. 사람들이 어떤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편도체는 마치 경보기처럼 공포와 분노 같은 강력한 반응을 일으킨다. 편도체는 새롭고 낯설거나 혹은 공포심을 유발하는 어떤 자극이 들어오면 번개처럼 순식간에 관심을 쏟아 집중하는 것을 돕는다. 예를 들어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자동차가 뛰어나올 때 순식간에 사람들이 반응을 하는 것은 이 편도체의 도움 때문이다. 만일 그런 위험한 순간에 경보음을 울리는 뇌의 기능이 없다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커다란 사고를 입고 말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이 느끼는 이런 두려움이 반드시 실제 위험을 체험하지 않아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즉 뇌 자체가 두려움을 느끼면 그것을 실제 두려움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신경과학자인 앙트완 베카라는 이를 두고 “당신은 10층 건물의 옥상에서 뛰어내릴 때 느끼는 공포심을 알기 위해 실제로 뛰어내릴 필요는 없다. 뇌는 실제의 체험이 필요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미국의 저명한 투자 칼럼니스트인 제이슨 츠바이크의 <머니 앤드 브레인>이란 책을 보면 인간이 느끼는 공포심의 ‘무논리성’을 검증하는 질문이 나온다. ‘원자로와 햇빛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위험할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경운동가가 아니더라도 원자로가 더 위험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역사상 최악의 핵 유출 사고는 1986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서 원자로가 녹아내리면서 발생했다. 사고 초기에 언론에서는 대대적으로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방사능 오염으로 사망자 수가 수십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얘기했다. 참혹한 핵 유출 사고는 사람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와 박혔다. 그러나 2006년까지 실제 사망한 사람은 불과 100명도 채 안 됐다. 반면 미국에서 햇빛 과다 노출로 인해 발생하는 피부암 사망자는 매년 8000여 명에 달한다.
살인으로 죽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자살로 죽는 사람이 많을까. 사람들은 살인사건을 언론에서 크게 보도하는 바람에 살인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는 자살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 자동차 사고와 비행기 사고도 마찬가지다. 비행기 사고는 한 번 발생하면 탑승자 전원이 죽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당연히 TV에서는 비행기 추락사고 현장을 생생하게 다룬다. 하지만 비행기 사고로 죽는 사람보다는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참고로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은 무려 600만 분의 1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체험하지 않아도 그런 상황에 직면한 것만으로도 두려움이나 공포심을 느낀다.
사실 위험에 대한 공포심은 인간의 생존 가능성을 매우 높여 주는 역할을 한다. 갑자기 보도 위로 자동차가 뛰어오르거나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뎠을 때 편도체에서 경보음을 울리지 않으면 그 사람은 크게 다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원시시대 우리 조상들이 강한 포식자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공포에 대한 반사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에 만들어진 주식시장과 같은 투자의 세계에서는 편도체의 도움은 왕왕 재앙으로 끝나곤 한다.
공포심에 가득 찬 사람들은 빨리 공포심에 벗어나기 위해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곤 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 집단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주식을 팔면 같이 매도해 버리거나 사람들이 매수 행렬에 나서면 그에 동참하는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하지만 집단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합리적인 판단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군중심리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10대들을 대상으로 한 뇌 관찰 결과에 따르면 그들은 또래 집단에 있을 때 전두엽피질의 활동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두엽피질은 ‘뇌의 최고 사령관’ 혹은 ‘뇌의 CEO(최고경영자)’라고 불리는 곳으로 논리적 사고, 인내심, 이성적인 태도 등을 관장하는 부위다. 집단은 공포심의 탈출구 역할은 하지만 독자적인 사고 능력을 떨어뜨린다. 즉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식이나 부동산 폭락으로부터 느끼는 두려움이나 공포심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까. 먼저 대형 사건이 발생해 가격이 폭락하면 그 대열에 동참하지 말고 거리를 두어야 한다. 한 발 물러서서 사태를 멀리서 쳐다보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주가가 폭락하면 아예 그 날은 주식 시세를 쳐다보지 않는다. 두려움에 주식을 팔거나 주식형 펀드를 환매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힐까 무섭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의 투자 이유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는 것이다. 이 때 좋은 방법은 명상을 하거나 아니면 종이에 직접 적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제이슨 츠바이크는 이런 질문을 던지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가격 하락 등 주가 이외에 변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처음에 투자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높은 가격에 살 정도로 이 주식을 좋아했다면 훨씬 가격이 낮아진 지금 주식을 사는 것을 좋아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 투자한 종목은 과거에도 이처럼 하락한 적이 있었던가. 있었다면 지금 내가 파는 것이 유리할까 아니면 더 사들이는 것이 유리할까.’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뛰어난 투자가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느끼는 공포심을 역이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국 월가에서 존경받는 투자가 중 한 명인 존 템플턴 경은 ‘비관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의 원칙’(The Principle Of Maximum Pessimism)으로 자신의 투자 철학을 표현한 적이 있다. 즉 비관론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가 최고의 투자 적기라는 것이다. 템플턴 경은 또 이런 말도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늘 이렇게 묻습니다. 어느 곳의 전망이 좋으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올바른 질문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어느 곳의 전망이 최악이냐’고 말입니다.”
투자의 세계란 인간들의 탐욕과 공포심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투자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이 탐욕을 부릴 때 한 발 물러설 수 있는 자제력과 공포심이 가득할 때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