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돈잔치에 검찰 칼날 ‘바짝’
▲ 조풍언 씨(왼쪽) 수사 후폭풍이 재벌가 자제들을 덮칠 전망이다. LG가 3세 구본호 씨 체포 이후 10여 명의 재벌 2·3세들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를 것으로 알려진다. | ||
현재 검찰이 주가조작 등 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려놓은 재벌가 인사들은 15명가량이다. 10대 재벌군에 속한 대기업 총수일가의 장손으로 훗날 그룹 총수직을 물려받을 것으로 보이는 인사와 20위권 재벌 기업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인사 등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유력 재벌가 일원들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 구 씨 경우처럼 코스닥기업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나서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으로 추가지분을 획득했다. 재벌가 2·3세들이 대주주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해당 업체의 주가가 폭등하게 마련. 재벌가 인사들이 해당 업체에 대한 내부정보를 사전에 확보했다거나 대기업 자본이 해당 업체에 투입될 것이란 기대감이 투자자들 사이에 확산되는 것이다.
주가 폭등 이후엔 재벌가 인사들이 주식을 팔아 엄청난 차익을 실현한 반면 ‘재벌가 특수’를 잃은 해당 코스닥 업체들의 주가는 하향곡선을 그려 소액 투자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다. 구 씨 역시 지난 2006년 9월 8390원에 배정받은 레드캡투어(당시 미디어솔루션) BW 180만 주 중 절반을 불과 20여 일 만에 5배가량인 4만 500원에 팔아넘겨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현재 검찰에선 조풍언 구본호 씨 수사를 담당하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박용석 검사장)를 비롯해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1부(부장검사 봉욱)와 2부(부장검사 우병우)가 재벌가 인사들 주식거래 수사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진다. 웬만한 대형 게이트 사건에 버금가는 인력이 투입되고 있는 셈이다. 구 씨 외에도 그동안 재벌가 인사들이 증시에서 편법으로 큰 재미를 봤다는 풍문은 수도 없이 나돌았다. 그러나 검찰이 이처럼 재벌가 2·3세들의 부당 주식거래 의혹에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전례는 없었다.
일각에선 조풍언 씨 수사를 원활하게 진행하려는 포석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재벌가 인사들 중 일부는 투자과정에서 구 씨의 직·간접적 도움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구 씨와 연결된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날 경우 조풍언 씨 자본이 여기에 투입됐을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조 씨의 대우 구명 로비의혹에 대한 정황 파악이 여의치 않아 조 씨 자본과 관련된 재벌가 인사들을 옥죄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재벌가 2·3세들 조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배경을 정치적 측면에서 찾는 시각도 더러 있다. 최근 몇몇 검찰 관계자들은 “이른바 쇠고기 정국으로 핀치에 몰린 청와대가 (정국 반전을 위해) 검찰 측에 대형사건 수사 진행을 독려한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들은 가까운 예로 카지노 수사를 거론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의 모든 수사 인력이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 그랜드코리아레저 비리 수사에 투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이미 2005년 말 이 사건을 수사했지만 정치권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검찰이 사건을 다시 꺼내든 뒤 검찰청 주변에선 해당 카지노 비리를 비호한 의혹을 받는 정치권 배후세력의 이름들이 줄줄이 거론되고 있다. 모두가 노무현 정부 실세 인사들이다.
관련 인사들의 무게감만 놓고 보면 이번 재벌가 2·3세들의 주가조작 의혹 수사는 카지노 사건 이상의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 수사 폭에 비해 사법처리 대상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검찰이 파악한 부당 주식거래 재벌가 인사 리스트에 정부 고위인사의 친인척이자 기업 총수일가 일원인 A 씨가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까닭에서다.
A 씨가 처벌받을 정도의 정황이 드러날 경우 안 그래도 정치적으로 몰려 있는 현 정부세력에 또 하나의 오점이 생길 수도 있다. 아직 정부 출범 초기인 만큼 해당 인사에 대한 사법처리 결정은 검찰에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반면 A 씨를 제쳐둔 채 다른 재벌가 일원들이 처벌을 받게 된다면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검찰의 결정이 주목된다.
기소 여부를 떠나 검찰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 다 퍼져버린 상태라 수사선상에 오른 재벌가 인사들이 전전긍긍하고 있을 법하다. 일각에선 유력 재벌 총수일가 일원들의 약점을 쥔 청와대와 검찰이 해당 인사들에 대한 처벌 강행 대신 정부에 대한 적극 협조를 유도해낼 가능성도 거론된다. 경제 부흥을 기치로 출범한 현 정부가 재벌 총수일가 일원들의 치부를 틀어쥐고서 기업의 고용·투자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을 노릴 수도 있다고 관측하는 것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