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걷히고 실적 나야 ‘테마주=기대주’
안철수 거품이 가라앉은 안랩과 김연아 효과를 보고 있는 귀금속 ‘제이에스티나’를 만든 로만손이 테마주로서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2년 만에 복귀해 세계선수권 왕좌를 되찾아 온 김연아 선수. 우승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아사다 마오와의 질긴 인연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 증시에도 꼭 들어맞는다. 대통령이 직접 증시 작전세력 엄단을 지시하고, 이에 따라 사정·금융당국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지만, 그래도 증시에서 테마주의 생명력은 질기게 계속되고 있는 까닭에서다.
당장 ‘징~하다’고 말한 김연아 선수는 최근 가장 주목 받는 테마주의 주인공이다. 김 선수가 착용해 일약 유명해진 귀금속 ‘제이에스티나’를 만든 로만손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 매출에서 김 선수가 착용하는 제이에스티나의 비중이 무려 70~80%에 달하다 보니, 우승 소식 직후 주가가 급등했다.
지난 20일 주요 방송사와 일부 은행 전산망이 해킹당하면서 안랩도 오랜만에 다시 주목 받았다. 안랩은 지난해 ‘안철수 테마주’로 주목 받았지만, 동시에 사이버보안 대표 업체다. 아이러니하게도 안랩은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대선 도전 실패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화두에 부응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수혜주’로 주목 받았다. 최근에는 안 전 교수의 귀국과 정치 복귀로 주가가 요동치며 정치 테마주로서 여전한 저력을 과시했다.
지난 18일 자신 사퇴한 황철주 전 중소기업청장 내정자의 주성엔지니어링도 테마라면 테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부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중기청장에 전격 기용되면서 정책수혜를 입을 것이란 기대감에 주가가 크게 올랐다가, 사퇴 소식에 다시 급락하며 테마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젠 꽤 지난 테마지만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관련, ICT 수혜주도 대표적인 테마주 흐름이다. ICT 테마주는 미래부의 정식 출범이 지연되면서 되레 역풍을 맞고 있다.
정부에서 시퍼런 칼날을 꺼내 들었는데도 이처럼 테마주가 끊이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전문가들은 증시의 자연스런 모습이라고 분석한다. 한 자산운용사 본부장은 “주식은 할인된 미래가치에 대한 베팅이고, 어차피 시장도 100% 합리적일 수는 없다 보니 기대심리에 많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작전세력 엄단에 나섰다지만, 증시 본연의 기대심리까지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특히 최근 등장한 테마들은 실적 개선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바탕으로 한다는 데서 지난해 증시를 달궜던 대선 테마주와 구별된다. 김연아 선수가 광고모델로 활동한 기업 중 유독 로만손만 올랐을 뿐, 매일유업이나 동서(맥심커피) 같은 종목들의 주가는 되레 부진하다. 김연아 효과가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느냐가 주가 흐름을 좌우한 것이다. 서용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로만손은 김연아, 손연재 등 동·하계올림픽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 마케팅을 통해 실질적인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이버보안 테마주로 안랩이 주목 받는 것도, 지난해 안철수 효과에 따른 거품이 가라앉아 주가 수준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면서 업계 1위의 가치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많다. ICT 관련주도 결국 정부의 지원 가능성 여부에 따라 주가가 움직였다.
결국 최근 테마주의 흐름을 종합하면 ‘테마주=작전주’였던 지난 대선 때와 달리 ‘테마주=기대주’인 셈이다. 비정상적인 주가 흐름이 그리 길게 가지 않고, 어느 정도 상승이 이어지면 차익 매물이 나오는 점도 지난해와 다른 점이다. 지난해에는 비정상적인 주가 상승과 하락이 상당기간 반복된 테마주들이 많았다.
최근 이 같은 기대주들이 시장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이유는 기존 대형주의 부진도 한몫을 한다. 용산역세권개발 사업 난항으로 건설주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해운사들은 배를 팔아 연명할 정도로 어려운 사정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증시의 큰 기둥인 국내 주요 수출 대형주도 일본, 미국, 유럽의 경쟁사들의 반격으로 주춤하는 모습이다.
한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된 대형주 랠리는 이제 일단락을 짓는 모습이다. 당분간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할 가치주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이들 가치주들은 중소형주들이 많은데, 이 경우 랠리가 여러 테마를 거치며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고 조언했다. 당분간 여러 테마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주가가 들썩일 수 있다는 예상이다.
최열희 언론인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중기청장 포기 사연 회사 살리기 ‘발등에 불’ 일요신문DB 게다가 주성엔지니어링의 어려운 경영상황도 걸림돌이다.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1146억 원으로, 전년의 손실 96억 원보다 무려 11배 이상 급증했다.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태양광 사업 때문이다. 그나마 지난해 말 유상증자를 단행한 덕분에 자본잠식은 면했지만, 올해를 장담할 수 없다. 창업주인 황 대표의 리더십이 절실한 상황이다. 결국 황 대표로서는 경영권 위협에, 회사 경영 상황마저 악화시킬 수 있는 중기청장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만 이번 황 대표의 중기청장 사임 단계에서 청와대와의 충분한 상의는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번 눈에 들면 버리지 않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로 볼 때, 황 대표가 현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는 아직 남은 셈이다. 21일 새로 지명된 한정화 중기청장 내정자가 학자 출신이라는 점은 현업 출신인 황 대표의 존재감을 더욱 크게 만들 수도 있다. 황 대표는 물리적으로 언제든 박 대통령의 부름에 응할 수 있다. 2012년 말 재무제표 기준으로, 21일 현재 주성엔지니어링 주가는 주가순자산비율(PBR) 2배다. 같은 반도체전공정 장비업체인 원익IPS의 1.17배보다는 고평가됐다고 볼 수 있지만, 유진테크의 3배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에도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주가수익비율(PER) 산출은 불가능하다. 태양광 부문의 부담을 줄여 현재의 적자 기조를 벗어나면 턴어라운드(Turnaround, 흑자전환) 기대감과 겹쳐 주가가 크게 오를 수 있다. 반면 최근 단기간에 주가가 상당히 오른 만큼 1분기에도 계속 적자가 난다면 현재보다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 역시 열려있다. 최열희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