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중국도 ‘세기의 대결’ 몰랐다
이세돌 9단과 구리 9단이 장시성 징더전시에서 ‘천신약업배 정상대결’을 펼쳤다.
베이징에서 단체전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에, 3월 20일에는 남쪽 장시(江西)성 징더전(景德鎭)시 랑이호텔에서 이세돌 9단 - 구리 9단의 ‘천신약업(天新葯業)배 정상대결’이 있었다. 이세돌 9단이 중국 구리 9단에게 백을 들고 236수 만에 불계승. 두 사람의 35번째 대국이었는데, 이 9단의 승리로 두 사람 간 전적은 17승1무17패, 딱 동률이 되었다는 것.
징더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자기 산지. 대국장에는 ‘도자기의 도시에서 도를 논하며 정상들이 대결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35번째 대결에서 원점이 된 것도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더 재미있다고 할까, 의아한 것은 이런 정상급의 대결을 한국기원도 중국기원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두 사람의 대결이 성사된 것인지, 상금은 얼마인지 뭐 하나 밝혀진 게 없다. 제법 오래전부터 간헐적으로 거론되던 이세돌-구리 10번기의 전초전 혹은 탐색전, 그런 것 아니겠느냐는 사람, 최고급 도자기가 부상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10억 상당이라는 사람, 그 정도는 아니지만 몇 억은 된다는 사람…. 설만 분분하다.
아무튼 어색하다. 대국장에는 중국기원 류스밍 원장을 비롯한 유명 프로기사(왕년의 스타 류샤오광 9단, 여류 고참이며 국가대표 감독인 화쉐밍 8단)들과 징더전 시 체육국 바둑협회 간부, 그리고 중국에서 바둑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이창호 9단의 동생 이영호 씨 등이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한국기원과 중국기원이 몰랐는데 양국 기원 소속인 이세돌 9단과 구리 9단이 출연했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중국기원은 알고 있으면서 한국기원에 알리지 않았다면 그것도 말이 안 되는 무례다. 이세돌 9단이 초상부동산배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야 본인의 의사에 달린 것이지만, 이런 이벤트를 중국 측 누군가가 이 9단 개인하고만 의논했다면 그것도 말이 안 된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가자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기원은 둔감하고 이 9단은 무심하며 그렇다고 중국기원에 매달려 물을 수도 없으니까.
소개하는 바둑은 최철한-판팅위의 일전. 최 9단의 역전보다. 요즘 한창 기세가 올라 있을 판팅위를 만나 특유의 완력으로 지그시 한번 눌러 주었다. 그런 게 최철한의 매력이다.
흑8-10은 흑A로 나가 백B 때 흑C로 끊는 수가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여기 이런 약점이 있는데 반발할 수 있겠느냐는 그 나름의 배짱이었던 것. 여기서 최 9단이 힘을 한번 썼다.
<2도> 백1 다음 3쪽으로 몰고 5로 이어 버린 것. 고개를 들던 판팅위가 최철한의 받아치는 기세에 눌렸다.
<3도> 흑1부터 나가 눈치를 살핀 것. 최철한은 쳐다보지도 않고 2로 밀어 상변을 거두어 버렸다. 흑3으로 좌변이 들어간 것이 적지는 않지만, 여기는 대신 백4의 선수가 기분 좋은 자리. 백4는 그렇잖아도 선수하고 싶은 곳인데, 흑이 핑계와 타이밍을 만들어 준 셈이니까.
<3도> 흑1로 <4도> 흑1쪽을 끊고 싸우는 것은? 흑7까지 좌변 백을 잡는다면? 잡는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잡을 수 없다고 한다. 백8~12로 쉽게 사는 수가 있다.
<3도> 흑1로는 <5도> 흑1처럼 일단 나가고 볼 일이었다고 한다. 백은 2에서 4로 끊겠지만…. <6도> 흑1에서 7까지 정도를 그려볼 수 있는데, 이건 피차 만만치 않은 진행이라는 것이다.
<7도>는 <3도>에서 한참 더 진행된 후의 국면. 흑1 젖힐 때 백2로 봉쇄하려고 하자 흑3 찌르고 5에 껴붙였다. 일견 봉쇄를 피하는 맥점 같았다. 백A로 이으면 흑B로 치받는다. 백은 C로 끊을 수 없다. 흑D로 축이니까.
그러나 흑5에는 백6으로 먼저 끊어가는 산뜻한 맥점이 있었다. 흑이 E로 몰 수밖에 없자 백은 C로 몰아 흑F로 잇게 하고 B의 곳을 이어 깨끗이 틀어막았다. 이제부터는 백의 낙승지세였다는 것.
<7도> 백6 때 <8도> 흑1로 반발하는 것은 무리. 백2~6으로 저쪽 흑돌이 다 들어간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