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 다음엔 밀물… 조용히 ‘떡밥’ 마련
▲ 오랜 기다림 끝에 오는 상승장의 달콤함을 아는 강남 투자자들은 최근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증시를 지켜보고 있다. | ||
왜 그럴까. 강남지역 PB(프라이빗 뱅커)들은 강남 투자자들이 이미 투자해놓은 주식이나 펀드를 손해 보며 매매하기보다는 증시가 회복될 때까지 장기투자 개념으로 ‘장롱’ 속에 넣어두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랜 투자 경험으로 증시에 썰물이 있으면 언젠가 밀물이 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대신 이렇게 해서 잃은 수익을 만회하기 위해 강남 지역 투자자들은 기술적 반등시 단기 수익이나 하락장 수익이 높은 파생상품 매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강남지역에 위치한 A 증권사 PB 관계자는 “강남 지역 투자자들이 증시가 회복됐을 때 주식이나 펀드를 미리 환매하지 못한 것을 굉장히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패닉 상태는 아니다”며 “대부분 오랫동안 기다려 상승장을 맛봤던 투자자들이 많은 탓인지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하락장이 길어짐에 따라 일부 불안감을 표시하는 투자자들도 있다. 여러 증권사 PB 부서에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투자자들로부터 하루 10여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이들 전화의 대부분은 조정기간이 길어지는 이유와 함께 하락장이 얼마나 갈지 등에 대한 문의다. 일부 불만 섞인 전화도 있다. 고유가 상태에서 고환율 정책을 취해 물가불안을 가져오고, 이로 인해 긴축경제, 주가 하락이라는 악순환 고리를 심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다. 하지만 주식이나 펀드를 환매하는 행동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강남지역 PB들의 설명이다. 지금 팔아봐야 손해를 볼 것이 뻔한 만큼 상승장이 올 때까지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자는 전략이다.
그러나 증시 폭락시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하는, 추가 투자를 통해 손실율을 줄이는 ‘물타기 전략’은 아직 구사하지 않고 있다. B 증권사 PB는 “아직 바닥이 아니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올해 들어 하락과 상승이 세 번 정도 반복됐는데 이때 기관이나 개인의 실탄이 다 떨어졌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외국인들이 신용위기로 자국 내 자금이 부족한 데다 고유가로 한국 등 이머징 마켓이 긴축정책을 취하면서 수익을 거두기 쉽지 않다고 보고 빠지는 상황에서 이른 시일 내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쉽지 않다는 판단도 이런 결정을 뒷받침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강남지역 투자자들은 주식이나 펀드에 묶인 자금은 그대로 두되 나머지 자금들을 파생상품이나 채권에 투자해 마이너스로 돌아선 수익률을 만회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또 현금성 자산을 늘리면서 향후 증시가 바닥을 쳤을 때 투입할 실탄 마련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강남지역 PB에는 단기 수익이 높은 종합자산관리계좌(CMA·Cash Manage ment Account)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 그리고 주가연계증권(ELS·Equity Linked Securities)과 주가연계펀드(ELF) 등에 대한 투자 문의도 늘어나고 있다. CMA를 이용할 경우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단기간에 얻을 수 있어 경제가 불안할 때 안정되면서도 빠른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C 증권사 PB는 “최근 들어 투자를 통해 자산을 늘리기보다는 자산은 묶어두고 CMA를 통해 단기 자금을 활용하는 경향이 많다”고 설명했다.
과거 같으면 증시 하락에 인플레이션 우려가 클 경우 부동산 등 실물자산으로 옮겨가 위험을 회피했는데 현재는 부동산 침체로 이 같은 전략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반포 자이 아파트 미분양과 강남지역 아파트 가격 급락 등을 몸으로 겪고 있는 데다 부동산 규제가 여전한 상태에서 부동산에 뛰어들었다가는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ELS나 ELF는 주가가 짧은 시간에 폭락하지 않는 한 어느 정도 수익을 보장해주고 있어 최근 상황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주가 상승이나 하락종목을 점치기 힘든 상황이 계속되면서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나 ELF에 대해서는 관심뿐 아니라 자금 투입도 증가하고 있다. 주가지수를 자산으로 하기 때문에 하락장에서는 개별 종목 투자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상승장에서도 안정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머니마켓펀드(MMF·Money Market Funds)와 같은 증시 대기성 자금으로 돌려 향후 증시가 바닥을 찍고 반등할 때를 대비한 실탄을 마련하는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한편 지난해 베트남과 중국 증시가 껑충 뛸 때 베트남과 중국 펀드에 투자했다가 올해 큰 손해를 본 강남지역 투자자들은 해외 펀드 처리를 문의하기도 한다고. 상당수 강남지역 투자자들이 고점에서 베트남과 중국 펀드에 뛰어든 탓에 증시 폭락으로 수익률이 반 토막이 났다.
D 증권사 PB는 “투자자 상당수가 베트남과 중국 펀드 상투를 잡은 꼴이었다”며 “이머징 마켓은 쉽게 말하면 부침이 심한 코스닥 시장이나 다름없는데 너무 안일하게 보고 들어갔다가 큰코다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때문에 경제 상황이나 정부 정책, 변동성 등을 내다보기 힘든 이머징 마켓보다는 예측과 반응이 쉬운 국내 주식이나 펀드 위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바꾸려는 상담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 지역 PB들은 일반 투자자들도 강남 지역 투자자들처럼 최근 시장상황에서는 보수적인 투자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조언하고 있다. 주식이 경제 상황을 가장 선행하는 지표라고 볼 때 증시가 상승 반전할 때까지는 저점 매수 전략보다는 하락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이 합리적인 자세라는 것이다. 또한 증시에 최고 악재인 고유가가 언제 해결될지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단기간에 회복추세로 복귀하기는 힘들다는 점도 감안하라고 조언한다.
다만 저점 매수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현금 비중을 늘려나가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하반기 이후에는 증시가 어느 정도 회복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이때 매수를 통해 손해를 상쇄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투자할 때는 일부 악재들로 인해 주가가 지나치게 하락한 종목들을 위주로 골라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았다. 왜 빠졌는지, 왜 오르는지도 모르고 투자했을 경우 상승장에서 홀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한 증권사 PB는 “이번 하락장에서 많은 투자자들이 왜 필요자금이 아닌 여유자금으로 투자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몸으로 깨달았을 것”이라며 “하락장에서 장기적인 투자를 원한다면 신문 등을 통해 지나치게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내 조금씩 분할매수를 해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