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업’ 앞두고 집안 치부 드러날까 전전 긍긍
이는 박용오-박중원 부자가 두산에서 퇴출된 이후 벌어진 일이라 두산그룹과는 관련이 없다. 그러나 재벌가 2·3세 수사의 빌미가 된 구본호 씨가 LG총수일가의 방계 3세인 점과 달리 박 씨는 직계 4세라는 점, 박 씨 혐의가 형제의 난 당시 두산 총수형제들의 혐의와 같은 회사 돈 횡령이란 점 등이 부각되면서 박 씨 수사의 부정적 여파가 두산그룹에 미칠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중원 씨 횡령 혐의 관련 검찰 수사 소식이 전해지면서 성지건설의 주가가 폭락했다. 성지건설은 지난 2월 27일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인수해 재기 발판을 마련한 회사. 박 씨 소유였던 뉴월코프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던 날인 지난 8일 성지건설 주가는 12.04% 폭락, 하한가를 겨우 면했다. 7월 초 한때 2만 원대 진입까지 넘보던 성지건설 주가는 7월 10일 현재 1만 5950원을 기록 중이다.
두산가(家) 4세에 대한 검찰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된다는 소식은 두산그룹 주요 계열사 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7월 초 17만~18만 원대를 오가던 ㈜두산 주가는 7월 10일 현재 13만 9500원, 6월 말까지 10만 원대였던 두산중공업은 8만 6700원, 7월 초까지만 해도 3만 원대였던 두산인프라코어는 2만 7600원, 6월 말까지 1만 원대에 있던 두산건설은 8270원으로 하락한 상태다.
두산그룹은 현재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이라는 ‘대업’을 앞두고 있다. 회사 이미지와 직결되는 주요 계열사 주가 하락은 절대 반갑지 않은 일. 두산과 함께 포스코 한화 STX 현대중공업 등이 겨룰 것으로 보이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 사업계획과 함께 안정적 자금조달 여부가 승패를 가름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인수 후보들은 각각 비상장 자회사 상장을 통해 자금 조달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인수전에 가장 적극적인 포스코와 한화는 각각 포스코건설과 대한생명 한화건설을, 잠재적 후보인 STX와 현대중공업도 STX엔파코와 현대삼호중공업을 상장시킬 태세다. 이 회사들이 자회사 상장을 통해 취할 차익은 많게는 수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반면 두산은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 그룹 내에서 ‘값나가는’ 계열사들이 대부분 상장돼 있는 상태다. 이렇다 보니 두산이 경쟁자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주요 계열사 유상증자와 자사주 매각을 통해 자금 조달을 하려 할 것이란 소문이 증권가에 퍼지기도 했다.
지난 6월 17일 유가증권시장본부는 ㈜두산 두산중공업 두산건설 두산인프라코어에 대해 유상증자설에 대한 조회공시 답변을 요구했다. 지난 7월 2일엔 두산중공업 자사주 매각설과 관련한 공시 요구도 이어졌다. 두산 측은 즉각 ‘사실무근’이라 밝히고 나섰지만 업계에선 여전히 그 가능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계열사 주가 하락은 매우 좋지않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편 검찰의 박 씨 수사에 유상증자 관련 대목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뉴월코프는 지난해 9월 박 씨에 대한 50억 원 규모 유상증자 배정을 발표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씨가 지분 대부분을 처분하고 경영권에서 손을 떼 유상증자 계획이 번복됐고 결국 코스닥시장본부는 이 회사를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하게 됐다.
검찰은 박 씨의 유상증자 발표와 번복, 경영권 이양 과정에서 내부 정보를 이용한 시세조종이 있었는지를 살피는 것으로 알려진다. 만약 두산이 주가관리를 통해 M&A 자금의 일부를 조달하려 할 경우 호사가들 사이에 ‘간단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박중원 씨 수사와 더불어 비교 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2005년 두산 총수일가 ‘형제의 난’으로 박용오 전 회장을 비롯해 박용성-박용만 총수 형제가 모두 회사 돈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렇다 보니 ‘횡령 혐의로 곤욕을 치렀던 두산의 총수일가 4세가 또…’라는 표현이 곧잘 등장한다. 이 같은 분위기가 대우조선해양 인수 파트너십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수대금만 최고 10조 원에 육박할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이 가열되면서 기존 후보들 간의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박중원 씨 혐의는 금전적으로 두산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거론될 ‘두산 4세 횡령 혐의’라는 표현은 다른 회사들로 하여금 두산과의 짝짓기를 부담스럽게 만들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박중원 씨가 뉴월코프를 통해 벌어들인 돈이 박용오 전 회장의 성지건설 인수 자금 중 일부로 쓰였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박용오 전 회장이 지난 2월 성지건설 인수를 위해 주식 146만여 주(24.4%)를 730억 원(주당 5만 원)에 사들인 것이 알려지면서 자금 출처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2005년 형제의 난 이후 회사 돈 유용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박 전 회장은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에 벌금 80억 원까지 선고받았다. 그룹에서 퇴출당한 이후 박 전 회장은 두산 계열사 지분을 거의 처분했으나 변호사 비용까지 포함해 적지 않은 금액을 재판과정에서 써버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액의 별도 자금이 있지 않은 이상 성지건설 자력 인수가 쉽지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온 것이다.
박중원 씨가 뉴월코프 지분을 처분한 것은 지난 2월 27일. 묘하게도 박용오 전 회장의 성지건설 인수 발표가 난 날이다. 박중원 씨의 횡령 여부 등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성지건설과의 관계도 주목받을 전망이다. 박 씨 수사설이 한창 퍼지던 지난 4일 박 씨가 성지건설 부사장직에서 사임해 의혹과 성지건설 간의 연결고리 끊기에 나섰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성지건설 주식 매입자금 730억 원을 박중원 씨가 모두 충당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려워 박용오 전 회장의 다른 쌈짓돈 출처가 있을 가능성도 줄곧 거론돼 왔다. 한때 재계 일각에선 두산 총수일가를 응시하기도 했다. 비록 형제의 난으로 인해 얼굴을 붉힌 사이지만 재판과정에서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차원에서 두산 총수일가가 박 전 회장에게 일종의 ‘위로금’을 쥐어줬을지도 모른다는 미확인 소문이 증권가에 나돌았던 것이다.
재벌 2·3세 주가조작에 대한 검찰의 수사 범위가 점차 확대되면서 박 전 회장의 성지건설 인수자금 출처까지 거론될 경우 이제 박중원 씨와 아무 관계없는 두산그룹의 ‘속앓이’가 커질 듯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