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발탁-검증 과정 ‘총체적 부실’
연합뉴스
처음엔 정부 인사 과정에서 느꼈던 새누리당의 소외감을 전하는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화제가 인사 평가로까지 확대됐다. 그는 “인사를 하면서 대통령이 학연, 지연 고려하지 않은 건 좋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정책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갔다”면서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정책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야 하는데 정작 중요한 정책이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사에 대한 비판은 그야말로 날이 시퍼렇게 서 있었다.
“인사검증 때 200가지 질문지에 답변을 써서 내야 하는데, 청와대가 인사 할 때 거짓말을 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검증할 때 제대로 대답을 잘했다면 그 뒤에 그런 것들이 터질 수는 없다. 누구라고 말하지 못하지만 진짜로 괜찮은 사람들 중에 고사한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처럼 청렴한 사람들은 다칠까봐 못 나오고, 여기저기서 굴러먹어서 더러워져도 별 손해 볼 것 없는 사람들은 나온 것 같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남짓 된 시점에, 여당 고위 관계자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힘든 수위의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의 발언 내용이 기사화됐을 때 새누리당 관계자들이 보인 반응은 듣는 사람을 더욱 놀라게 했다. 적잖은 사람들이 “그 정도의 위치라면 사석에서 말고, 좀 더 공개적인 자리에서 얘기했어야 했다”는 것. 이는 내각 인선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던 새누리당 인사들의 소외감이 잇단 인사 참사를 지켜보면서 분노로 바뀌었음을 짐작케 했다. 마치 ‘겨우 그렇게 하려고 당을 그렇게 무시했느냐’고 항변하는 듯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최근 사석에서 기자들을 만나 이 같은 당청관계의 이상 기류를 ‘임기 말 징후’라고까지 표현하면서 우려를 쏟아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임기 말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대통령이 여당과 책임을 나눠지든가, 아니면 여당이 꼼짝 못하게 일을 잘하든가 해야 하는데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라며 “아무리 당을 친박계가 잡고 있다고 해도 지금처럼 인사를 해서는 집안 내부에서부터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무총리부터 시작해 공정거래위원장까지 이어진 박근혜 정부 차관급 이상 6명의 릴레이 낙마 과정을 돌이켜 보면 이 같은 비판과 우려는 충분히 이유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정권 출범 초기마다 일부 인사들이 불명예스럽게 낙마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초반의 인사 참사는 그 과정도 이전과는 적잖게 달랐다.
이전 정부의 경우 인사검증 과정에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른 인사가 있을 경우 청와대와 야당 간의 기싸움이 계속 됐다. 그러다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 대통령이 결단하는 방식으로 논란이 되는 인사를 낙마시켰다. 형식은 항상 ‘자진 사퇴’였지만 이는 어디까지 ‘대통령의 양보’ 성격을 띠었던 것이다.
김종훈 전 후보자는 부동산 취득과 사생활을 둘러싼 야당의 공세와 의혹 제기를 버티지 못했다. 황철주 전 내정자는 어처구니없게도 주식백지신탁제 앞에 공직 수임을 포기했다. 한만수 전 후보자는 국외 비자금 계좌를 보유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백기를 들었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기도 전에 논란의 당사자들이 먼저 백기를 들어버렸으니 박 대통령으로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었을 법하다. 특히 이들 3인은 박 대통령 스스로 발탁했던 ‘수첩 인사’의 결과물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박 대통령의 허탈감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일부 인사의 낙마로 인한 충격파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엄청난 부담으로 남게 됐다는 점도 이전 정부에서의 인사사고와 다른 점이다. 우선 한만수 전 후보자의 경우 지난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국가미래연구원(미래연) 출신이라는 점이 걸린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논공행상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미래연 출신들을 등용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다. 장·차관급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사에서 미래연 출신만 11명이 발탁됐다.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이 77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발기인 7명 중 1명이 등용된 것이다.
“지나친 편중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과 학연이나 지연으로 얽힌 사람들도 아니고, 전문성이 있는 적임자를 적소에 배치했을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한 전 후보자의 낙마는 이 같은 박 대통령의 미래연 편중 인사가 결국 탈이 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보여줬다. 이는 향후 인사에서 박 대통령이 미래연 출신들을 등용하는 데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 전 후보자 외에 김학의 전 차관의 낙마 역시 박 대통령에게 상상 이상의 부담을 줬다. 이른바 ‘고위층 성접대 의혹’ 사건에 연루됐다는 것 자체로도 국민 여론을 들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설상가상으로 경찰이 김 전 차관에 대해 내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청와대 민정라인이 사전에 인지하고도 임명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이는 국민들 사이에 ‘박 대통령이 찍으면 아무리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기용된다’는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정작 여권 인사들의 전언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박 대통령과는 직접적 인연이 없는 인사라고 한다. 애지중지했던 ‘수첩 인사’도 아닌 사람 때문에 박 대통령이 상당한 부담을 떠안고 가게 된 셈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