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권 인사 정리 작업 나서나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검찰의 출국금지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 3월 24일 인천국제공항에는 보기 드문 진풍경이 벌어졌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출국을 막기 위해 저마다 사진 한 장씩을 들고 시민들이 몰려나와 공항을 지켜서고 있었던 것. 이들은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원 전 원장을 막아야 한다는 ‘특명’ 아래 주말도 반납하고 공항을 지켰다.
시민들이 직접 나선 것에는 원 전 원장이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 객원 연구원 신분으로 해외연수를 떠날 예정이라는 언론보도가 크게 작용했다. 연이어 한 달 전부터 원 전 원장의 자택에서 대거 짐이 빠져나갔다는 소식이 더해지면서 해외도피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수많은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가 책임감 없이 꽁무니를 뺀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그러나 원 전 원장은 결국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날 그 이유가 밝혀졌다. 원 전 원장의 부인이 직접 해명에 나선 것. 원 전 원장의 부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4일) 휴식을 위해 가족과 함께 일본에 가려 했었다. 29일 돌아오는 항공편까지 예약해 뒀는데 왜 해외도피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원 전 원장은 퇴임 이후 줄곧 자택에 머무르고 있다”는 말로 비밀 출국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원 전 원장에 대한 비난과 의혹은 끊이질 않고 있다. 그가 대선 등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사안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사안이 수두룩한 것을 알면서도 출국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 찔리는 게 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노총과 전교조, 4대강 범대위 관계자들이 지난달 21일 원세훈 국가정보원 원장을 고발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들어서는 모습. 최준필 기자
이뿐만 아니라 앞서 지난 1월 수원진보연대 이상호 고문이 “불법 미행을 당했다”며 원 전 원장과 미행요원을 상대로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소당한 바 있다. 게다가 앞으로 예고된 고소·고발도 적지 않아 만약 원 전 원장이 해외로 출국할 시 수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은 뻔하다. 때문에 검찰도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을뿐더러 혹여 원 전 원장의 해외도피를 방조했다는 책임까지 묻게 될까 출국금지 요청을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원 전 원장의 출국 시도가 고소·고발 때문만은 아닐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의 개인비리도 만만치 않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내사를 받고 있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원 전 원장이 해외에 호화주택을 구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당 차원에서 조사가 진행 중이다”라고 귀띔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전 정권 인사에 대한 정리 작업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원 전 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라는 점에서 개인적 비리를 들추어낼 경우 신구정권 갈등이 야기될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 정부의 전 정권 정리 작업은 원세훈 전 원장의 처리 여부가 그 첫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정적만 감도는 자택 쥐 죽은 듯…사는 거 맞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자택. 최준필 기자 2층짜리 단독주택인 원 전 원장의 집은 과거 그의 신분을 대변하듯 삼엄한 경비를 자랑하고 있었다. 주변의 집들과 비교해봐도 폐쇄회로 카메라(CCTV)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담장을 빙 둘러 CCTV가 설치돼 있었으며 창문 곳곳에도 경비업체의 마크가 붙어있었다.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20여 개의 동작감시센서 ‘덕분에’ 생각지 못한 인물도 만났다. 기자의 카메라를 담장 너머로 들이대자 수분 후 경비업체의 직원이 달려 나온 것. 그 직원은 몇 번이나 이런 일을 겪었는지 “자꾸 이러시면 경찰에 신고한다”는 경고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때마침 원 전 원장의 집을 지나치던 주민도 “그 집 한 달 전에 짐 나가서 비었다는데 왜 자꾸 오느냐”며 핀잔을 줬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원 전 원장의 집은 어딘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베란다에는 대형 매트리스와 이불, 운동기구들이 어지럽게 널린 모습도 볼 수 있었다. 2층은 모든 창문이 커튼으로 가려 있어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며칠 동안 원 전 원장과 그 가족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남현동 자택에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원 전 원장을 만나지 못한 아쉬운 마음에 그의 전 주소지도 찾아가봤다.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주택 및 근린생활시설로 원 전 원장은 지난 2003년까지 이곳을 주소지로 뒀다.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니 1988년 매입해 소유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부인에게 증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곳 역시 원 전 원장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현재 명품 전당포가 크게 자리하고 있었는데 인근 상인은 “원 전 원장의 건물인지도 몰랐다. 주거지로 사용되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