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만 생겨도 걸고본다” ‘맞대기’는 중독 최고봉
스크린경마장에 가보면 휴대전화에 대고 숫자들을 중얼거리며 사설 경마에 베팅하는 경마객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사진은 마사회 영등포지점 앞 경마정보지를 쥔 손님으로 기사내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인터넷도박 규모가 무려 17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또 다른 불법도박인 사설 경마·경륜·경정과 사설 스포츠토토까지 포함하면 약 35조 원(2013년 국가예산 342조 원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에 달하는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그중 사설 경마는 중독성과 전문성에 있어 최악의 도박형태로 알려진다. 신생 도박좀비 소굴로 떠오른 사설 경마의 실태를 낱낱이 파헤쳐봤다.
“돈벌고 싶은가? 그럼 사설 경마를 해라. 도박꾼이 되라는 게 아니라 사설 경마 사이트를 운영하라는 소리다. 불법이라 겁난다고? 걱정 안 해도 된다. 걸려도 벌금 조금 내거나 잠깐 감옥에 다녀오면 끝이다. 그 대가로 수십억 원을 만질 수 있다.”
도박꾼의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 법하지만 이는 실제 사설 경마 사이트를 운영했던 A 씨의 생생한 증언이다. A 씨는 3년 전부터 사설 경마 사이트를 운영하며 그야말로 ‘떼돈’을 벌었다. 도박의 특성상 모든 거래는 현금으로 이뤄지는데 하루에 들어오는 돈을 일일이 계산하는 것도 벅찰 정도였다고 한다.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한 A 씨는 “사설 경마는 실제 경주가 열리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단 3일만 열린다. 한 달 평균 12회 정도 경기가 열린다고 가정하면 월 5000만~1억 원은 벌 수 있었다. 막판에 재수가 없어 경찰에 걸렸지만 이미 내 수중에는 수십억 원이 있었으니 3개월 실형산 것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설 경마에 직접 몸 담았던 A 씨가 말하는 ‘맞대기’ 실태는 놀라웠다. 보통 사설 경마는 ‘맞대기’라는 은어로 통칭되는데 사전적 의미는 경마장 안에서 마권을 사지 않고 2명 이상이 우승 마필을 놓고 서로 내기를 하는 행위를 말한다. 현장에서는 사설 경마를 운영자 및 모집책들을 통틀어 ‘맞대기’로 부른다.
이러한 맞대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원조는 도박꾼과 일대일로 붙어 직접 베팅을 받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전화와 인터넷에 밀려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첨단 맞대기’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최근 다시 생겨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로 베팅하는 방법도 있다. 3일 동안 사용할 금액을 미리 맞대기에게 예치를 한 뒤 경기를 보면서 전화로 베팅을 하는 것이다. A 씨는 “경마장이나 마사회지점에서 규칙적으로 통화하는 사람들은 다 전화 맞대기 하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경마장은 한 경주에 최고 10만 원만 베팅할 수 있는데 맞대기를 이용하면 하루 수백만 원씩도 베팅이 가능하니 이 방법을 선호한다. 또한 맞대기는 돈을 다 잃어도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해 20%는 돌려주는데 이 돈으로 또 도박을 하기에 헤어 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설 경마는 중독성에 있어 최악의 도박형태다. 사진은 서울경마장으로 기사내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처럼 엄연히 불법임에도 맞대기가 활개 치는 이유에 대해 A 씨는 “맞대기가 쓰는 통장과 휴대전화는 모조리 대포(일종의 차명계좌)다. 사무실도 한 달에 한 번꼴로 옮겨 다니기 때문에 제보가 없으면 단속하기도 어렵다. 사실 단속 정보가 미리 새어나오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전화 맞대기보다 한수 위인 인터넷 맞대기도 등장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경마장이나 중계가 이뤄지는 마사회지점을 방문하지 않고 편안히 집에서 베팅이 가능하기에 빠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패가망신까지 이르게 될 수 있다. 사설 경마장 투자 경험이 있는 B 씨는 “경마장이나 마사회지점에서 베팅을 하면 단속에 걸릴 확률이 높아 점차 인터넷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마사회에서 각 지점으로 송출되는 전파를 중간에서 가로채 안방으로 실시간 방송해주는데 이를 전문으로 하는 업자에게 월 100만 원만 주면 된다”며 “현장보다 30초~1분 정도 늦게 영상을 받으나 베팅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집에서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이 베팅되니 재산을 탕진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고 말했다. 전파는 정부가 엄격하게 관리하는 국가의 핵심자원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간에 전파를 가로채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행위로서 인터넷 맞대기의 폐해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인터넷 맞대기가 큰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이 되면서 서로 ‘폭탄 돌리기’를 하다 업자들이 큰돈을 날리기도 한다. 종종 승부가 명백하게 예측되는 경기가 있는데 그곳에 베팅이 몰리면 큰돈을 물어줘야 하니 손해를 줄이려고 맞대기도 맞대기에 일단 베팅을 걸게 된다(보험이라 칭함). 인터넷 맞대기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이런 상황까지 발생하게 되는데, 마지막에 ‘폭탄’을 안은 이는 결국 파산하고 사이트를 폐쇄하기에 이른다.
B 씨는 “돈을 투자하는 사람이 아닌 손님을 끌고 오면 배당금(평균 10%)을 받는 모집책들은 폭탄인 줄 알면서도 베팅을 받는다. 그 맞대기에 이 베팅이 폭탄인지 아닌지 구별할 줄 아는 전문가가 없으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고 사업을 접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처럼 사설 경마가 심각한 수준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마사회는 관계자는 “인터넷 맞대기는 금시초문”이라며 “올해부터는 광케이블을 통해 각 지점에 전파를 전달한다. 사설 경마 운영자들이 아무리 고가의 장비를 사들여 전파를 잡으려 해도 우리 쪽에서 ID 부여를 해주지 않으면 전파를 쓸 수 없는 시스템이라 절대 우리 전파를 빼내갈 순 없다”며 인터넷 맞대기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또한 “사설 경마를 신고하면 포상금 1억 원도 지급한다. 하지만 아무리 단속을 해도 처벌수위가 너무 낮아 다시 사설 경마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잠깐 - ‘맞대기’란? 경마장서 마권을 사는 대신 여러 명이 우승 마필을 놓고 내기하는 방식. |
합법과 불법 사이 ‘웹보드게임’ 사이버 100억=현금 11만원 환전, 그 맛에 빠져… 물론 웹보드게임 자체가 도박중독자를 양산하는 것은 아니나 고스톱, 포커 등의 도박 게임에서 사용되는 사이버머니가 손쉽게 현금화된다는 것이 문제다. 온라인 게임을 통해 현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빠져드는 것이다. 웹보드게임의 대표주자인 한게임에 빠져 적금마저 깨버린 30대 주부 최 아무개 씨도 시작은 ‘취미생활’이었다. 최 씨는 “결혼 직후 혼자 있는 시간이 심심해 게임을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게 중독이 됐다.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다는 말에 부업삼아 더 열심히 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몰려 금요일부터 주말까진 비는 방이 없을 정도다. 때로는 하루에 20만~30만 원까지 따기도 했지만 2년이 지난 내게 남은 건 남편과의 불화와 빚뿐이다”며 신세를 한탄했다. 최 씨가 말하는 환전상이란 게임에서 사용하는 온라인 화폐를 현금화해주는 사람들을 말한다. 도박중독자 대부분은 꾸준히 거래하는 환전상이 있다고 하는데 이들로부터 수시로 시세를 전달받고 원하는 때에 현금으로 바꿔치기를 한다. 현재 시세는 사이버머니 100억 원이 현금 11만 원에 거래된다고. 대체로 환전상과 일대일로 게임을 진행, 일부러 게임을 져주며 사이버머니를 몽땅 넘겨준 뒤 계좌로 돈을 받는 방법을 쓴다. 이렇게 거래되는 검은돈은 지난해만도 무려 13조 5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환전상 대부분이 해외에 서버를 두고 활동하고 있어 단속이 쉽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게임회사들도 자사의 이익을 위해 환전상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어 단속이 어렵다는 지적도 뒤따르고 있다. 한게임 피해자들이 주축으로 모인 ‘인터넷도박방지위원회’ 이창근 위원장은 “이용자들이 도박에 빠지게끔 게임회사들이 방관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부직원이 환전상의 불법행위를 눈감아 주는 대신 부당이익을 챙겨 적발된 사례도 있다. 환전상이 없으면 게임하는 이들이 줄어 이익이 감소되기에 그들을 봐주는 것이다. 이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고 가정이 파탄 나는 등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게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업계 공통으로 클린센터를 운영하며 불법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신고도 받아 포상도 하고 있다. 회사 자체적으로도 중독의 여지가 있는 이용자에 대해서는 접속을 차단시키고 때로는 계정을 삭제해 접근을 막고 있는 등 최대한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