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 한몫 떼주고 아들 앞길 터주나
롯데그룹은 지난 9월 16일 공시를 통해 롯데상사가 500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알렸다. 비상장인 롯데상사의 대주주 명부는 신동빈 부회장 등 총수 일가들과 롯데쇼핑 등 계열사들로 채워져 있다.
이번 유상증자에서 최대주주인 호텔롯데는 237억 원을 출자했다. 총수 일가 인사들이 증자에 참여하지 않은 관계로 호텔롯데의 출자 후 지분율은 종전의 36.48%에서 39%로 올라가게 됐다. 대규모 출자를 한 호텔롯데 못지않게 눈길을 끈 것은 물류업체 롯데로지스틱스였다. 이 회사는 이번 증자에서 83억 원을 출자해 지분율 또한 종전의 12.78%에서 13.7%로 높아졌다.
이렇듯 비상장 계열사의 유상증자는 상장 소문을 잉태하게 마련. 비상장 상태에서 늘어난 주식을 기존 주주들이 낮은 가격에 나눠가진 뒤 상장을 통해 ‘대박’을 도모할 수 있는 까닭에서다. 이번 롯데상사 증자에서의 신주발행가액은 26만 9583원이다. 롯데 계열사들과의 거래를 통해 안정적 수입원을 확보하고 있는 롯데상사가 만약 상장을 하게 된다면 어마어마한 차익이 주주들 몫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재계에선 롯데그룹이 롯데로지스틱스의 외형을 넓혀주는 과정을 승계구도와 맞물려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롯데로지스틱스 지분 4.99%를 보유한 식품 납품업체 롯데후레쉬델리카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롯데후레쉬델리카는 신격호 회장의 지분 증여 덕분에 롯데로지스틱스 대주주가 된 회사. 신 회장은 지난해 12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롯데로지스틱스 지분 4.99%(48억 원어치)를 롯데후레쉬델리카에 넘겨줬다. 당시 롯데후레쉬델리카를 비롯해 롯데미도파 롯데브랑제리 롯데알미늄 등이 신 회장 지분을 증여받았는데 모두 결손법인들이라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아 편법증여 논란을 낳기도 했다.
그중 롯데후레쉬델리카가 주목을 받은 것은 신 회장의 두 딸들이 대주주로 등극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신동빈 부회장의 누나인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은 지난해 9월 롯데후레쉬델리카 지분 25만 주를 사들여 총 보유지분을 35만 주로 늘렸다. 같은 때 신 회장이 서미경 씨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신유미 씨 또한 롯데후레쉬델리카 지분 35만 주를 취득했다. 개인 최대주주가 된 두 사람의 지분율은 각각 9.31%. 신 부사장이 25만 주를 늘리는 데 약 6억 1000만 원, 신유미 씨가 35만 주를 사들이는 데는 약 7억 4000만 원밖에 들지 않았다.
이후로 롯데후레쉬델리카는 신 회장의 아들 신동빈 부회장으로의 ‘잡음 없는’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분가의 도구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롯데쇼핑 경영자로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해온 신 부사장을 신유미 씨와 묶어 롯데후레쉬델리카 대주주로 만들어준 것이 딸들에 대한 ‘딴 살림’ 차려주기 일환으로 비친 것이다. 신 회장의 무상증여를 통한 롯데후레쉬델리카의 롯데로지스틱스 대주주 등장, 그리고 롯데로지스틱스의 몸 불리기 작업을 통해 재계에선 두 회사가 분가에 활용될 가능성을 점치게 됐다.
롯데로지스틱스는 신 회장의 롯데후레쉬델리카에 대한 지분 증여 직전인 지난해 10월 롯데냉동과의 합병을 통한 물류사업 통합화를 이뤘다. 그런데 지난 3월엔 신동빈 부회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채정병 롯데쇼핑 부사장이 등기이사 명부에서 빠지면서 신 부회장 색깔 빼기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등장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롯데후레쉬델리카에서도 볼 수 있었다. 지난 6월 롯데후레쉬델리카 등기이사 명부에서 이름을 내린 좌상봉 호텔롯데 대표이사는 ‘신동빈 사단’ 핵심멤버로 꼽히는 인물이다. 신 부회장 역시 롯데쇼핑 상장을 목전에 두고 있던 지난 2005년 12월 롯데후레쉬델리카 등기이사진에서 제외됐다.
롯데 분가 전망과 관련해 시네마통상과 유원실업 또한 눈여겨 볼 회사들이다. 시네마통상은 지분 28.3%를 보유한 신영자 부사장을 비롯, 신 부사장의 세 딸들인 장혜선(7.6%) 선윤(5.6%) 정안(5.6%) 씨 등 일가가 지분 47.1%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006년과 2007년 유·무상증자를 통해 주식수를 네 배가량 늘렸다. 유원실업은 롯데그룹 계열사는 아니지만 서미경-신유미 모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로 역시 롯데 물량에 수익을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쇼핑이 두 회사에 수익성 높은 롯데시네마 매점을 헐값에 임대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억 2000만 원을 부과했다. 당시 공정위는 롯데의 지원 덕분에 두 회사가 2~3년 만에 50억~60억 원의 수입을 각각 올렸고 이를 통해 높은 배당금을 수령한 신 회장 딸들의 롯데후레쉬델리카 대주주 등극이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신영자 부사장은 앞서 거론한 회사들 외에도 롯데칠성음료(2.66%) 롯데기공(4.72%) 롯데쇼핑(0.79%) 롯데건설(0.15%) 롯데상사(1.74%) 코리아세븐(2.22%) 등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롯데로지스틱스가 롯데상사(13.7%) 코리아세븐(13.55%)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이들 회사들이 신 부사장 홀로서기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한다.
분가설과 관련해 롯데는 ‘사실무근’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재계인사들 사이에 제법 오랫동안 화두로 자리잡다보니 최근 신격호 회장의 부동산 거래와 관련해 호사가들 사이에 다소 ‘발칙한 상상’까지 더해지고 있다. 신격호 회장은 지난달 말 인천시 계양구 목상동 일대 토지 166만 7395㎡(약 50만 평)를 504억 원에 롯데상사에 매각했다. 신 회장이 1970년대에 매입한 토지인 만큼 엄청난 차익이 예상된다.
이번 거래는 해당 토지 일대에서 추진 중인 골프장 부지 확보 목적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롯데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지난해 말 결손법인에 대한 무과세 증여로 논란을 빚은 신 회장이 토지 매각 대금을 지분정리용 증여세로 활용할 가능성이 조심스레 거론되기도 한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