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욱 사건의 시작은 지난 해 5월이었다. 고영욱이 미성년자 여성을 연예인 시켜주겠다고 유인한 뒤 술 먹이고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알려진 것. 수사를 담당한 곳은 서울 용산경찰서 강력 2반이었다. 자신감 넘치게 언론에 보도 자료를 배포한 경찰은 사전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그렇지만 검찰에선 보강 수사를 요구하며 경찰의 사전 구속 영장을 반려했다.
수사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영욱은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었다. 여론 재판에선 경찰이 수사를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지난 해 5월 이미 유죄 선고가 내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실제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고영욱과 피해 여성이 주고받은 모바일 메시지 내용을 놓고 보면 이들의 성관계가 위력에 의한 성폭행으로 보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결국 이 사건은 검찰의 기소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혐의가 입증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이 사건 하나가 고영욱 사건의 전부였다면 오히려 경찰의 무리한 수사가 연예인의 인권과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한 사례로 남을 뻔 했다.
실제로 당시 경찰 수사는 지적받을 여지가 많았다. 우선 해당 사건은 경찰의 인지 수사로 진행됐다. 성폭행 사건은 친고죄로 피해자의 고소고발이 있어야만 수사가 가능하다. 피해자의 고소로 수사가 시작될 지라도 합의로 고소가 취하되면 수사도 종료된다. 다만 해당 사건은 피해자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친고죄가 아니라 고소고발 없이도 경찰 수사가 가능하다. 당시 용산경찰서는 학교폭력사건 단속 및 예방활동을 위해 학교 부근과 청소년상담센터 등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피해 사실에 대한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시작했다.
사전 구속 영장을 신청하는 과정에도 문제점이 엿보였다.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는 나이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13세 이하는 성관계를 갖는 것만으로 강간죄가 성립된다. 그렇지만 13세 이상은 상호 합의 하에 가진 성관계는 강간죄가 되지 않는다. 애초 경찰은 이 부분을 명확히 구분 짓지 않고 고영욱이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진 것만으로 사전 구속 영장이 발부될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기자가 만난 담당 팀 형사 역시 사전 구속 영장이 당연히 발부될 것이라며 그 근거를 피해자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라 설명했었다. 그렇지만 모바일 메시지 내용 등으로 볼 때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검찰은 사전 구속 영장을 반려했다.
결국 경찰이 너무 빨리 수사 내용을 공개하며 언론에 보도 자료까지 발송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또한 그 의도에 대해서도 의혹이 뒤따랐다. 당시 용산경찰서가 배포한 보도 자료의 주된 내용은 ‘미성년자 상대로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접근하는 범죄’였다.
그 즈음 연예인 지망생을 상대로 한 사건이 유독 많았다. 우선 유명 연예기획사 대표 장 아무개 씨가 소속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또한 녹음실에서 연예지망생을 성추행한 연예기획사 대표를 불구속 입건됐으며 연예인 지망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 보증금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가로챈 연예기획사 대표가 구속됐다.
당시 경찰청 주도로 연예 지망생 상대 범죄 집중 수사가 이뤄졌을 정도다. 용산경찰서가 배포한 고영욱 사건 첫 번째 보도 자료의 마지막 문구 역시 ‘미성년자 상대로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접근하는 유사 범죄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을 전개할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사전 구속 영장 신청이 반려되면서 용산경찰서가 다소 성급하게 무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실제 해당 사건만 보면 용산경찰서는 다소 무리한 수사를 진행한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해당 사건은 검찰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은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만 법적으론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찰 수사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고영욱은 이미 여론 재판에서 유죄를 받았다.
물론 수사 기관에서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수사를 진행해 기소한 사건이 재판에서 무죄를 받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수사 기관을 문제 삼을 순 없다. 반면 기소조차 못할 사건을 미리 언론에 공개한 것은 수사기관에 의한 심각한 명예와 사생활 침해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경찰 수사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영욱에게 유사한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 두 명이 연이어 고영욱을 고소했다. 게다가 이 가운데 한 명은 성추행을 당할 당시 나이가 13세로 알려져 더욱 충격이었다.
이렇게 피해자가 셋으로 늘어났음에도 검찰 기소는 이뤄지지 못했다. 우선 용산경찰서가 인지수사를 통해 드러난 첫 번째 피해자의 경우 위력에 의한 성관계임을 밝힐 만한 증거가 불충분했고 두 명의 고소 여성은 소를 취하했다. 물론 미성년자 성폭행 및 성추행 사건인 만큼 고소를 취하해도 수사는 가능했지만 검찰은 좀처럼 고영욱을 기소하지 못한 채 2012년을 마무리지었다.
상황은 2013년 1월 초에 반전됐다. 서울 서부경찰서가 고영욱이 또 다른 13세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 것. 서부경찰서 역시 사전 구속 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이번에도 반려했다. 다만 이유는 정반대였다. 앞선 용산경찰서 사건 세 건과 병합해서 사전 구속 영장을 신청하라는 취지였다. 다시 경찰은 검찰에 사전 구속 영장 신청을 요청했고 검찰의 사전 구속 영장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고영욱은 구속 기소됐다.
검찰의 기소로 정식 재판이 시작됐고 법원은 유죄 판결을 내렸다. 10일 오전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성지호 부장판사)가 미성년자 성폭행·강제추행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구속 기소된 고영욱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며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7년 동안의 신상정보 공개와 10년간 위치추적 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한 것. 재판부가 검찰 기소 내용을 거의 100% 받아들여 고영욱이 받고 있는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다.
다음은 선고 과정에서 성지호 부장판사의 발언 가운데 일부다. 얼마만큼 법원이 고영욱의 죄를 무겁게 판단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동 청소년이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청소년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아동 청소년은 우리 국가 사회의 미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아동 청소년이 성폭력에 노출될 경우 개인의 전인격적 요소에 장애가 될 수 있고 그만큼 국가적 손실이다. 아동 청소년 범죄가 날로 급증하는 만큼 엄하게 처벌함으로써 아동 청소년을 성폭력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법원의 책임이다. 피고인은 청소년의 선망과 관심 받아온 유명 연예인이다. 연예인을 공인으로 볼 수 있는지, 어느 정도 사회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유명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특혜 받을 수 없듯 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 그렇지만 고영욱은 미성년자인 피해자들이 유명인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선망을 이용해 간음 및 성폭행했다. 자신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이 사건에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은 아직 사리분별력 판단력이 부족한 피해자들을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피고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쳐야하는데 부인하며 변명으로 일관했다.”
애초 수사는 경찰의 다소 무리한 수사로 시작됐다고 볼 수도 있다. 자칫 수사 기관의 무리한 수사로 유명 연예인의 사생활과 명예가 심각하게 침해당한 것으로 기록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를 시작으로 추가 피해자들이 속속 등장했고 고영욱의 추후 범죄까지 드러났다. 앞선 두 피해자가 사법기관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못하고 홀로 마음고생하며 지냈던 것을 감안하면 마지막 사건의 피해자 비슷한 판단을 했을 위험성이 크다. 결국 용산경찰서의 인지수사 하나가 나비효과처럼 큰 위력을 발휘하며 숨겨진 피해자와 미래에 발생할 피해자까지 수사기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법원이 재범 위험성이 크다며 10년 동안의 전자발찌 착용을 명령한 것을 감안하면 또 다른 피해자들이 발생할 위험 요소까지 제거했다고 볼 수도 있다.
아직 재판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고영욱 측이 항소하면 2심, 3심 재판부의 결정까지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1심결과만 놓고 볼 때 경찰의 인지 수사 나비효과는 상당한 순작용을 만들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