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부터 찬바람…‘빙하기’ 대비하라
▲ 서울 강남구 도곡동 일대. ‘불패’로 여겨지던 강남 부동산시장이 최근 급락세를 보이면서 부정적인 경기 전망이 나오고 있다. | ||
강남권, 특히 가장 요지에 속하는 대치동과 도곡동의 아파트 값도 심리적 저항선인 평당 3000만 원선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서초·송파 역시 평당 2000만 원 이하 아파트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연초 부동산시장 급등을 이끌었던 강북권은 아직 하락세가 덜하지만 평당 1000만 원의 심리적 저항선을 지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강남권 아파트 값 하락은 부동산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남 집값은 향후 부동산시장의 움직임을 예상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시장 하락세가 장기화되면 그에 따른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재건축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재건축 사업 자체가 장기간 멈출 가능성이 크고 더불어 일반 아파트 분양도 사실상 ‘올 스톱’될 수 있다. 이 같은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재건축에 투자한 투자자들과 아파트 분양 사업 비중이 높은 건설사들의 자금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금융시장 부실로 이어져 경기 불황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즉 최근 부동산 값 급락이 ‘재건축·분양시장 중단→투자자·건설사 자금난→가계 및 금융권 부실’이라는 3단계 시나리오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최악의 상황이 진행되지 않도록 정부 당국자들이 나서겠지만 마냥 정부의 조치를 기다리기보다는 부동산시장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다가올’ 위험을 피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현명함이 필요한 때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우선 최근 부동산 값 급락에 가장 긴장하고 있는 재건축 시장과 신규 분양시장을 살펴보자. 그동안 재건축 시장은 인근 아파트 값을 기준으로 그 수익성이 결정됐다. 예를 들어 인근 30평형대 아파트가 10억 원이라고 가정하면, 30평형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재건축 아파트 평형의 시세에다 평균 아파트 공사비를 더해 8억∼9억 원선에 형성됐다. 투자자들은 1억∼2억 원의 시세차익을 기대하고 금융비용을 감당하면서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했던 것이다. 물론 향후 집값 상승과 함께 신축과 대규모 단지가 주는 프리미엄은 덤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인근 아파트 값이 하락하면 계산이 달라진다. 만약 인근 아파트 값이 9억 원선에 형성되면 힘들여 재건축을 하더라도 남는 게 없게 되고 8억 원으로 떨어지면 오히려 손해 보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
신규 아파트 분양 시장도 마찬가지다. 신규 아파트 분양 값이 단순히 땅값에 공사비를 더하고 여기에 건설사 수익을 추가한 가격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즉 인근 아파트 시세보다 좀 더 높게 분양가를 결정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공사비와 건설사 수익을 사후 조정하는 구조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그동안 분양가를 높게 받는 것은 사업성을 검토해서가 아니라 주변 아파트 값 수준에 맞췄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분양가 상한제’로 이를 막자 너도나도 지방에서 분양에 나서면서 대규모 지방 아파트 미분양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인근 아파트 값이 떨어지면 신규 아파트 분양가를 높게 받을 수 없다. 만약 분양가를 높게 결정하면 미분양을 감수해야 한다. 최근 미분양이 급증하는 것은 아파트 값 상승을 염두에 두고 높은 값에 부지를 확보하면서 어쩔 수 없이 분양가를 높인 것도 한몫했다.
재건축 사업과 신규 분양이 올 스톱되면 투자자와 건설사는 인내심을 테스트당할 수밖에 없다. 재건축 투자자 대부분이 재건축 아파트 매입 때 은행권의 도움을 받는다. 몇 년 전부터 담보 대출이 제한을 받고 있지만 통상 시세의 절반 이상을 대출받는다. 재건축 아파트 시세가 6억 원이라고 할 때 은행권에서 3억 원, 전세 1억 원, 자기돈 2억 원 내외로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한다.
재건축 아파트 값이 올라갈 땐 3억 원에 대한 이자가 부담이 없지만 반대로 재건축 아파트 값이 떨어지면 상당한 부담이 된다. 그것도 장기간 사업이 멈춘다면 불안감은 더욱 커진다. 특히 최근 담보 대출 이율이 크게 오르면서 이자 부담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결국 담보 대출이 많은 물건부터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이로 인해 매물이 쌓이면서 시세가 재차 하락해 또다시 매물이 나오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건설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신규 분양시장이 얼어붙기 때문에 돈이 돌지 않는다. 하지만 분양 부지 확보를 위해 은행권 대출을 받은 상태라 매달 수십억 원에 달하는 이자는 고스란히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일부 유동성 위기에 놓인 건설사들은 직원들을 닦달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한 건설회사의 경우 미분양 아파트가 1만 가구가 넘어 계열사 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고 또 다른 건설사는 직원들에게 미분양 물량을 떠넘겨 강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투자자들과 건설사들의 부실이 심화되면 은행권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것을 넘어 경제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는 단계로 발전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이 부분 통계가 시작된 지난 2001년 9월 이후 최고치인 7.16%를 기록했다. 이자 부담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부동산 거래가 안 될 경우 경매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 물론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가처분 소득이 줄어 내수 위축도 심화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무엇보다 은행권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Project Financing, 사업 자체의 경제성을 담보로 하는 대출)을 주도했던 저축은행은 벌써부터 빨간불이 켜졌다.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PF 연체율은 지난해 말 12.0%, 올 3월 말 14.0%, 6월 말에는 14.3%로 높아진 상태다.
양해근 우리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현재 시세보다 10∼20% 정도 부동산 값이 하락하면 가계 부실과 은행권 부실이 가시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삼성증권 PB사업부 김재언 부동산팀장 역시 “전 세계 부동산 값이 정점을 찍고 하락하고 있기 때문에 집값 하락세는 장기간 지속될 수 있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김명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