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청개구리’ 하락장 길목 지켜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비관론자들이 수익을 얻기 위해 투자하는 대표적인 상품은 일명 ‘청개구리 펀드’로 불리는 리버스인덱스펀드(리버스펀드·Reverse Index Fund)다. 리버스펀드는 말 그대로 지수(Index)와 반대로(Reverse) 투자하는 펀드다. 지수 흐름을 따라가며 수익을 내는 정통 인덱스펀드와는 정반대로, 선물 매도 등 지수와 반대로 움직이는 파생상품에 투자해 주가가 내리면 수익률이 올라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폭락장에서 리버스펀드는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9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 설정돼 있는 순자산 10억 원 이상인 6개 리버스펀드의 연초 대비 평균 수익률이 무려 29.37%에 달했다. 국내주식형펀드 680개의 유형평균 수익률이 -23.70%임을 감안하며 상대적 수익률이 50%를 넘는 셈이다.
가장 수익률이 높은 펀드는 우리CS운용의 ‘마이베어마켓파생1클래스e’로 연초 대비 수익률이 30.92%에 달했고, 역시 우리CS운용의 ‘마이베어마켓파생1클래스A’도 30.87%의 수익률을 자랑했다. 한국운용의 ‘한국부자아빠엄브렐러리버스인덱스파생상품A-1’과 푸르덴셜운용의 ‘푸르덴셜프리엄브렐러BEAR인덱스파생상품1’의 수익률은 각각 29.51%와 29.75%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리버스펀드를 통해 수익을 얻는 투자자들은 단순히 비관론만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라고 증권사 관계자들은 이야기한다. 리버스펀드로 수익을 내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3년간 코스피지수가 58% 오르는 동안 정통 인덱스 펀드는 67.5%의 수익을 낸 반면 리버스펀드는 36.6%의 손실을 기록했다. 최근 리버스펀드로 20% 이상 수익률을 올린 투자자들은 코스피지수가 올해 최고치인 1800p선에 갈아탄 사람들이다. 당시 2000p선까지 오른다는 이야기가 증권사를 휩쓸던 때인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리버스펀드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막연한 비관론자들이 아니라 상당수가 각종 뉴스와 자료 등을 정확히 검토해서 비관론을 펼치는 냉정한 승부사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라며 “증시가 오를 때도 우리나라 증시의 한계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천장에 도달한 시점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비관론으로 최근 장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는 또 다른 투자자들은 올해 공매도(자신에게 없는 주식을 빌려 파는 것)에 ‘올인’한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올 상반기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타고 있을 동안 쏟아진 공매도 물량은 약 60조 원이었다. 이 중 93% 정도가 외국인들이 공매도를 한 것이다. 최근 공매도용 주식을 빌려주는 것을 중단한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경우 빌려줬던 1조 5000억 원 규모의 주식이 외국인 공매도 물량이었다는 발표도 나왔을 정도로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 공매도 기세는 사나웠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판 뒤 다시 주식을 사서 갚아야 하는 만큼 주가가 떨어질 것을 예상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투자수단이다. 증시가 상승세를 보이기만 하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공매도한 주식을 떨어뜨리기 위해 외국인들이 각종 악성 루머를 퍼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도 외국인투자자들은 국내 투자자들보다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기 때문에 증시가 상승세에 있을 때 하락을 예상하고 공매도를 하는 경우가 잦다는 주장도 있다.
모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외국인의 경우 일반 투자자들과 달리 추격매수를 거의 하지 않고 어느 정도 이상 올랐다고 보면 매도세로 돌아서는 경향이 많다”며 “최근 사태 때문에 공매도를 주가 하락의 주범으로만 모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올리기 위한 투자기법에 불과하고 외국인이 이를 잘 이용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외국인들의 매매 경향은 단순히 한국 증시에 대한 비관론이 아니라 세계 증시에 대한 확고한 비관론”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서브프라임사태가 올해도 지속될 것이고 이는 세계적인 신용경색과 경기침체를 가져올 것이라는 비관론을 바탕으로 현금 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회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외국인이 단순히 공매도로 돈을 벌려고 한다는 정부의 음모론적 시각으로 보면 지난해와 올해 우리나라 증시에서 외국인이 70조 원 가까운 액수의 주식을 순매도한 것을 이해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증권 전문가들 중에서도 비관론을 펼쳐 최근 폭락장에서 주목받는 사람들이 몇몇 존재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과 이종우 HMC증권 리서치센터장. 김 센터장은 1년 가까이 약세장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주식시장 하락을 경고해왔다. 또 하반기에는 장이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 보고서가 쏟아질 때도 그는 “자산가치가 하락국면에 접어들어 주가 하락압력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에도 큰 폭의 반등은 어려울 것”이라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종우 센터장도 당분간 주가 하락이 계속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바닥론’과 기술적 반등 가능성을 주장하는 이들과 달리 그는 “시장이 극도의 공포상태라 합리적인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전망이 불투명하다. 바닥이 어딘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고 있다”며 더 하락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들처럼 일관되게 비관론을 펼치는 것은 실제로는 쉽지 않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매매가 자주 이뤄져야 수수료 이익이 생기는 만큼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보고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널리스트들 상당수는 긍정적인 보고서를 내놓기 일쑤다. 이와 달리 고소득 개인 투자자들을 관리하는 프라이빗뱅커(PB)들 중에는 비관론을 펼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큰손’들을 상대하는 만큼 자사에서 나온 증권 보고서를 믿기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 조언을 하다 보니 비관론에 거부감이 적은 탓이다.
모 증권사 임원급 PB는 올해 증시가 상승세를 탈 때 투자자들은 물론 기자들에게도 여러 이유까지 들며 비관론을 조목조목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도 증시가 이처럼 바닥없이 추락하는 것에는 걱정을 하고 있다. 자사 증권사 보고서에서 반등 예상 이야기가 나올 때 이와 전혀 달리 추가 하락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현금 확보 전략을 주장했던 한 증권사 PB는 “하락장이 지속되면서 투자자들 중 일부는 제대로 장을 내다봤다고 칭찬을 해주지만 솔직히 맘이 편하지는 않다”며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비관론을 내놓기는 했지만 증권맨이다 보니 아무래도 장이 활황을 보이고 거래가 활발하게 움직여야 살맛이 난다”고 털어놨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