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구력 통하는 구원투수 나와라’
미국 대선은 11월 4일 주별 선거인단을 결정하는 선거로 시작된다. 실제 선거인단에 의한 당선 확정 투표는 12월 15일이지만 11월 4일 주별 선거인단 투표에서 당선자가 사실상 결정되는 만큼 이 선거로 제44대 미국 대통령이 판가름 나게 된다. 왜 이처럼 이역만리, 그것도 남의 나라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증권가가 목을 매고 있을까. 그것은 미국 대선이 지난해 중순 촉발돼 올해 허리케인으로 커져버리면서 세계 경제를 삼키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원화 유동성 확대, 달러 유동성 확대, 은행채 매입, 증시 활성화 방안 등 갖은 수단을 내놓아도 국내 증시가 꿈쩍도 안하는 것은 바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가 미국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 효과’에서 보듯 우리가 국내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해봐야 미국에서 문제를 풀어주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지난 10·29 재·보궐 선거를 노린 대책이었다는 일각의 비판이 제기될 정도로 그다지 실효성이 없었다는 점도 증시의 발목을 잡기는 했다. 정부는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하고 은행채를 매입하겠다고 했지만 시장에서는 연말까지 회수되는 은행채 액수에 턱없이 모자란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증시 활성화 대책도 현재 주식 투자자나 펀드 투자자들에게 혜택이 전혀 없는, 한마디로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유야 어떻든 정부의 대책이 전혀 먹히지 않을 정도로 번져버린 금융위기의 불을 끌 소방수는 이제 새로운 미국 대통령밖에 없다는 것이 증권가의 인식으로 보인다. 증권가의 눈과 귀가 집중되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현직에 있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미 레임덕에 빠져들어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가 내놓은 구제금융법안에 하원이, 그것도 여당인 공화당이 대거 반대표를 던져 부결시켰던 것도 이미 부시 대통령의 영이 안 선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대통령이 나서야 의회는 물론, 행정부도 금융위기 해소에 전력을 다하게 될 것이 명약관화한 상태다. 상원과 하원이 결국은 통과시킨 구제금융법안에 따른 본격적인 구제금융 지원도 새로운 대통령이 결정된 11월 4일 대선 이후에나 집행될 가능성이 크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든 문제의 해결은 미국 대선에서 새로운 대통령과 행정부가 들어서는 데서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4년이고 연임 여부가 달려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로운 대통령이 문제를 해결해야하는데 써야 하는 시간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1년 이내에 어느 정도 미국 경기가 회복되는 것을 보여줘야 2년차부터는 자신의 공약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미국 대선 후보 버락 오바마(왼쪽)와 존 매케인. 과연 새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 ||
모 증권사 직원은 “아버지 부시 때도 그렇더니 아들 부시도 똑같이 군사력만 과시하다 경제를 망쳐놓았다. 이번에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부자가 똑같이 경제 실정으로 정권을 내주는 웃지못할 기록을 남기게 될 것”이라며 “실제 서브프라임 사태가 지난해 중순부터 문제가 됐는데도 부시 대통령은 무대책으로 일관하다 결국 전세계 경제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꼬집었다.
증권사의 리서치센터 관계자들도 미국 대선 종료를 우리나라 증시 반등의 필요조건으로 꼽고 있다. 유수민 현대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개선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만 신흥국은 여전히 타격을 받고 있다”며 “환율 경색도 풀리겠지만 아직 우리나라까지 올 만한 달러가 없다. 미국의 구제금융 집행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유 연구원은 “미국 대선이 끝난 다음에 새로운 대통령이 결정돼야 금융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선엽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도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바로 앞으로 다가왔는데 새로운 정권에 대한 기대감이 이번 위기를 해결할 강력한 컨트롤 타워에 대한 기대감으로 확산될 수 있다”며 “현 정권은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권의 탄생은 증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원은 “닷컴 버블 해소로 고생했던 적을 제외하고는 이전 사례에서도 대체로 대선 이후 지수의 움직임은 긍정적이었다는 점에서 반등의 재료가 될 수 있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대선이 끝나더라도 혼란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있다. 미국의 대선은 사실상 선거인단을 뽑는 11월 4일 끝이 나지만 여기서 뽑힌 44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것은 내년 1월 20일이다. 사실상 대선이 끝난 뒤에도 두 달 보름 넘게 시간이 비는 셈이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라는 점에서 대통령 당선인이 정권 인수 준비보다 정책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려 들겠지만 현 정부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공백기에 더 큰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 노무현, 이명박 정부 인수인계에서도 드러나듯 정권 인수인계가 원만하게 이뤄지기는 힘들다. 특히 정권이 바뀔 경우 이런 혼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며 “미국 대통령이 세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혼선의 충격에 세계 증시가 요동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