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한파에 ‘불패신화’도 꽁꽁
정부는 지난 6·11 부동산 대책부터 이번 11·3 대책까지 모두 일곱 번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특히 재건축시장을 살리기 위해 사업 절차를 단축하는 것은 물론 후분양제 폐지, 용적률 상향, 소형평형 의무비율 완화, 임대주택 의무건설 조항 폐지 등의 카드를 내놨다. 고강도 조치에 ‘약발’이 먹혔는지, 일부 언론에 강남권 재건축 시장에서 급매물이 소진되면서 최고 5000만 원 가까이 급등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때마침 종합부동산세가 헌법재판소의 일부위헌 결정으로 사실상 ‘불능화’되는 호재(?)도 등장했다. 그러나 정부의 백화점식 대책에 이어 헌재까지 도와준 덕분에 훈풍은 아니더라도 미풍이라도 불 것으로 예상하고 찾아간 강남 개포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왜 그럴까.
“다들 주식, 펀드에 돈이 묶였는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1억 원 이상 손실을 봤다는 사람도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매수세가 있는지 물어보는 매도자들 전화만 많을 뿐이다. 정부 정책 덕분에 ‘급급매물’이 일부 거래되기는 했지만 최근 이 또한 거래가 끊겨 올라갔던 호가가 또다시 내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강남 개포동 개포주공 1단지 43㎡(13평형)는 6억 3000만 원 아래로 호가가 내려가고 있다. 정부의 재건축 대책 발표 이후 5억 8000만∼5억 9000만 원 선에 시세가 형성된 것이 6억 5000만 원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자 다시 예전 가격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전언이다.
13평형이 최고 8억 원까지 거래됐던 것을 감안하면 최고가 대비 2억 원 이상 급락한 셈이다. 같은 아파트 49㎡(15평형)도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10억 4500만 원에 도장을 찍었지만 최근 7억 5000만 원까지 떨어진 상태다. 그래도 매매가가 높은 탓에 매수자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이 같은 사정은 강동구 고덕주공아파트도 마찬가지. 고덕주공은 1만 가구가 넘는 대단지로 강남권보다는 가격이 낮은 덕분에 중산층의 투자가 많은 곳이다. 이에 최고 6억 7000만∼6억 8000만 원까지 거래됐던 고덕2단지 52㎡(16평형)는 현재 5억 원 선이 깨지고 4억 9000만 원까지 떨어졌다. 59㎡(18평형)는 8억 6000만∼8억 8000만 원하던 것이 현재 6억 1000만 원에 매수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각종 대책이 ‘백약이 무효’가 된 것에 대해 중개업소를 중심으로 한 현장에서는 “매수자들이 두 가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즉 ‘확신과 돈’이다.
일단 매수자들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부동산값이 내려갈 것으로 보고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 양해근 우리투자증권 부동산팀 실장은 “과거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부동산 값이 올라간다는 확신만 있으면 정부가 초강도 규제를 내놓아도 상승한다”면서 “지금은 그 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재건축 아파트를 매수할 만한 돈, 즉 ‘현금’이 부족한 것도 좀처럼 매수세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가 되고 있다. 앞서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들이 말한 것처럼 1가구 1펀드 시대를 거치며 대부분 펀드에 가입했거나 또는 직접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데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거의 절반 이상 손실이 나면서 ‘비자발적 장기투자자’가 돼 쉽사리 펀드 환매나 손실 실현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2000년 이후 부동산과 주식시장은 상호 보완재 역할을 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고 있었다. 부동산시장이 급등을 보이면 좀 덜 오르는 주식시장에서 돈을 찾아 부동산시장에 쏟아 붓고, 반대로 부동산시장이 정부의 규제로 멈춰서면 급등하는 주식시장으로 눈을 돌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이 동반 급락하면서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부가 각종 부동산 대책을 내놓아도 약발이 먹히지 않게 하는 ‘주범’이 바로 펀드인 셈이다.
특히 재건축 아파트는 일반 아파트와 달리 직접 살기 위한 실거주 목적보다는 투자용으로 매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부동산 투자를 위해 펀드 손실을 실현’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때문에 주식시장이 살아나 펀드 손실이 줄어들지 않는 한 재건축 시장이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송파구 가락시영아파트 인근 한 중개업소 사장은 “펀드에 돈이 묶여 있고 대출도 잘 되지 않자 평형을 낮춰 매수하는 바람에 작은 평형은 거래가 되지만 큰 평형은 거래가 거의 되지 않고 작은 평형보다 더 떨어지는 추세”라면서 “일부 다주택자들은 가지고 있는 아파트를 정리해 재건축 아파트를 사려고 해도 정작 아파트가 팔리지 않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시장에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대출 금리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 오르기만 하던 주택 담보대출 금리가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덕분에 최근 조금씩 내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8∼9% 사이로 과거 6% 내외를 적용받던 것과 비교하면 대출 이자에 대한 부담은 여전하다.
이와 함께 재건축시장을 사실상 선도하고 있는 강남·서초·송파구가 지난번 주택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해제에서 빠졌지만 부동산값 하락이 지속되면 해제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생겨나고 있다. 주택투기지역에서 벗어나면 LTV가 완화되고 DTI가 폐지되는 등 주택 담보 대출 규제에서 풀리고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되면 분양권 전매 금지가 풀린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이번 헌재의 일부위헌 결정에 대해 ‘부자들을 위한 감세’로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쉽사리 강남·서초·송파구를 주택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당분간 재건축 시장에 몰아치고 있는 한파는 계속될 전망이다.
김명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