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헬스케어’ 출범 2년여 만에 법인 청산…재무구조 개선 힘 쏟아 바이오 장기투자 가능할지 의문
이를 위해 롯데는 4대 신사업 테마 중 하나인 ‘바이오 앤 웰니스’의 핵심 법인 두 곳을 설립했다. 2022년 4월 헬스케어 커머스 자회사 ‘롯데헬스케어’, 5월에는 위탁생산개발(CDMO) 자회사 롯데바이오로직스(롯데바이오)를 출범해 본격적으로 바이오사업에 뛰어들었다.
만 3년이 채 되지 않은 지난 12월 24일 롯데지주는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100% 자회사인 롯데헬스케어의 법인 청산을 결의했다고 공시했다. 롯데는 “최근 시장 환경을 면밀히 검토해 본 결과 개인 맞춤형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이 지속 성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사업 방향을 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법인 청산 이유를 설명했다.
롯데지주는 2022년 상반기 롯데헬스케어에 700억 원을 투입해 법인을 설립했다. 롯데헬스케어의 맞춤형 영양제 디스펜서 ‘필키’가 알고케어라는 중소기업 제품을 표절했다는 논란을 일으키며 법인 출범부터 흔들렸다. 법적 소송을 거쳐 특허침해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디스펜서 개발비, 법무비, 사업 폐기 비용으로 수백억 원에 달하는 수업료를 지불한 후였다. 지난해 9월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플랫폼 ‘캐즐’을 출시했지만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이용자 수가 약 20만 명으로 당초 예상치인 100만 명을 한참 밑돌았다.
롯데헬스케어는 결국 지난 12월 31일 모든 서비스를 종료했다. 청산 절차는 올해 상반기 중 모두 마무리될 예정이다. 영업손실은 법인 설립 첫해인 2022년 말 11억 원, 2023년 228억 원으로 규모가 더 커졌다. 매출은 2023년 기준 8억 원이었다. 그사이 롯데지주가 유상증자 방식으로 500억 원을 추가 출자했지만 소용없었다.
롯데는 앞으로 시니어타운, 푸드테크 등 분야를 통해 헬스케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호텔롯데의 시니어 레지던스 브랜드 ‘VL’이 대표적이다. 이달에는 ‘VL라우어(부산 기장)’, 10월에는 ‘VL르웨스트(서울 마곡)’ 운영을 시작한다.
이렇다 보니 롯데헬스케어와 같은 시기 출범한 ‘롯데 바이오’에 시선이 쏠린다. 롯데의 미래 성장동력인 바이오를 온전히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기 때문이다. 롯데가 헬스케어 사업을 정리하고 바이오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이란 반응도 있다. 하지만 바이오산업 특성상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롯데그룹 전반의 재무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이 있다.
롯데바이오는 출범 첫해인 2022년 12월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에 있는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제조공장을 인수해 CDMO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 인천 송도에 연면적 6만 1191평, 총 생산 36만 리터 규모의 ‘송도 바이오캠퍼스’ 제1공장을 짓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7월 제1공장 착공식에 참석해 이곳을 ‘롯데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이라 지칭했다. 신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은 롯데바이오 글로벌전략실장도 겸하고 있다.
현재 롯데바이오 매출은 2022년 인수한 미국 시러큐스 공장에서 나오고 있다. 바이오 법인 출범 첫해인 2022년 연결기준 매출은 0원, 영업손실 222억 원이었다. 2023년에는 2286억 원, 영업이익은 266억 원이었다.
바이오 의약품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CDMO 산업도 확대되고 있어 지속적인 투자만 한다면 롯데도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CDMO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60만 4000리터의 생산 역량을 보유하고 2024년 창립 이래 역대 최대 수주 규모인 5조 원을 돌파했다. 셀트리온 역시 CDMO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바이오산업에서 롯데는 후발주자긴 하지만 인수·합병(M&A) 방식을 기본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시장이 과경쟁 상황이 아니냐, 포화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지만 중소 바이오 벤처 회사들 대부분이 자체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 않아 아웃소싱할 수밖에 없다. (시장은) 계속 확장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 의약품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 CDMO는 매력이 있는 시장임이 분명하다”며 “(롯데지주가) 롯데헬스케어를 청산했기 때문에 바이오에 집중해 투자한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현재 롯데는 지난해 말부터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 실제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부진한 분야의 사업을 정리하고 있어 바이오 부문 장기 투자가 가능할지 우려가 나온다. 롯데지주는 2022년부터 세 번에 걸쳐 유상증자를 통해 롯데바이오로직스에 총 5732억 원을 지원했다. 지난 11월 25일에는 롯데바이오 대출금 9000억 원에 자금보충약정을 제공한다고 공시했다.
그룹 내부에서조차 송도 공장 규모를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창사 이후 사실상 수주가 0건인데 잘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란 시선도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유통·화학 분야에서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고 당장 유동성 확보를 위해 그룹 여기저기서 자산을 팔아 현금화하고 있단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대규모 자금이 있고 투자 여력이 있는 기업이라면 몰라도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다 정리하고 있어서 (바이오에) 지속적으로 투자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윤택 원장은 “롯데는 바이오 인프라나 시스템 공정에 대한 노하우를 갖춘 기업이 아니라 M&A 방식의 접근을 하고 있는데, 이 방식은 인력, 시설 등의 인수인계에 상당히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에 이 부분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신약 개발에 비해 CDMO는 장기 투자가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으나 지속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연구 개발이나 자체 신약 또는 공동 개발도 전제돼야 한다.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롯데바이오 관계자는 “송도 캠퍼스 공사는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으며 미국 시러큐스 공장도 원활하게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며 “롯데 헬스케어 법인 청산이 당사에는 전혀 영향이 없으며 계획대로 바이오 산업군 내에 연착륙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