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47 정도는 설계도 보고 뚝딱”
온라인 커뮤니티에 나도는 AK-47 소총과 권총의 설계도. 작은 사진은 밀반입한 불법 총기들(SBS뉴스 캡처).
그렇다면 불법 총기는 어떤 식으로 국내에 퍼져 있을까. 총기 안전국이라 불리던 대한민국의 총기 관리 실태와 이면에 싸여있는 은밀한 거래를 자세히 짚어봤다.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식당에서 오 아무개 씨(59)가 권총으로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오 씨가 사용했던 권총은 미국 제닝스사의 ‘J-22’으로, 22구경짜리 소형 권총이었다. 오 씨가 민간인 신분이고, J-22는 국내에서 보유를 허가한 적이 없는 모델이라 오 씨가 이 권총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권총은 군이나 경찰, 사격장이 아니면 소지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오 씨가 J-22를 입수한 경로로 여러 추측들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 씨가 미국 태국 일본 등을 수차례 여행한 것에 비추어 해외에서 산 권총을 직접 반입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실제 총기, 모의 총기 등 불법 총기류를 국내로 밀반입하려다 적발된 건수는 총 119건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해외에서 총기를 샀다가 실수로 가방에 넣고 들어와 세관에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밀수를 마음먹고 총기를 대량 화물 한켠에 숨겨서 들여오면 적발이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컨테이너에 실려 오는 대량 화물의 경우에는 물량을 모두 검사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물량의 4~5% 정도만을 검사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권총을 일일이 분해해 국제 택배로 들여오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12년 총기 21정을 분해해 국제 택배로 밀반입한 양 아무개 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홍콩에 체류하던 양 씨는 세관의 적발을 피하기 위해 분해한 총기를 부품별로 3회에 걸쳐 배송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앞서의 관세청 관계자는 “국제 우편의 경우에는 노리쇠, 방아쇠 등 총기 부품이라고 확실하게 예상될 경우에 적발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서울 동묘 벼룩시장으로 기사 내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
청계천의 총기 밀수시장은 1990년과 2000년대 초반에 가장 활발했다고 전해진다. 권총은 400만 원, 소총은 600만 원이라는 구체적인 가격대까지 드러난 바 있다. 총기 마니아 A 씨는 “총기 부품을 구하려면 ‘청계천으로 가라’라는 얘기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당시에는 소련군 제식권총인 토카레프 등을 실제로 봤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라고 밝혔다. 이어 A 씨는 “청계천 풍물시장이 대대적으로 개편되면서 단속이 심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는 거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일부 서바이벌 마니아들이 황학동 중앙시장이나 남대문 부품업자들을 찾아 실총(실제총)을 찾거나 총기 부품을 사는 일이 종종 있었다는 얘기는 꾸준히 떠돌고 있다. 총기의 부품을 구하면 인근 금형업자에게 맡겨서 총기를 정밀하게 조립하는 방식으로 ‘사제총’을 만든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총포상을 운영하는 한 업자는 “기술이 좋은 금형기술자가 총기를 뚝딱 만들어 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워낙 말들이 많아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대놓고 총기 제작을 의뢰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일부 금형기술자의 총기 제작 기술이 수면 위로 떠오른 바도 있다. 지난 2005년 금형기술자 조 아무개 씨(56)는 100m 앞에서 사람의 눈, 코, 입까지도 정확하게 맞힐 수 있는 저격용 총기를 제작해 경찰에 적발됐다. 당시 조 씨는 물체를 1000m까지 포착할 수 있는 조준경과 지지대까지 정교하게 제작해 경찰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지난 2004년에는 경기도 부천에서 자신이 직접 제작한 사제총으로 채권자를 살해한 40대 금형기술자가 경찰에 붙잡힌 바 있다.
집에서 제작한 사거리 30m 탄피식 실총. 사진출처는 온라인 커뮤니티.
총기 전문가들은 국내에 사제총이 대략 10만 정 정도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법망을 피해 암암리에 제작되기 때문에 실제 사제총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사제총뿐만 아니라 기존 BB탄 총을 개조해 파워를 높이는 ‘모의 총기’까지 포함하면 국내 불법 총기의 규모는 걷잡을 수가 없을 정도다.
모의 총기는 지난 2012년 ‘강남 쇠구슬 난사’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쇠구슬을 난사해 상가 및 차량 유리창을 깨뜨린 심 아무개 씨가 경찰에 붙잡힌 것. 심 씨는 서울 청계천 시장에서 모의 총기 2정과 쇠구슬 탄창을 7만 원가량에 구입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경찰청 총포화약계 관계자는 “모의 총기는 스프링 탄성을 2~3배 높이거나 쇠구슬이 발사되도록 성능을 향상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제작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모의 총기 제작법은 총기 관련 인터넷 카페나 커뮤니티 등을 통해 공공연하게 퍼지고 있다. 흔히 ‘튜닝’이라는 용어로 서바이벌용 총기들의 화력을 증강시키는 방법이 공유가 되곤 하는데, 튜닝이 제대로 되었을 경우 그 위력은 상당하다고 전해진다. BB탄총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어떻게 개조하느냐에 따라 사람에게 피멍이 들게 할 만큼 파워를 강하게 할 수 있다”며 “몇몇 사람은 돈을 주겠다며 개조를 부탁하기도 하는데 개조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거절하곤 한다.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렇게 개조한 모의 총기의 위력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프링 등을 개조하면 보통 서바이벌 총의 3~4배 정도의 위력으로 알루미늄 캔을 관통할 정도지만, 총열과 외관을 쇠로 바꾸고 쇠구슬이 발사 가능할 정도로 개조 작업을 하면 새나 고양이를 쏴서 죽일 만큼의 위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장난감 총이라도 개조를 할 경우 총포도검화약류법에 따라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며 “불법 총기와 관련해서 대대적인 단속을 이어가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합법적인 ‘공기총’도 위험 위력 없다고? 사람에 쏘면 치명상 지난 17일 천안에서 김 아무개 씨(42)가 아내의 내연남에게 공기총을 발사해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김 씨가 쏜 총탄으로 머리와 오른쪽 어깨에 총상을 입은 정 아무개 씨(38)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바로 숨을 거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기총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라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김 씨가 사용한 공기총은 구경 5.0㎜ ‘케리어Ⅱ-707’로, 경찰에 신고하고 허가증만 받는다면 집에서 합법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공기총이다. 공기총이 경찰서에 보관되는 기준은 구경이 5.5㎜ 이상일 경우다. 5.0㎜ 공기총은 보통 철새나 산짐승을 쫓는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고 전해진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는 과수원을 운영하며 공기총을 사용해 왔으며 신고까지 합법적으로 마쳐 총기 소지에 대해서는 불법적인 여지가 없다”라고 전했다. 5.0㎜ 구경 공기총의 위력은 군용총의 20분의 1, 수렵용으로 쓰이는 엽총의 4분의 1 정도지만, 사람에게 쏠 경우 치명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서울에서 총포사를 운영하는 한 업자는 “아무리 수렵용 엽총보다 위력이 약하다지만 총은 총이다. 소지자가 마음만 잘못 먹는다면 이런 일이 또다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공기총은 개인 간의 거래가 엄연히 금지되어 있음에도 인터넷 상에서 지속적으로 거래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공기총의 사진과 재원, 위력 등을 설명하며 거래를 유도하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공기총을 개인 간 거래하는 것은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반드시 총포사를 통해서 공기총을 구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
총기 마니아 ‘성지’ 청계천 “요샌 거래 안해” 손사래 서울 풍물시장은 총기 암거래의 온상으로 지목된다. 사진은 기사 내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 서울 동묘 벼룩시장의 한 상인은 “요즘 권총 사건이 벌어진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골치 아픈 일 생길까봐 상인들이 총기 거래를 꺼린다. 과거에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총기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신설동 풍물시장의 한 상인은 “예전부터 풍물시장만 뒤지면 군용 장비 한 세트가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 않았느냐. 그만큼 물품이 상당하다는 얘기”라며 “하지만 최근에 권총을 찾는다며 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단속의 여파는 군용 소품을 파는 곳에도 강하게 불어 닥치고 있었다. 신설동 인근에 한 군용 소품 매장에서 “혹시 권총을 파느냐”고 묻자, 업주는 “권총이 있을 리가 있느냐”라며 “오늘만 해도 경찰 4명이 왔다갔다. 다들 권총 찾느라 혈안인데 여기는 말 그대로 군용 소품밖에 없는 곳”이라고 발끈했다. 아예 문까지 닫아 놓은 또 다른 군용 소품 매장에 “총기를 구한다”며 전화를 걸자 “다른 소품은 다 취급하는데 총만은 취급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군용 소품 매장은 지난 2009년 서울 신설동 지역에서 비밀 무기창고를 만들어 군용 무기 1000여 점을 판매한 업자가 붙잡혀 한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이 업자는 M16 실탄, 개머리판, 총열 등의 총기 부품과 더불어 대인지뢰 클레이모어, 연막수류탄 등까지 전시해 놓고 판매해 군사용품 마니아들에게 ‘성지’로 불렸다고 한다. 당시 업자는 “미군 부대 근처에 있는 고물상에서 나온 것을 사왔다”고 밝혔다고 전해진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
총기관리 문제 있다 범죄자 손에 버젓이… 그 이유는 현행법상으로 ‘금고 이상의 실형의 선고를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이 면제된 날부터 3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에게만 총기 소유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과가 있더라도 자격만 된다면 총기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이기에 총기 보유 자격을 좀 더 엄격하게 지정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경찰청이 공개한 ‘총포, 도검, 화약류 등 단속법 위반 검거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총 2219명이 총기와 관련해 불법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청 관계자는 “총기 범죄는 갖춰진 제도를 통해 확실하게 단속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