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족집게’에 얼굴 붉힌 ‘전문가들’
▲ 미네르바가 다음 토론방 아고라에 올린 글. | ||
이 미네르바가 17일 시사월간지 <신동아>에서 장문의 글과 인터뷰를 통해 경제위기를 재차 경고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를 둘러싼 KBS <생방송 시사 360>과 MBC <뉴스데스크>의 신경전에 네티즌들이 가세해 신드롬을 확산시키고 있다. 하지만 미네르바 신드롬의 가장 큰 이유는 한국 경제와 증시의 흐름에 대해 어긋난 예측을 하는 정부 당국이나 증권사에 대한 실망감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또 미네르바 신드롬을 바라보는 정부 당국이나 증권업계의 속이 편치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네르바’는 <신동아> 12월호를 통해 “이번에도 외환위기 때와 똑같이 부동산 폭등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면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올해 국내 증시에 대해 “한국이 코스피지수 500포인트(p)선, 미국이 5000p선이 바닥이라고 본다. 중국은 1000p선이 붕괴될 것이다. 국내에서는 건설업체 연쇄부도가 우려되고 저축은행에는 이미 위험 경고등이 켜졌다. 이러한 흐름이 더욱 심각해질 경우에는 500p선도 붕괴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또 “강남 부동산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며 2010년까지 불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네르바는 여기서 더 나아가 “한국의 경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자칫 잘못하면 내년 3월을 못 버티고 일본 자본에 편입되는 파국을 맞이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지금까지 미네르바가 예측했던 사안들이 상당히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던 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마디로 공포의 예언인 셈이다. 게다가 미네르바는 이러한 전망을 점술가처럼 마구잡이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가격, 외국계 투자회사의 움직임, 부동산 담보대출 문제, 은행외채 만기도래 시기, 양도성 예금증서 발행현황, 일본계 은행의 양도성 예금증서 매입상황 등을 면밀하게 비교·검토해서 내놓았기 때문에 그냥 흘려버리기 어렵다.
위기에 빠진 건설사를 살리기 위해 대주단(채권단)협약을 추진하고, 은행 유동성 확보를 위해 돈을 시중에 풀고 있으며, 증시를 살리기 위해 연기금과 증권유관기관을 동원 중인 정부로서는 맥이 빠지는 정도를 넘어 분노할 만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이 때문에 정부와 여당에서는 미네르바의 글이 경제에 영향을 끼친다는 논리로 그를 제어할 구실을 찾는 상황이 벌어졌다. KBS는 아예 새로 만들어진 <시사360>을 통해 미네르바를 ‘경제 괴담 유포자’ 측면에서 방송했다. 물론 네티즌의 뭇매를 맞았지만 정부의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전달한 셈이 됐다.
미네르바 신드롬을 바라보는 증권가의 심기도 상당히 불편하다. 증권가 사람들에게 미네르바 이야기를 꺼내면 대부분이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일 정도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미네르바 신드롬은 한마디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표현”이라며 “미네르바 이야기를 통해 자신만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로 손해를 본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이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자기위안, 더 떨어지기 전에 자산을 처분해서 피해를 줄였다는 자기만족을 불러일으키는 데 불과하다. 특히 이런 시장 상황에서는 투자 계획이 소용없다는 자기 방어적인 논리에 빠질 경우 피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지금 자신의 재산을 열 배 불릴 기회가 왔다며 기회를 노리는 이들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직원은 “과거 코스닥 시장이 잘 돌아갈 때 ARS로 증시 예측을 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으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돈을 갈퀴로 모은 사람도 있었지만 구속된 사람도 적지 않았다”며 “시장 예측은 각종 정보를 기초로 분석하는 것이지만, 시장의 움직임에는 심리적인 요소도 있기 때문에 과거 예측이 몇 번 맞았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일 당장이라도 미국 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을 위해 새로운 형태의 뉴딜정책을 진행한다면 미네르바의 예측처럼 미국 증시가 5000p선까지 떨어지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데이터라는 것은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장 악화를 막기 위한 경제정책을 마련하는 데 사용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증권사 간부도 “과거 외국 애널리스트 중 아주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이들은 항상 한국 증시가 떨어진다, 떨어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며 “상승장일 때는 귀 기울이지 않다가 떨어지면 선견지명이 있었다며 띄워주기 일쑤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상승장이 지속될 때도 한국 증시 비관론을 펼치다가 지금은 퇴출됐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PB(프라이빗뱅커)는 “미네르바처럼 검증되지 않고 정체도 알 수 없는 이가 애널리스트처럼 활동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맞으면 좋지만 안 맞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 가서 주식을 사놓을 것을, 집을 마련해 놓을 것을, 하고 후회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며 “단순히 투자에 참고하는 것은 좋지만 이것을 토대로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네르바 이야기 자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이도 있었다. 모 증권사 PB는 “투자자들이 미네르바, 미네르바 해서 아고라에 들어가 미네르바가 썼다는 글을 찾아봤다. 그런데 그 글들이 과거 인터넷에서 떠들던 이들이 쓰던 글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막 쓰지도 않았고 나름대로 정교한 분석과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며 “그리고 그 글들의 중심 흐름에 충정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 외환위기 때처럼 넋 놓고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조언 등이었다. 내가 보기에 예측이 맞느냐, 틀리느냐는 문제의 중심이 아니다. 그 글들을 둘러싼 의미 없는 논쟁을 벌이기보다 미네르바의 경고와 충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