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은 잘 쪄졌는데 떡줄 사람이 아직…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박근혜 정부 창출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통령선거 중앙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이 국회로 귀환하면서 ‘무대(김무성 대장)’의 향후 행보에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번 부산 영도 국회의원 재선거에 당선되자마자 정치권에서는 ‘김무성 역할론’에서부터 ‘당 대표론’, ‘대망론’까지 쏟아지며 ‘무대 띄우기’가 한창이다. 그를 두고 지금부터 ‘사실상 당대표’로 자리하면서 친이계, 친박계, 소장파 할 것 없이 세력 결집에 정중동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 안팎의 김무성 옹호론자 내지는 추종자를 줄 세움으로써 ‘정치 체급’을 끌어올릴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새누리당 한 중진 의원은 “사실 김무성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하고 백의종군할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할 것이란 이야기가 많았다”며 “당장 당 대표 자리를 탐낸다기보다는 원내 전열 정비부터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당권보다는 ‘원내 침투’부터 나서면서 사실상 박근혜 정부와 집권 여당의 가교 역할을 하고, 후임자에게 원내 바통을 넘긴 뒤 당권 장악 수순을 밟을 것이란 이야기였다. 이 의원은 요즘 ‘김무성 사람’으로 분류되는 측근 중 한 명이다.
김 의원이 5선 배지를 달기까지의 스토리는 한편의 소설이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좌장으로 활약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면서 ‘팽박(烹朴)’으로 분류됐다. 그리고 원군으로 회귀했다. 즉, ‘원조 친박→팽박→복박→채권자’의 행보를 거치면서 과거의 실수를 딛고 여의도 정치 한복판으로 성큼 걸어 들어온 신화를 쓴 것이다.
하지만 김무성 역할론을 두고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미풍에 그칠 것이란 부정적 관측도 만만찮다. ‘김무성 미풍론’에 대한 논리는 이렇다.
첫째는, 박근혜 대통령이 김 의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번 배신한 사람에 대해선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박 대통령이 김 의원의 종횡무진을 좌시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당장 지난 대권 경쟁자였던 안철수 의원이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들어온 마당이라 여당을 마치 바둑돌 만지듯 해야 하는데 김 의원은 그 역할에 맞지 않다. 이번 4·24 재·보궐선거 전 공천과 관련해 청와대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김 의원에게 빚을 졌다고는 하지만 이번에 공천 준 것으로 다 갚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청와대에서 김 의원에게 더 이상의 역할을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둘째는, 김무성 의원의 컴백이 ‘김무성 안티 세력’의 규합을 촉발할 수 있다. 김무성이냐 아니냐를 두고 새로운 계파가 생겨날 가능성을 점치는 부류도 있다. 현재 박근혜 정부 초반이어서 여당 내부의 계파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하지만 정부 초반 청와대의 인사 난맥상을 지켜봤고, 국회를 ‘졸’로 본다는 수모를 잊지 않고 있는 세력들은 새 정부의 실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여차 하면 움직일 이 부류는 김무성 세력에 가담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김무성 의원은 반란 세력으로 소위 찍히게 된다.
김무성 전 총괄선대본부장이 국회의원 재선거에 당선되자마자 정치권에서는 ‘무대 띄우기’가 한창이다. 그러나 ‘배신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박 대통령이 그의 종횡무진을 좌시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사진공동취재단
특히 김무성 의원은 새누리당 텃밭이라는 부산 출신의 지역구 의원으로서 당 간판의 상징성이 떨어진다. 전국적인 대중 정치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 정치인은 정치권의 비토로 역할은 잃는다 해도 대중의 요구로 힘을 잃지는 않는다. 하지만 깃발만 꼽으면 당선된다는 곳에서 손쉽게 4선을 했고, 이번 재선거도 부산 영도에 출마해 “문제를 너무 쉽게 풀었다”는 비판이 제기된 상태다.
김무성 의원의 등판 시기도 사실상 박 대통령이 쥐고 있는 것과 같다. 이번 4·24 재·보궐선거에서 압승한 새누리당으로선 무색무취하기는 하지만 황우여 대표 체제의 과오를 질타할 빌미를 잃었다. 황 대표 체제의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거기에다 6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어 사실상 5월 전당대회는 어렵다. 김무성 의원이 구원투수로 등장하기 위해선 오는 10월 재·보궐선거의 결과가 중요하지만 이 선거 결과는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구원투수 김무성은 결국 박근혜 감독의 분부만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무성 의원 본인으로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 이후 등장하는 것이 실보다 득이 큰 것으로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지금의 정치 상황에서는 공천권을 내려놓는 정당 개혁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시스템 공천’의 시범케이스가 될 것이란 관측이 있다. 10월 재보선에 새누리당이 참패해 현 지도부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도 김무성 의원은 6월 지방선거에 힘 한 번 쓰지 못할 공산이 크다.
물론 ‘김무성 태풍론’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김무성 의원 개인의 힘은 약할지 몰라도 당내에서 그만한 체급의 선수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리고 새누리당에서 몇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언론 친화력이 뛰어나다. 공·사석 가리지 않고 할 말은 한다는 점에서, 그 할 말도 곱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기자 소구력’에서 성큼 앞서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가뜩이나 새누리당이 ‘청와대 파출소’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마당이어서 김무성 의원같이 청와대를 쏘아 볼 수 있는 묵직한 인물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며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은 그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안철수 의원에게 쏠린 눈을 김무성 의원의 입으로 막을 수 있다는 낙관론을 내놓는다. 사사건건 청와대와 정부에 직언을 해대고, 제동을 걸면 자연히 김무성 의원을 향한 언론의 주목도가 높아질 것이란 진단이 그렇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