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무대서 옷 벗다 돌 맞아 죽을 뻔
틸라 테킬라는 누드 모델 겸 밴드 싱어로 활동했다.
미국 대중문화에 깨알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겠지만, ‘틸라 테킬라’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하진 않다. 1981년생인 그녀는 싱가포르 출신의 엔터테이너다. 부모는 모두 베트남 출신으로 전쟁을 피해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출생명은 틸라 응우엔. 혼혈이었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프랑스계 혈통을 지닌, 오묘한 이국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이후 그녀의 가족은 태평양을 건넜고 그녀는 미국에서 성장한다. (상처를 입진 않았지만) 길거리에서 총격을 당하는 등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낸 그녀는 결국 운명처럼 엔터테이너의 길로 접어든다. 계기는 길거리 캐스팅. 그녀는 <플레이보이> 스카우트 손에 이끌려 카메라 앞에 섰고, 스무 살에 누드모델이 되었으며 이후 ‘틸라 테킬라’ 혹은 ‘미스 틸라’라는 이름으로 <스터프> <맥심> <펜트하우스> 등 남성 잡지를 누비게 된다.
오리엔탈 섹시 스타로 부상하던 그녀는 TV쇼를 통해 본격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퓨즈 TV’에서 그녀가 호스트를 맡았던 <팬츠-오프 댄스-오프>라는 쇼는 ‘Pants-Off Dance-Off’라는 제목 그대로 스트립 댄스 콘테스트 쇼였고 그녀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된다. MTV에서 이끌었던 <샷 앳 러브(A Shot at Love)>는 매우 흥미로운 데이트 게임 쇼였는데, 16명의 이성애자 남성과 16명의 레즈비언이 등장해 틸라 테킬라를 유혹한다. 여기서 그들은 틸라가 이성애자인지 레즈비언인지 양성애자인지 그 성 정체성은 모르는 상태다. 이 쇼는 보수적 기독교도들에게 큰 비난을 받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반박을 하며 당당하게 맞섰다.
사생활에서도 크고 작은 구설수가 있었다. 2009년엔 전 애인으로부터 목이 졸리고 감금당하는 일을 겪으며 법정 싸움이 있었고, ‘존슨앤존슨’의 상속녀인 케이시 존슨과 약혼하며 양성애자로서 커밍아웃을 했지만 2010년에 존슨이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해 일리노이에서 겪은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잘못하면 틸라 테킬라는 존슨을 따라 세상을 하직할 뻔했던 것이다.
테킬라는 스무 살 때부터 록 음악에 관심을 가졌고 ‘비욘드 베티 진’과 ‘젤러시’라는 밴드를 거치며 싱어로 활동하며 직접 곡을 만들기도 했고 ‘틸라 테킬라 레코드’라는 자신의 브랜드로 음반을 내기도 했다. 그녀는 2010년 일리노이의 ‘케이브 인 록’(Cave In Rock)에서 열린 페스티벌에 게스트로 참가했다. 힙합 그룹 ‘인세인 크라운 파시’(Insane Clown Posse) 측에서 주관했던 이 공연의 중심 관객은 그들의 광적인 팬인 이른바 ‘주갈로’(Juggalo)들. 1994년부터 조직된 그들은 기괴한 복장으로 괴성을 지르는 매우 폭력적인 집단으로 꽤 많은 전과자들이 속해 있었고 미국 사회에서도 범죄 집단처럼 분류되곤 했다(물론 그들 중엔 비폭력적 주갈로도 있었다).
주갈로들이 만들어내는 광란의 분위기에 휩싸였던 것일까? 무대에 오른 틸라 테킬라는 노래를 부르다가 돌발 행동을 했다. 상의를 벗고 가슴을 드러낸 것. 자신의 섹시 카리스마를 과시하는 건 좋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주갈로들을 엄청나게 자극했다. 거친 욕설과 함께 군중들로부터 맥주병과 폭죽과 돌멩이가 날아오기 시작했으며, 그녀는 오줌에 절인 과일에 맞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때 돌 하나가 그녀의 눈 주위에 명중했고 이후 그녀는 몇 개의 돌을 더 맞았다. 주갈로들은 마치 고대 시대 창녀를 벌하던 군중처럼 테킬라에게 돌을 던졌고, 급하게 무대에서 내려온 그녀의 얼굴은 멍투성이로 심하게 부어 있었으며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마도 주갈로는 그녀가 자신들의 신성한(!) 모임을 천박한 퍼포먼스로 더럽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봉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앰뷸런스를 기다리며 자신의 트레일러에서 스태프들과 휴식을 취할 때, 주갈로들은 트레일러를 전복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트레일러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틸라 테킬라는 자신의 차량으로 병원에 가려 했고 결국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녀의 SUV 차량의 유리창이 모두 박살이 나 버렸다.
이후 그녀는 페스티벌 주최 측을 대상으로 소송을 벌여 거금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경찰의 입장은 모호했다. 비디오 판독을 거쳐 실제로 폭력을 행사한 사람을 적발해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 결국 사건은 유야무야되었고, 이 일 때문이었을까? 이후 테킬라는 약물 중독에 빠져 2012년엔 결국 갱생원에 들어가 치료를 받아야 했다. 약물로 인해 생명이 위험한 상황까지 이른 적도 있었으니 정말로 심한 중독 상태였던 듯. 어쩌면 그녀를 진짜로 죽일 뻔한 건 주갈로가 아니라 충격 이후에 그것을 잊기 위해 과하게 복용했던 각종 약물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