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뒤흔들 ‘초강력 폭탄주’ 탄생할까
▲ 롯데가 ‘처음처럼’에 이어 ‘오비맥주’까지 인수할 경우 양주-소주-맥주로 이어지는 주류라인을 모두 갖추게 된다. | ||
지난 12월 5일 두산이 주류사업부문을 매물로 내놓자 재계에서는 롯데를 인수후보 영순위로 꼽았다. 그동안 소주와 맥주시장 진출을 호시탐탐 노려왔을 뿐 아니라 자체적인 현금 보유고를 감안하면 6000억~8000억 원가량으로 추산됐던 인수금액도 그리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 때문이었다. 당시 롯데는 공식적으로 “관심 없다”고 부인했지만 이미 11월경 두산과 접촉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롯데는 12월 12일 입찰 서류를 냈고 22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롯데는 지난 2005년 진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쓴잔을 마셨던 경험이 있어 이번 두산주류 인수전 승리는 더욱 남다르다. 롯데 측은 “1월까지 본계약과 정밀실사를 마치고 2월부터는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만약 오비맥주까지 인수할 경우 롯데는 양주(스카치블루)-소주-맥주로 이어지는 주류라인을 모두 갖추게 돼 종합주류회사로 거듭날 전망이다.
재계서열 5위 롯데의 소주시장 진출에 기존 주류업체들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자금은 물론이거니와 백화점, 대형마트 등 자체 보유하고 있는 전국적인 유통망이나 브랜드 파워도 두산보다 훨씬 위협적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전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 관계자는 “두산이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붓고도 처음처럼의 전국 점유율은 10%를 겨우 넘긴 이후 제자리였다. 하지만 롯데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주류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진로-하이트는 롯데의 등장에 가장 속을 졸이고 있을 업체 중 하나다. 최근 몇 년간 마케팅 전쟁을 벌였던 두산에 비해 ‘전투력’이 훨씬 높은 적수를 만난 것이다. 몇몇 증권사에서 진로의 내년 실적을 낙관할 수 없다는 전망을 내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진로는 “이미 예상했던 시나리오다. 주류업 특성상 롯데가 쉽게 점유율을 끌어올리지는 못할 것”이라 말하면서도 “다만 출혈경쟁이 우려되는 부분은 있다”고 털어놨다.
지방 주류업체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더욱 커 보인다. 특히 부산·경남지역의 소주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대선주조와 무학에서는 대책회의를 여는 등 분주하다고 한다. 이곳을 연고로 하는 롯데가 진출할 경우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신동빈 부회장. | ||
이처럼 롯데가 소주시장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아직 인수전이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한 M&A 전문가는 “가격협상에서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M&A에서 잔뼈가 굵은 두산과 가격 깎기에 일가견이 있는 롯데가 쉽게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롯데는 입찰 응모에서 4000억 원대 가격을 써낸 것으로 전해진다. 경기침체로 M&A에 나온 매물들의 가격이 하락하는 추세이긴 하나 내심 1조 원까지 바랐던 두산에게는 실망스러운 금액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2008년 두산주류 실적이 부진했던 것이나 현재 그룹 자금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은 이유 등으로 높은 가격을 고집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면 계약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두산주류 인수전에는 롯데 이외에도 국내·외 사모펀드 네 곳이 참여했는데 롯데가 제시한 금액이 제일 낮았다고 한다. 두산 관계자는 “정확한 것은 공개할 수 없지만 가격 외적인 면에서 롯데가 좋은 점수를 받았다. 가격은 계약 후에도 합의를 통해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롯데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할지에 대해서도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처음처럼’이 그나마 수도권에서 10%대 후반의 점유율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두산이 홍보 및 마케팅에 막대한 비용을 들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수적인 경영으로 정평이 난 롯데가 과연 그러한 모습을 보일지에 회의적인 의견도 없지 않다.
한편 그룹 내부에서도 이번 인수에 대해 반대 의견이 불거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칠성음료에서는 지금도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금의 진로와 하이트도 상대하기 버거운 마당에 2010년 진로-하이트가 영업망을 통합할 계획이어서 오히려 점유율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신동빈 부회장이 강하게 밀어붙여 결국 인수전에 뛰어들게 됐다는 전언이다. 이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그동안 몇 차례 M&A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통이 좁다’는 평을 받기도 했던 신 부회장이 이번마저 실패할 경우 쏟아질 수도 있는 비난들을 의식했을 것이란 것도 그중 하나다. 또한 ‘포스트 신격호’ 시대를 대비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는 신 부회장에게 두산주류가 딱 맞아떨어졌다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