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놓고 안철수와 ‘단두대 매치’
김한길 후보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뽑혔다. 김 대표는 당권을 쥐었지만 계파 청산, 안철수 진영과 관계설정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종현 기자
“나도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 나서는 후보를 자문하고 있지만, 솔직히 전당대회 이후 민주당의 미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김한길이 당권을 쥐겠지만, 그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싶다. 그만큼 어려운 상황이다.”
5·4 전당대회 직전, 유력 정치 전략가는 기자에게 이렇게 단언했다. 민주당 개혁과 쇄신의 변곡점이라 일컬어지는 5·4 전당대회를 통해 범주류 진영의 이용섭 후보를 누르고 당권을 쥔 김한길 신임 당대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 ‘단일성 집단지도체제’ 하의 절대 권한을 부여 받았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처한 상황은 계파 청산, 안철수 세력과의 관계 설정, 그리고 당장 5개월 앞으로 다가온 10월 재·보궐선거라는 숙제만 첩첩산중. 어느 하나 쉬운 관문이 없다.
앞서의 전략가는 현재의 김한길 대표를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후 당 존폐위기까지 치달았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박근혜 당시 대표와 견주었다. 그는 “당시 박근혜 대표가 절치부심한 마음으로 84일간 천막당사 행보를 걸었다. 외부에서는 이를 두고 보여주기 식 퍼포먼스 논란이 일었다”며 “그런데 당시 당내 반박 진영 어느 누구도 대놓고 욕하는 이는 없었다. 도와주지는 않았어도 최소한 방해는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민주당은 어떤가. 대선평가위 보고서 논란 등 차기 지도부가 뭔가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는 못할망정 되레 부담만 안겨줬다”고 혀를 찼다.
그러면서 그는 “그렇다고 김한길 대표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실질적 책임이 있는 일부 주류 진영 인사에게 ‘평당원으로 돌아가 달라’는 강도 높은 요구를 할 수 있을까. 이 역시 어렵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 역시 “비대위 내부에서 주류-비주류 간 당직자들의 인사 평가가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김한길 대표가 이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 대선평가보고서와 이러한 인사 평가 자료를 향후 당 개혁과 일부 주류 진영 인사 청산에 이용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 범위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무리 당권을 쥐게 된 김한길 대표일지라도 현실적 주류 세력의 ‘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해석이다.
여기에 지난 4월 재·보선을 통해 국회 입성에 성공한 안철수 의원이 이제 ‘세력화’를 위한 채비에 나서고 있는 상황. 앞서의 전략가는 이를 두고 “현재 민주당은 127마리의 피라미만 공존해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도 대선 패배 이후 메기에서 그저 평범한 피라미로 전락했다”며 “그런데 이 상황에서 안철수라는 거대한 메기가 떡하니 야권에 들어온 거다. 김한길 대표와 민주당 입장에선 사실상 이 메기를 다룰 재간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한길 대표는 전당대회 이전부터 공공연하게 ‘안철수 신당 불가론’을 내세우며 안철수 민주당 입당 러브콜을 보낸 입장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안철수 세력화와 관련해 민주당 안팎에서는 10월 재·보선에 주목한다. 이 시기가 김한길 리더십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험대일 수 있다는 것. 내년 지방선거는 이를 극복한 다음의 일이다. 당장 10월 재·보선 지역구 상당수가 민주당 텃밭인 호남 지역에 몰려 있다. 김한길 대표에게 있어서 10월 재·보선은 안철수 세력과 목을 내놓고 펼치는 ‘단두대’ 매치나 다름없다. 만약 진다면, 김한길 당대표를 비롯해 당장 당 지도부가 교체될 일은 없겠지만, 자연스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 지도부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첩첩산중 위기의 상황 속에서 김한길 대표가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과연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가 떠오른다. 김한길 대표 입장에서 ‘당 혁신위’와 같이 대외적으로 당 개혁과 쇄신에 대한 노력을 내보일 수 있는 별도의 신설기구를 조직하는 것도 우선적으로 생각해 봄직한 방안이다. 뭔가 요란하고 대단한 프로젝트를 가동한다기보다는 기본적인 신설 조직 개설을 통해 차근차근 당을 다져가는 것도 그에게 있어서 현실적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게 민주당 일각의 지적이다.
두 번째 카드는 안철수라는 ‘메기’를 다루는 데 핵심이라 할 수 있다. 7월에 야권의 잠재적 대권 주자인 손학규 상임고문과 김두관 전 지사가 독일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다. 김한길 대표 입장에서는 반드시 이 두 사람에게 협조와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 앞서의 핵심 당직자는 “무엇보다 안철수 진영과 가까운 손학규 전 대표가 키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며 “김한길 대표가 손학규 카드를 잘만 활용한다면 안철수 진영과의 공존 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안철수 원내 세력화 첫걸음은 국회 연구단체 만들어 ‘세 규합’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안철수 의원은 무소속이기에 원내 교섭권이 없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국회 내 연구단체를 조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를 통해 국회 내 세를 규합해 사실상 원내 교섭 창구로 활용할 것이다. 이는 여야 모두 초미의 관심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정치’를 표방하며 안철수 의원의 주도로 새롭게 조직될 국회 연구단체에 가입하는 여야 의원 모두 사실상 안철수 신당의 윤곽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아마 여기에 들어가려는 의원들 사이에서는 서로 간 눈치싸움이 치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사무처의 ‘국회의원 연구단체 지원규정’에 따르면 2개 이상의 교섭단체에 속한 의원 10명 이상이 정회원으로 참여하면 연구단체 조직이 가능하다. 이러한 연구단체는 특정 분야의 입법의 활성화와 연구, 개발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조직으로 국회로부터 별도의 지원을 받는다. 현재 19대 국회 내에는 모두 68개의 연구단체가 등록돼 있으며 본래의 목적만큼이나 여야 의원 간 교두보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