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무기로 김정은을 치다
인수위 사진기자단
이의원의 말처럼 정치권과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응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외교·안보 이슈의 특성상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또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미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잘 대처하고 있다는 얘기다. 외교·안보 라인의 정부 고위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일합을 겨룬 셈인데, 아직 승부는 나지 않았지만 초반 기싸움 성적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북한 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처가 이처럼 좋은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차분한 가운데 일관된 메시지를 내놓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는 거꾸로 뒤집으면 박 대통령의 카운터파트라고 할 수 있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차분하지도, 일관되지도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개성공단을 둘러싼 남북한 당국의 밀고 당기기 과정에서 두 지도자의 내공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선제압에 성공한 쪽은 김 위원장과 북한이었다. 지난해 말 미사일 발사 실험, 올해 2월 제3차 핵실험 등으로 도발 수위를 한껏 끌어올린 북한은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 채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대남 직접 도발 등 위협을 계속해 왔다.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 지연과 잇단 ‘인사 참사’에 휘청거렸던 박근혜 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현안에 대처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사태와 관련 긴급성명을 발표하고 있다.임준선 기자
이명박 정부에서도 살아남은 개성공단이 위기에 처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으로 여겨졌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아우성까지 커지면서 박 대통령이 결국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굴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4월 26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대북 성명을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성명의 골자는 개성공단에 체류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전원 철수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전날인 4월 25일 단 하루의 말미만 주면서 북한에 최후통첩성 대화 제안을 하고 북한이 이를 거부하자 곧바로 전원 철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여당 내에서조차 이 같은 정부의 갑작스런 방향 선회에 대해 “이건 북한이 즐겨 쓰는 수법인데…”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방향 선회에 대해 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키는 박 대통령의 ‘결정적인 한 수’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의 아킬레스건으로 여겨 온 개성공단 문제를 북한 당국의 아킬레스건으로 돌렸다는 얘기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 때에도 폐쇄되지 않은 개성공단이지만 북한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면서까지 그걸 지키지는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북한으로서는 개성공단이 더 이상 협박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반 기싸움에서 박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눌렀다는 평가다.
“개성공단을 단지 하나의 남북경제협력 사업으로 보면 큰 오산이다. 개성공단이 막히면서 입주기업들이 승용차의 앞 유리가 가려질 정도로 생산품을 싣고 철수하는 장면을 전 세계가 지켜봤다. 이런 장면을 지켜본 어느 나라도, 어느 기업도 북한에 투자하겠다는 생각을 갖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이번에 피해를 입은 우리 기업들도 개성공단 철수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은 개성공단 사태를 통해 자본주의 국제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신용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것이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박 대통령을 너무 가볍게 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정치 여정을 돌이켜 보면 박 대통령은 말 그대로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며 “대화의 문은 열려 있지만 도발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초반 기싸움에서는 박 대통령이 경륜의 우위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박 대통령이 ‘대북 강공 드라이브’에 나선 것은 아니라는 게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들의 일치된 설명이다.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남북관계도 작은 것 하나하나 약속을 지키고 신뢰를 쌓아가는 것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며 “아직까지는 북한이 잘못된 행동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5월 7일 한미 정상회담부터 6월로 예상되는 한·중 정상회담 사이에 한반도 상황이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