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 같은 증거 ‘떡’… 궁지 몰린 원세훈
이에 야당에서는 “모든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원세훈 전 원장부터 구속 수사해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나타내며 정치적 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의 쟁점 사항들을 정리해봤다.
두달 간의 IP 분석을 통해 의미심장한 증거를 포착한 민변은 최근 “국정원이 지난 대선 기간 중 최소 4명 이상을 투입해 73개 ID로 ‘오늘의 유머(오유)’에 올라오는 특정 게시글에 추천, 반대 활동을 벌여 사실상 정치개입을 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현재 민변 측이 제기한 의혹은 네 가지다. △게시물 작성 △댓글 작성 △자게시물 혹은 타게시물에 대한 추천행위 △타게시물에 대한 반대행위가 그것. 민변 측은 “경찰이 4가지 의혹 중에서 ‘게시물 작성’만 수사대상으로 잡았다”면서 “정작 쟁점의 핵심은 ‘오유’ 사이트 특성을 이용한 고의적인 ‘반대행위’인데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안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 점차 현실로 굳어지고 있다. 야당에선 ‘당장 원세훈 전 원장(사진)을 구속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요신문DB
또한 게시글이 ‘반대’표를 3회 이상 받을 경우 추천수가 아무리 높아도 게시판 승격이 되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다. 국정원 측이 이 조건을 십분 이용했다는 게 민변의 주장이다. 민변 박주민 변호사는 “‘오유’가 진보성향 사이트란 걸 파악한 국정원이 박근혜 후보에 유리한 게시글을 작성하면 정치개입이 금방 드러날 것을 우려해 박 후보에 불리한 글에 반대함으로써 조회수를 낮추는 작업으로 우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ID가 ‘반대’를 던진 280건의 글 중 220건의 글이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의 글이었다. 문제의 73개 ID의 반대를 받은 글은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2012년 9월 13일) ‘박근혜 “5·16 혁명 없었으면 우린 공산당의 밥”’(2012년 9월 13일) 등이었다.
일부 국정원 직원들의 ‘반대’를 받은 나머지 60여 건의 정치관련 글들은 ‘문재인과 안철수 모두에게 드는 신뢰감’(2012년 9월 16일), ‘문재인이 말을 못한다? 어눌하다? 라는 건 모두 기우였다’(2012년 9월 16일) 등 안철수, 문재인 전 대선후보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담은 글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글 모두 반대표 3회 이상을 받는 바람에 앞서 박 후보에 불리한 글과 마찬가지로 베스트게시판에 승급되지 못했다.
이런 의혹에 대해 국정원은 대북심리전의 일환이라고 급히 해명했으나 문제의 반대표 1467건 중 북한 관련은 단 3건밖에 없었다.
검찰은 현재 ‘오유’를 비롯해 대형포털사이트 ‘네이버’ ‘다음’에 대해서도 집중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측은 수사에 대해서 함구한 상황이지만 일부 관계자는 “건국 이래 두 번째 국정원 압수수색이다. 이 정도면 검찰이 국민에게 뭔가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거 아닌가”라고 적극적인 수사의지를 에둘러 말했다.
한편 압수수색까지 받은 국정원 측 내부 분위기는 차분한 편인 것으로 전해진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이뤄질지 전혀 모르겠다. (누가 봐도 죄가 있는) ‘도둑놈을 잡았다’면 수사방향이야 명확하지만…”이라며 국정원을 둘러싼 일각의 의혹들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정원 고위간부들이 처벌 받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국정원은 이번 의혹에 대해 이미 수차례 ‘업무에 의한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마디로 지시 감독 받았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는 얘기. 이에 대해 앞서의 민변 박 변호사는 “그렇다면 지시 감독한 사람들은 다 처벌 받아야 한다. 원세훈 전 원장이 국정원 내부 포털에 올린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보면 ‘유언비어 안돌 게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라’는 내용이 있다”며 “결국 어떻게든 원 전 원장은 반드시 처벌받게 돼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변호사는 대선 직전 경찰 측이 내놓은 ‘국정원이 정치엔 관여했지만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발표를 언급하며 “문제는 검찰도 비슷한 결론을 낼 수 있다는 거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인정하는 순간 자동적으로 현 정권의 정통성에 전면으로 문제제기하는 꼴이기 때문에 검찰은 심리정보국장과 원 전 원장을 처벌하는 걸로 수사를 마무리할 공산이 크다. 국정원장만 잡아넣어도 국민들은 ‘잘한다’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 측은 석연찮은 수사가 계속될 경우에 ‘상상 이상의 강경함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면서 ‘국정원 사건’을 정치적으로 비화시킬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석현 의원은 “당장에라도 원 전 원장을 구속시켜야 한다. 남아있는 세력과 말맞추기를 할 가능성을 없애야 하지 않겠는가. 검찰 측에 이런 제의를 했지만 확답을 주지 않았다”며 “결국은 대통령 의지에 따라 판가름 날 사건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관련 일인 만큼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공개 서명을 해야 한다. 원 전 원장의 개인비리로만 수사를 몰아갈 경우 야당에선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선거개입은 하지 않고 정치에만 관여했다는 경찰 측 발표는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 검찰이 앞으로 어떤 수사 결과를 내 경찰과의 차별화를 이룰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역대 국정원장 근황 공개 그때는 ‘파란’ 지금은 ‘잠행’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200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였다는 이유로 ‘굽신 만복’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종찬(22대) 초대 국정원장은 우당장학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원장은 최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올 3~4월을 거치며 국가안보가 위기에 봉착했다. 북핵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는 게 드러난 상황에서 여전히 안전불감증을 앓고 있는 국민들이 걱정”이라며 “북핵에 경각심을 줄 수 있는 사업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불법 도청조직 ‘미림팀’ 운영 혐의로 수사를 받은 바 있는 천용택(23대) 전 국정원장은 2000년 열린우리당 의원으로 변신했다가 현재 민주당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시작되던 올해 1월 초 현충원 참배행사에 오랜만에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실질적인 정치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05년 11월 불법 감청을 묵인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나란히 집행유예 4년 판결을 받은 임동원(24대), 신건(25대) 전 국정원장은 그 행보가 엇갈리고 있다. ‘햇별정책 창안자’로 유명했던 임 전 원장은 최근 민주당 5·1 회동에서 개성공단 문제를 논하는 등 왕성한 대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 야당 의원은 “임 전 원장은 개인 사무실 없이 자택에서 학문 활동을 하고 있다. ‘햇볕정책 전도사’답게 남북문제에 관해서는 적극적인 참여를 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임 전 원장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전 대선후보 캠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반면 신건 전 국정원장은 18대 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민주당에 적을 두되 특별한 직책 없이 잠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유일하게 잡음을 일으킨 바 없었던 고영구(26대) 전 국정원장은 법무법인시민종합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로 본래의 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승규(27대) 전 국정원장은 “로고스 로펌에서 법무활동 중이다. 앞으로도 정치활동은 삼가고 민영교도소 문제에 힘쓸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던 이유로 ‘굽신 만복’이란 별칭이 생겼을 정도로 임기 말 갖가지 구설수에 올랐던 김만복(28대) 전 원장은 현재 통일전략연구원에서 조용히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성호(29대) 전 국정원장은 “평민으로 소일하고 있다. ‘행복세상’이라는 재단에서 행복국가를 위한 연구에 힘쓰고 있다. 앞으로 재단 운영과 후학양성에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
이종찬 초대 국정원장 직격인터뷰 “국정원 이제 손 떼시오” ―최근 국정원이 검찰 압수수색을 당했는데. ▲‘국정원 개혁’만을 초점으로 보면 (검찰 등) 외부에 의해 개혁이 이뤄지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국정원은 기밀을 다루는 국가정보기관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남재준 신임 국정원장이 ‘(수치심에) 치를 떨면서’ 강한 의지로 직접 해결하는 게 더 낫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검찰의 압수수색이 불가피했다고는 본다. 범죄를 가리기 위해 불가피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원세훈 전 원장의 심복들이 내부에 꽤 있다는 풍문에 대해서는 어떤가. ▲그렇겠지. 그러나 국정원 구조상 내부자에 의한 증거인멸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데 원 전 원장한테 덕본 사람이 뭘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그게 은폐가 되겠는가. 국정원은 정신 좀 차려야 한다. 옛날 일은 접어두고 국내정치에서 손을 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내부고발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청와대가 이번 국정원 수사를 반기지 않을 수도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의) ‘원조 피해자’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국정원 개혁을) 바라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이미 쓰라린 과거가 있지 않은가. 과거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가 돌아가시지 않았나. 이게 모두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개입해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까 박근혜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국정원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걸 자기가 잊고 있으면 되나. 정보기관을 국내정치에 풀어놓아서 결국은 아버지가 죽게 됐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또다시 국정원을 국내정치 도구로 쓰면 정말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불씨를 꺼야 한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여부가 드러날 경우 현 정권의 정통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박근혜 정권에 금이 갈 이유가 없다. 이게 다 전 정권인 이명박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고 원세훈 전 원장 역시 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 아닌가. 이렇게 책임 자체에서부터 박 대통령은 홀가분할 수 있는 입장이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