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꿈 싣고 출항… 잇단 암초에 줄줄이 좌초
개성공단에 잔류 인원의 귀환이 예정된 시간보다 지연된 4월 30일 새벽, 입경인들이 탄 차량들이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로 들어서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정부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과 근로자들의 귀환을 권고하면서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적 존재인 개성공단이 자칫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 만약 공단이 폐쇄되거나 현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입주기업들은 막대한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개성공단기업협회 측은 “입주기업이 모두 일률적으로 큰 손실을 봤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게 됐다”며 “개성공단 정상화가 최우선”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상황이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기어이 개성공단이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대북사업과 남북협력사업의 꿈을 안고 진출한 일부 기업들이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개성공단 사태는 그동안 대북사업과 남북협력사업을 추진했던 기업들의 운명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아쉬운 점은 이들 기업들이 한결같이 부푼 기대를 안고 진출했지만 결국 사업을 포기하거나 사업을 유지한다 해도 손실만 눈덩이처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구분이 없다. 대우그룹과 평화자동차 등이 전자의 경우라면 현대그룹과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후자의 경우다.
‘대북사업’ 하면 떠오르는 기업은 단연 현대그룹이다. 현대그룹은 1998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방북’ 이후 현대아산을 중심으로 금강산 관광 사업 등 대북사업을 주도했다. 대북사업과 북한에 진출하기를 원하는 기업들은 현대그룹을 통해야만 가능했다. 현대아산은 대북사업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개성공단 개발사업권까지 갖고 있다. 한마디로 대북사업의 전권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2003년 12월 11일 개성에서 열린 개성공단 개발사무소 착공식에서 남북대표들이 기념 시삽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경제협력사업의 첫 출발인 남포공단 실패 이후 대우그룹은 해체되고 김 전 회장은 꽤 오랫동안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물론 남포공단 실패가 대우그룹 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아니다. 김 전 회장이 남포공단에 그룹의 명운을 걸 만큼 집중 투자를 한 것은 아니었다. 김 전 회장도 “큰돈을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손해는 없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남포공단 실패 이후 대우그룹은 ‘대북사업의 저주’라도 내린 듯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대우그룹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대북사업의 상징이 됐고, 그만큼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기업은 현대그룹이다. 1998년부터 금강산 관광 사업을 시작한 현대는 사업 초기에만 반짝 효과를 누렸을 뿐 관광 사업에서 발생하는 손실 규모가 해마다 늘어났다. 2003년 9월부터 육로관광이 시작되면서 수익성이 개선되나 싶었지만 이마저도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살 사건’이 발생하면서 관광사업 자체가 아예 중단된 상태다.
대북사업이 중단되면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고 있지만 현대그룹 측은 지금이라도 사업이 재개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워낙 정치적 영향이 크게 작용하는 탓에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사업 재개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선대회장 뜻도 있는 데다 장기적 관점에서 분명 사업성이 좋았다”면서 “대북사업 중단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아산은 지난해부터 건설부문 역량을 강화해 나가면서 손실 규모를 줄이고 있다.
현대가 대북사업을 시작하던 초기 분위기는 대단했다. 마치 ‘대박’이라도 예약해놓은 듯 적지 않은 업체들이 현대상선과 현대아산 쪽에 줄을 대기 위해 몰렸다는 것. 당시 실무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업체들이 북한에 자사 상품이 최초로 들어간다는 데 의미를 두기 위해 로비가 상당했다”며 “장기적 안목에서 사업성을 염두에 뒀겠지만 당장은 홍보 효과를 보기 위한 것도 사실”이라고 회고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신원’의 제1공장 내부 모습(왼쪽). 2008년 7월 피살된 박왕자 씨 유가족들. 박 씨 피살 사건 이후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사업은 중단됐다. 일요신문 DB
지난해 말 통일그룹이 12년간 북한과 합작 형태로 운영해온 평화자동차 사업에서 손을 뗀 것도 ‘대북사업의 저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평화자동차 측은 “수익이 나는 상태에서 넘긴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업계에서는 사실상 적자를 보고 있었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통일그룹 측은 이번 개성공단 귀환 사태 전에 사업권을 넘기긴 했지만 남북경색 국면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평화자동차 관계자는 “남북경색, 사업의 어려움 등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인정했다.
‘대북사업의 저주’가 한꺼번에 몰아친 곳은 123개 개성공단 입주기업이다. 이들은 개성공단이 조성되던 초창기 정부의 권고가 아니라 자체 판단에 따라 입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수익적 측면에서 잔뜩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 업체는 “인건비 등 원가적 측면에서 대단히 유리했고 그 때문에 입주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막상 들어가 보니 ‘삼통(통신·통관·통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다른 업체 관계자는 “오히려 삼통 문제는 2008년 이후 원활해졌다”며 “안전을 담보해준 정부를 믿고 들어갔는데 정치적 요인 때문에 생산 차질을 빚은 것은 물론 투자금액까지 모두 날리게 생겼다”고 한숨을 쉬었다.
적지 않은 입주기업들이 크게 고민한 것 중 하나가 인력 충원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개성공단 주변 북측 근로자들은 이미 대부분 개성공단에 근무하고 있는 상태에서 기숙사 건립이 미뤄지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졌다는 것. 당초 정부는 기숙사 건립을 약속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숙사 건립을 미뤄 개성공단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의 북측 노동자들을 유인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대부분 중소기업인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가까운 곳에 싸고 좋은 공장이 있다”는 것에 가장 큰 매력을 느껴 개성공단에 입주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사실 인건비를 많이 얘기하는데, 베트남이나 미얀마 등 찾아보면 북한보다 인건비가 싼 곳도 있다”며 “그보다는 의사소통과 기술이전이 원활하고 거리와 물류 이동 문제에서 개성공단이 훨씬 유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알려진 바와 다르게 “공장에 큰 문제는 없었고 북측 근로자와 공안 등이 매우 협조적이었으며 열심히 근무했다”며 “오히려 남북 간 정치적 긴장이 조성될 때마다 통행을 줄이는 등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123개 입주기업들은 사업적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개성공단에 입주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결과만 놓고 보면 오히려 개성공단에 입주한 것이 해가 되고 있다. 입주기업 중에는 이미 생산라인을 해외로 돌린 곳도 있다. 생산원가가 올라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만약 개성공단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기업마다 투자금액을 날리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북사업의 저주’가 123개 중소기업의 머리 위까지 내려와 있다. “리스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이제 와서 정치적 이유 때문에 입주기업들만 다 손해를 보라는 것은 억울하다”는 한 업체의 하소연은 새겨들을 만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현대아산 ‘업종변경’은 무죄? 이대로 망할 순 없다 ‘건설사’로 변신 현대가 리모델링한 외금강호텔 개관식에 현정은 회장(왼쪽 두번째) 등이 참석했다.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현대아산이 입은 손실은 지금까지 70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손실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 현대아산이 돌파구로 마련하고 있는 분야는 건설부문이다. 현대아산은 지난해 강남 보금자리아파트, 관광공사 신사옥 공사 등 공공부문 건설 수주로 1000억 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4분기에는 건설부문 인력을 대폭 충원했으며 지난 3월 26일에는 장경작·김종학 각자대표체제에서 김종학 단독대표체제로 전환했다. 현대건설 부사장 출신의 김종학 사장은 건설 분야에 정통한 인물로 현대아산 건설부문의 실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설 출신 대표이사 사장, 건설부문 인력 충원, 건설부문 매출 비중 확대. 이쯤 되면 현대아산을 건설사라 불러도 무방해 보인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실적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이 가운데 건설이 두드려져 보이는 것이고 건설에 역량을 좀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아산이 공공부문 건설을 수주하는 것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가뜩이나 건설경기가 침체해 있는 가운데 건설 분야 경험이 일천한 현대아산이 공공부문을 잇달아 수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경기 침체가 너무 길어지다 보니 지난해에는 작은 공사에도 대형 건설사들이 나설 정도였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현대아산이 1000억 원에 이르는 건설 수주를 했다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 시절 현대아산의 대북사업 중단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정부가 현대아산에 공공부문 건설 수주를 밀어주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남북교류협력의 물꼬를 트는 데 현대의 공이 있고 대북사업 중단에 대한 책임이 어느 정도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현대아산이 대북사업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5일 김종학 사장은 현대아산 창립 14주년 행사 자리에서 “올해 반드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한다는 목표로 사업 정상화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후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됐으며 개성공단은 폐쇄 위기에 처해 있다. 올해 사업을 재개할 것이라는 현대아산의 희망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