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 앞길 터주려 ‘노병들은 사라진다’
▲ (좌) 이기태 전 부회장 / (우) 황창규 전 사장 | ||
이번 인사를 통해 삼성은 1948년생 이상 고참급 최고경영자(CEO)들을 전원 퇴진시켰다. 지난 수년간 ‘삼성공화국’ 파문과 삼성특검 수사 여파 등 때문에 안정을 최우선으로 해서 운용해온 사장단의 인사 폭을 넓혀 60세 이상 경영자 퇴진 원칙을 적용해 신진 세력을 대거 승진시키는 세대교체를 단행한 것이다.
이번 물갈이 인사에서 특히 관심을 끈 것은 그룹 주력인 삼성전자의 스타급 CEO들의 퇴진이다. ‘애니콜 신화’의 이기태 부회장과 ‘반도체 집적도가 1년에 두 배씩 증가한다’는 이른바 ‘황의 법칙’의 황창규 사장이 그 주인공들. 이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삼성 브랜드를 대표하는 CEO들이었지만 후진에게 길을 터주는 차원에서 물러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61세인 이기태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은 삼성의 휴대폰 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미스터 휴대폰’으로 불렸던 인물. 이 전 부회장은 지난 2007년 인사를 통해 정보통신총괄 사장에서 기술총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직급은 올랐으나 2000년 정보통신총괄 대표이사 부사장 승진 이후부터 7년간 써내려온 ‘애니콜 신화’의 바통을 후임 최지성 정보통신총괄 사장에게 넘겨줘야 했고 지난해 인사에선 대외협력 담당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연말 KT 사장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KT 입성 가능성이 점쳐졌으나 그 자리는 정치 외풍 논란 속에 입성한 이석채 사장의 몫이 됐다.
황창규 전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도 지난해 인사에서 4년간 지켜온 반도체총괄 사장 자리를 권오현 사장에게 내주고 기술총괄 사장으로 보직을 옮긴 뒤 이번 인사를 통해 물러나게 됐다. 황 전 사장은 올해 56세로 아직 한창 경영일선을 누빌 수 있는 나이란 점에서 향후 거취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밖에 지난 2001년 삼성전자 경영지원총괄 대표이사 부사장을 거쳐 2003년 사장이 되면서 지난 8년간 삼성전자 경영지원 부문을 총괄해온 최도석 사장도 삼성카드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전자를 대표해온 CEO들의 퇴장은 단순한 세대교체 차원을 넘어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전무 시대의 본격 개막을 예고하는 전주곡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많은 재계 관계자들이 보고 있다. ‘이건희 시대’의 스타들이 물러난 자리를 ‘이재용 시대’ 조타수가 될 새로운 CEO들이 채우게 된 것으로 평가받는 셈이다. 경제개혁연대도 논평을 내고 ‘나이가 경영능력의 척도가 될 수 없음에도 이를 기준으로 최고경영진의 인사를 결정한 것은 결국 이재용 전무의 등극을 준비하는 경영권 승계구도의 일환인 것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이번 인사와 승계구도는 절대 무관하다”고 못 박았다.
이번 인사를 통해 가장 주목받는 인사는 단연 최지성 사장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반도체 LCD 디지털미디어 정보통신 4개 사업부를 부품(반도체+LCD)과 제품(디지털미디어+정보통신) 2개 분야로 조정했다. 이윤우 삼성전자 총괄 대표이사 부회장이 디바이스 솔루션(부품·Device Solution) 부문장을, 최지성 정보통신총괄 사장이 디지털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제품·Digital Media & Communi cations) 부문 사장을 맡아 ‘투톱체제’로 삼성전자를 이끌게 됐다.
▲ (왼쪽에서) 최지성 사장 / 최도석 사장 / 권오현 사장 | ||
삼성그룹은 지난해 4월 22일 쇄신안 발표로 이건희 전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를 통한 계열사별 책임경영체제를 구축해왔다. 현재 해외 순회근무 중인 이 전무가 조만간 국내로 컴백, 그룹 경영권 승계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 전무의 본사 복귀와 연착륙을 위한 교두보 중심에 최 사장이 설 것으로 관측되는 것이다.
이 전무는 승계에 필요한 지분을 이미 확보한 상태지만 삼성특검 여파로 인해 해외 근무를 택한 만큼 이건희 전 회장의 삼성특검 재판이 잘 마무리돼야 승계작업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 전 회장은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조세포탈 혐의만 일부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상태다. 당초 이 전 회장 대법원 판결 이후에 가능할 것 같았던 그룹 인사가 빠르게 단행되면서 이 전 회장 측이 최종선고에 대해 긍정적 전망을 하는 것으로 비치는 분위기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