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자리’ 향한 복마전 KB금융 차기회장 100여 명 우르르
KB금융과 우리금융 등 대형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인선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KB금융과 우리금융 모두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본격 가동된 가운데 대략 윤곽이 잡힌 우리금융과 달리 KB금융의 경우 많게는 100여 명의 인사가 차기 회장직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회장 인선 작업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복마전 양상을 띠어가는 대형 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인선 작업 막후를 들춰봤다.
“KB금융 차기 회장 자리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이 10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금융은 아무래도 민영화 문제가 걸려 있어 행보가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이지만 KB금융은 민간 기업인 데다 업계 1위라는 매력도 있기에 경쟁률이 치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만난 금융권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요즘 금융권 관심은 온통 KB금융과 우리금융, 두 곳의 대형 금융지주 차기 회장이 누가 되느냐다. 오는 7월 12일 임기가 만료되는 어윤대 KB금융 회장은 이미 연임 포기 의사를 밝혔으며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임기가 남아 있음에도 사의를 표명했다.
사실 대형 금융지주의 차기 회장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이미 큰 관심사로 떠오른 바 있다.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 어윤대·이팔성 회장 등 지난 정부 인사들이 포진해 있어 물갈이가 예상된 까닭에서다.
현 정부 인사들 역시 공공연하게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을 해온 터였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우리금융 회장을 포함해 금융지주 회장들의 교체를 암시한 바 있다. 새 정부 들어 강만수 전 회장이 사임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대학 동기(서강대 71학번)인 홍기택 회장이 뒤를 잇자 금융지주 회장 물갈이에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견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 전 회장 사임 이후 이팔성 회장이 사의를 표명했고 경영진과 사외이사진 간 알력 다툼이 부각됐던 KB금융도 이사회 등을 열면서 어윤대 회장의 거취가 주목받았다. 그러나 웬일인지 새 정부가 들어서도 한참 동안 인선 작업이 펼쳐지지 못했다. 한 대형 금융지주 관계자는 “금융당국 인사와 조직 재정비가 늦어진 탓이 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유력 후보들인 이종휘 위원장은 ‘행원 출신 행장’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이순우 행장은 지난 정부에서 우리금융의 민영화 시도 과정을 지켜본 현 행장이라는 점이 장점이다. 신 위원장이 ‘민영화 의지 및 추진력’을 우리금융의 차기 회장 요건으로 제시한 터여서 후보들 중 누가 민영화를 가장 강력히 추진할지가 중요 평가 항목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지난 11일엔 ‘이순우 회장 내정·유력’ 보도가 잇따르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금융 민영화는 우리금융의 차기 회장 인선 작업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신제윤 위원장은 우리금융 민영화에 대해 “직을 걸고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만큼 우리금융 차기 회장의 활동 폭은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우리금융 차기 회장은 민영화라는 난제를 푸는 데 올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신 위원장은 우리금융 차기 회장과 관련해 ‘민영화 이후 언제라도 자리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원자와 후보자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인선 작업에 속도가 붙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민영화가 쉬운 상황은 아니다. 우리금융 민영화의 3대 원칙, 즉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조기 민영화, 금융산업 발전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기 민영화’는 이미 물 건너 간 상황이나 마찬가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문제도 우리금융 주가가 1만 1000원에 머물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어렵다.
이 같은 문제는 우리금융 차기 회장에게는 큰 압박이다. 현 정부와 신 위원장이 우리금융 민영화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관치의 화신으로 불리는 천하의 김석동 위원장도 하지 못한 일’이라는 냉소마저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에서는 이미 우리금융 민영화와 관련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기도 하다.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이 “흥행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흥행을 바라니 답답하다”고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영화를 강조하는 우리금융 차기 회장직에 도전할 인사가 많을 리 만무하다.
반면 KB금융의 경우 차기 회장에 대해서 오리무중이다. 차기 회장 인선 작업이 당초 예상보다 늦어진 탓도 있지만 우리금융 회장 자리를 부담스러워하는 인사들이 대부분 KB금융 회장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금융 회장직에 도전장을 낸 인사는 배제하기 때문에 더 몰리는 것일 수 있다. 오죽하면 무려 100여 명의 인사가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왼쪽부터 이덕훈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 이종휘 신용회복위원장, 이순우 우리은행장
KB금융은 당장 다음날인 9일 서울 중구 명동 본사에서 2차 회의를 열어 차기 회장 선임 방법과 후보자 자격 기준을 정했다. 관심을 끌던 공모제는 KB금융 관례에 따라 실시하지 않기로 했으며 ‘경영진 승계 프로그램’과 외부 헤드헌팅 업체 추천으로 5월 중 후보군을 확정하고 6월 중순까지 차기 회장을 내정키로 했다.
당초 예상됐던 어윤대 회장의 임기 전 사퇴는 현재까지 상황만 보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 회장의 임기는 오는 7월 12일까지. 어 회장은 ING생명 인수 무산에 이은 사외이사진과 갈등 양상을 보일 때만 해도 임기를 채우기 힘들 것으로 예상됐다. 더욱이 금융권의 대표적인 ‘MB맨(이명박 전 대통령 사람)’으로서 교체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KB금융 회추위의 구성과 진행 속도가 더뎌지면서 어 회장의 임기는 지켜줄 것으로 예상된다.
KB금융 회추위가 본격 가동되면서 업계 1위 대형 금융지주사의 차기 회장이 누가 될 것이냐에 큰 관심이 쏠려 있다. KB금융 측은 “100여 명이 몰려 있다”는 얘기에는 고개를 젓고 있지만 공모 방식이 아닌 데다 승계 프로그램에 따라 KB금융의 현직 회장, 사장, 은행장 등 최고경영자(CEO)들이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차기 회장 후보가 되기도 한다.
차기 회장 선출 방식이나 현재 여건을 보면 KB금융 회장 자리를 노리는 인사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금융권 시각이다. 현 정부와 밀착돼 있는 관료 출신과 학계 출신도 후보군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과 임종룡 전 국무총리실장이 잇달아 KB금융 회장 자리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료나 학자 출신보다 전문성을 갖춘 정통 금융인이 KB금융의 차기 회장 자리를 차지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KB금융 차기 회장 인선 문제에서 부담스러운 부분 중 하나는 ‘낙하산 논란’이다. 비록 청와대와 정부 쪽에서 대형 금융지주 차기 회장 선출과 관련해 “전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임 전 실장이나 김 원장 등이 고사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과거와 달리 KB금융 차기 회장 후보군에서 관료 출신들이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하는 까닭도 낙하산 논란을 의식한 탓이다.
그럼에도 KB금융 차기 회장을 선출하는 데 정부 쪽 의사가 완전히 배제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금융당국 인사가 마무리되고 두 대형 금융지주의 차기 회장이 정해지면 우리금융의 민영화를 강력히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금융의 덩치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사실상 KB금융뿐이라는 점에서 어떻게든 정부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
우리금융 차기 회장으로 민영화에 대한 정부와 금융당국 입장을 잘 따라줄 사람을 세우고, KB금융 차기 회장 역시 현 정부와 가까운 인사로 정해 우리금융 민영화를 이뤄낼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일부에서 회자되고 있는 실정이다. KB금융 차기 회장과 관련해 우려가 제기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금융지주 회장은 금융권 인사뿐 아니라 관료들에게도 꿈의 자리다. 한 대형 금융지주 관계자는 “비록 금융당국의 관리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웬만한 재벌 회장 부럽지 않다”며 “정권 실세들이 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앉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자칫 혼탁한 상황이 연출될지 우려스럽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위원장 김문호)은 지난 9일 성명서를 내고 KB금융과 우리금융의 차기 회장 인선 작업과 관련, “잘못된 관치를 배제하고 전문성 위주의 인사가 이뤄지도록 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금융노조는 두 곳의 회장 인선이 앞서 말한 대로 ‘우리금융 민영화를 위한 관치 패키지’가 될 것을 우려하며 “한 가지 현안(우리금융 민영화)에 매몰돼 또 다시 낙하산 관치를 시도한다면 금융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