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낮고 담보 없을 때 ‘긴급수혈’
서울 봉천동에서 감자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지원 씨(35). 직장을 다니던 그는 일찌감치 창업을 결심, 철저한 준비를 마친 뒤 창업시장에 뛰어들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그였지만 마지막까지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것은 바로 부족한 창업자금 때문이었다. 직장을 그만둔 그에게 은행의 문턱은 이미 너무 높아져 있었고, 신용으로 대출이 가능한 금액은 점포를 마련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고민 끝에 그는 부모 등 가족을 설득, 5000만 원을 마련해 가까스로 창업에 나설 수 있었다.
이 씨처럼 주변의 도움을 받아 창업에 나선 경우는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부족한 자금 조달을 위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으려 하지만 신용도가 낮은 영세 자영업자에게 금융권 대출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결국 부족한 자금으로 창업에 나서다 보니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이른바 ‘B급 입지’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고 이용객이 적으니 매출이 부진하게 되며 결국 폐업을 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의 30%에 이르는 자영업자의 폐업이 급격히 증가하자 정부와 금융기관에서 각종 자금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는 노점상이나 신용이 낮은 자영업자들도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폐업 후 다른 사업을 시작하려는 자영업자는 ‘전업지원자금’을 빌려주는 등의 지원 대책을 내놨다. 지금까지 현실적으로 은행 대출이 불가능했던 노점상이나 신용이 낮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각 시·도 신용보증재단 보증을 통해 적은 금액이지만 대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점포가 있는 자영업자는 500만 원, 노점상이나 신문·우유 배달원 등은 300만 원이 한도다.
1%의 보증료를 내고 보증서를 받으면 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단 신용불량자나 지자체가 노점행위를 집중 규제하는 구역의 노점상은 보증을 받을 수 없다. 폐업한 지 2년이 안 됐거나 앞으로 장사를 그만두려는 자영업자가 다른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 최고 5000만 원까지 전업지원자금을 빌릴 수 있다. 대출 조건은 연 4.74%에 5년 기한이다. 신청은 전국 60개 소상공인지원센터를 통해 이뤄지며, 지원 대상에 선정되면 창업 컨설팅을 받은 뒤 자금이 지원될 전망이다.
행정안전부에서 지원하는 특례보증 대출도 있다. 저신용 사업자, 영세 소상공인, 무등록·무점포 영세상인 등은 1월 21일부터 전국 1522개 새마을금고를 통해 특례보증 대출을 지원받을 수 있다. 저신용 사업자(9~10등급)와 점포입주 영세 소상공인은 500만 원 이내, 무등록·무점포 영세상인(노점상)은 한도가 300만 원이다. 대출 기간은 1년씩 약정하되 만기가 돌아올 때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행정안전부에서는 이 대출로 제도금융서비스 사각지대에 놓인 영세 사업자·소상공인 가운데 최소 2만 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영세자영업자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내놨다. KB국민은행이 내수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5000억 원을 특별 지원하기로 한 것. 지원대상은 담보가 부족하고 신용상태가 나쁜 영세 소상공인 등 자영업자들이다. 대출금액과 담보는 지역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서를 담보로 업체당 최고 5000만 원 이내에서 지원된다. 대출 금리는 최대 연 1.53%포인트 할인되며 전국신용보증재단은 기존 최대 연 2.00%였던 신용보증료를 연 1.00%로 감면해 줄 방침이라고 한다. 국민은행은 우선 올해 6월 말까지 총 5000억 원을 책정하고, 대출 수요가 많을 경우 총 운용한도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가족부에서도 담보나 보증 없이 소액자금을 빌려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소액신용대출) 대상을 자활공동체에서 저소득층 개인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차상위계층까지 창업자금이 지원될 전망이며, 1000만 원 이내에서 연 2%의 금리로 빌릴 수 있다. 3월부터 복지부가 선정한 사업수행기관에 신청하면 대상선정위원회에서 지원 대상을 최종 선정하게 된다. 사업수행기관은 2월 중 확정될 예정이다.
서울시민이라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차상위 가구를 대상으로 창업자금을 지원하는 ‘희망드림뱅크’를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 거주자나 사업장 소재지가 서울인 경우에 지원을 받을 수 있고, 1500만 원까지 연 2%의 이자율로 5년 동안 빌릴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기관의 자금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눈 가리고 아웅’식 지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뒤따르고 있다. 한 창업전문가는 “자금 지원이 현재 창업자에게 국한되어 있어 예비 창업자들은 전혀 혜택을 받을 수 없고, 대상자라 하더라도 금융회사의 대출금 이자, 휴대폰 요금, 공공요금 등이 3개월 이상 연체된 경우 대출이 곤란할 수 있어 실제로 혜택을 받는 사람이 많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 관계자 역시 “자영업을 살리려면 창업자금 지원 등 금융지원 정책을 지양하고 임금 근로자로 전환 등 중장기 정책을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찌 됐건 위기의 자영업자라면 이러한 지원 정책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정책자금이 무상이 아닌, 저리로 지원되는 대출 자금이므로 본인의 신용상태와 지원 가능한 자금 규모, 상환 능력 등을 꼼꼼히 따져본 후 신청해야 할 것이다. 창업전문가들은 “자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므로 자신의 형편에 맞게 자금을 지원받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김미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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