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텔레파시’ 담장 밖으로 날려버려!”
올 시즌 ‘초보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넥센 히어로즈 사령탑에 오른 염경엽 감독은 짜임새 있는 토털야구를 선보이며 선두 그룹에서 질주하고 있다. 넥센은 지난해 이맘때도 1위를 찍었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 급격히 무너지면서 6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렇기 때문에 올 시즌 넥센의 선두를 지난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야구전문가들은 ‘진짜 넥센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왜냐하면 염경엽 감독 때문이다.
“7월까지는 순위를 생각하지 않겠다. 순위표는 7월 이후에나 보겠다.”
염경엽 감독은 삼성과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지금, 순위가 중요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한 게임 한 게임 최선을 다해서 이기다 보면 시즌 중반 이후에 그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염 감독이 그렇게 말한 배경에는 지난해 성적과도 연관이 있다. 초반 질주 후 중반부터 내리막길을 탔던 경험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다.
“작년과 같은 어려움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똑같은 악몽을 반복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그래서 가급적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우리의 길만 가겠다고 결심했다.”
# 김시진 감독과의 인연
염경엽 감독은 “삼성과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지금 순위는 중요치 않다”고 잘라 말했다.
“넥센에서 코치 생활을 하게 된 것도 감독님 덕분이고, 내가 넥센의 사령탑을 맡은 것도 감독님 때문이다. 지난 시즌 감독님이 물러나시고 상당히 아픈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때 구단에서 나한테 감독직 제의를 해왔다. 깜짝 놀란 마음에 고민만 하고 있다가 어렵게 감독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감독님께서 ‘난 네가 하는 게 제일 좋다’라고 하시더라. 감독님한테는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뿐이었는데, 오히려 감독님께서 날 격려해주시고 힘을 실어주셨다. 그런 말씀을 안 해주셨다면 난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염 감독은 올 시즌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롯데 성적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롯데랑 경기를 할 때 팀이 이기는 것은 기분 좋지만, 롯데가 지는 데 대해선 신경이 쓰인다는 것.
“경기 중 우리 팀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펼칠 때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거나 활짝 웃을 때가 있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아차’ 한다. 행여 나중에 방송을 통해 김 감독님이 이런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면 얼마나 배신감 느낄까 싶어서다. 롯데 성적이 좋으면 자주 전화드려서 이런저런 상의도 하고 그러고 싶은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보니 그냥 조용히 지내고 있다.”
# 넥센과 삼성의 차이?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삼성이 떨어지면 곧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넥센이 떨어지면 또 떨어졌네 하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난 그런 인식을 바꿔 놓고 싶다. 솔직히 자존심 상한다.”
염 감독은 ‘텔레파시론’을 들었다. 성적이 안 좋은 팀의 공통적인 특징은 선수단 사이에 스며있는 ‘패배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즉 ‘못 한다’ ‘못 한다’ 하면 계속 못하기 마련이고, 이런 텔레파시가 선수들에게 전파됐을 때 팀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는 설명이다.
“넥센 같은 경우, 선수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패배주의를 뿌리 뽑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하려면 선수들과 두터운 신뢰를 쌓아야 했다. 소통이 중요했다. 난 절대로 선수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코치와 강도 높은 대화를 나눈다. 코치들에게 스스로 감독이라고 생각하고 경기에 임하라며 책임감과 전문성을 부여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선수들은 ‘올해 꼭 4강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4강은 당연히 간다’로 바뀌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팀이 1위를 달리고 있어도 선수들은 불안해했다. 그러나 지금은 넥센이 밑으로 추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그게 무서운 ‘텔레파시론’이다.”
그러면서도 염 감독은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지난 32게임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면 선수들의 자신감 회복이지만, 베테랑 선수가 부족한 팀 사정상, 자칫 잘못하면 작은 부분에 흔들릴 수 있는 요인이 많다고 판단했다.
“삼성이 왜 강팀이냐 하면 경험 많은 베테랑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기에 강하다. 경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실수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아마 이 점만 잘 해결된다면 올 시즌 넥센의 돌풍은 가상이 아닌 현실로 이뤄질 것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초보감독 울린 개막전의 교훈
뼈아픈 역전패 ‘약’ 됐다
염경엽 감독은 지금도 KIA 타이거즈와 펼쳐진 광주 개막전을 잊지 못한다.
경기 내내 엎치락뒤치락 하며 명승부가 펼쳐졌고, 7회 초까지 9-6을 내달리며 감독 데뷔 첫 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결국엔 10-9로 역전패 당하고 말았다.
“개막전에서 초보 감독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경기였다. 9-6으로 앞섰을 때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경기가 뒤집어지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 경기를 열 번도 더 복기해 봤는데, 나로서는 스프링캠프 때 준비했던 게임 운영을 그대로 밀고 가려고 고집했다. 데뷔전이었기 때문에 ‘올 시즌 넥센의 염경엽이 이렇게 경기를 풀어갈 것이다’라고 과시하고 싶었다. 노련하게 응용해서 마운드 운용을 했어야 하는데 고집만 피우다 망했다. 막판에 좀 더 경험있는 투수를 올렸더라면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경기가 ‘약’으로 작용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스탠스를 갖고 선수단을 이끌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 경기였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뼈아픈 역전패 ‘약’ 됐다
KIA와 넥센의 개막전. 넥센은 결국 역전패 했다.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경기 내내 엎치락뒤치락 하며 명승부가 펼쳐졌고, 7회 초까지 9-6을 내달리며 감독 데뷔 첫 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결국엔 10-9로 역전패 당하고 말았다.
“개막전에서 초보 감독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경기였다. 9-6으로 앞섰을 때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경기가 뒤집어지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 경기를 열 번도 더 복기해 봤는데, 나로서는 스프링캠프 때 준비했던 게임 운영을 그대로 밀고 가려고 고집했다. 데뷔전이었기 때문에 ‘올 시즌 넥센의 염경엽이 이렇게 경기를 풀어갈 것이다’라고 과시하고 싶었다. 노련하게 응용해서 마운드 운용을 했어야 하는데 고집만 피우다 망했다. 막판에 좀 더 경험있는 투수를 올렸더라면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경기가 ‘약’으로 작용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스탠스를 갖고 선수단을 이끌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 경기였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