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로비 ‘징검다리’ 됐나
▲ 박연차 게이트 검찰 수사가 여권과 재계 쪽으로 불똥이 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합성. |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사 초기부터 몸통으로 간주돼왔다.”지난 3월 중순경 검찰의 한 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언론 등에 공개된 것은 최근이지만 실제로 대검 중수부가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 노 전 대통령을 수사 리스트에 올린 것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 측에 500만 달러를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뒤 이 돈이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 씨 계좌로 송금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올 초엔 “청와대에 찾아가 100만 달러를 건넸다”는 박 회장의 추가 진술이 나와 이에 대해서도 확인 작업에 나섰다고 한다. 검찰은 이 돈들이 ‘노 전 대통령의 것’이라고 보고 수사를 진행해왔다는 전언이다. 현재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를 자신하고 있는 것도 그동안의 충분한 수사를 통해 이미 구체적인 증거들을 잡았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서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것으로 보고 지금까지 알려진 혐의 입증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박 회장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다른 사안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표적 수사’ ‘정치 보복’이라는 비난 여론과 노 전 대통령 측을 필두로 하는 전 정권 세력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여권 인사들을 향해 불거진 의혹들도 확인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검찰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경우 ‘소환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회장 구명 로비 과정에서 천 회장의 부정한 청탁 등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천 회장과 박 회장은 오래 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사이로 천 회장은 박 회장이 노무현 정부 때 농협으로부터 인수한 휴켐스의 사외
이사를 최근까지 맡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일요신문>은 박 회장 소유의 정산개발이 지난 2006년 세중나모 계열사인 세중게임박스(현 세중아이앤씨) 지분 2.09%를 사들인 것을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 이외에도 <일요신문>은 박 회장 아들인 박주환 씨가 최대주주(지분율 20%)로 있는 신발 수출업체 태진도 지난 2003년 10억 원을 들여 세중게임박스 지분 2.98%를 매입한 사실을 최근 확인했다.
두 사람의 ‘사업적 관계’가 알려진 것보다 복잡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검찰은 ‘대선 직후 이명박 선거캠프 인사들과 현 정권 출범 당시 몇몇 고위 관료들에게 금품을 줬다’는 박 회장의 진술을 확보하고 이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언급된 대부분 인사들이 지금 현직에 있어 이 사실이 공개될 경우 현 정권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박 회장이 임명 축하 명목으로 일부 관료들에게 상품권 등을 보낸 것 같다”며 “액수는 다르지만 많을 경우 수백만 원어치를 받은 관료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상품권 5000만 원어치를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검찰은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 관련 의혹도 짚고 넘어갈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은 박 회장으로부터 2억 원을 받은 혐의로 이미 구속된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이 의원을 상대로 태광실업 세무조사 로비를 벌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은 이를 ‘실패한 로비’로 보고 이 의원 조사에 부정적인 기류를 내비쳤지만 논란이 커지자 최근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서초동 주변에서는 ‘면죄부용 아니냐’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는 재계로까지 불똥이 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은 “몇몇 대기업들이 이권사업을 따내거나 비리 수사 등을 무마하기 위해 박 회장에게 거액의 돈을 지급한 물증을 포착하고 현재 이를 확인 중에 있다”고 전했다. 지난 정권에서 최고 실세로 통했던 박 회장의 ‘로비스트’ 역할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정권에서 비자금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A 그룹은 당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박 회장을 접촉해 이를 막으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 과정에서 거액의 돈이 전달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는 것. 검찰은 B 그룹 역시 박 회장을 통해 이권 사업 선정 과정에서 계열사가 특혜를 받은 정황을 찾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