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줄 대줄테니 술상 차려라해”
▲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중국이 어떤 나라던가. 광활한 대륙과 13억 인구, 크기나 사람 수에서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다른 환경을 가진 나라다. 그러다 보니 사업상 파트너를 찾을 때 외진 곳이라서 꺼린다면 성공의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주요 도시와 떨어진 오지의 파트너와 사업을 진행할 때 주로 이메일이나 팩스, 전화를 통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고 사업에 확신이 들면 직접 대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중국통’으로 인정받는 A 씨의 경우도 그랬다.
중국 주재원 생활 8년을 마치고 베이징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A 씨. 그는 오랜 중국생활을 거쳐 자신은 중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으로, 교민 사회에서도 요직을 맡고 있었다. A 씨도 중국 외진 곳과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통신을 이용하던 중 계약을 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직접 방문하게 되었다. 수십 시간에 걸친 기차여행 끝에 거래처에 도착, 생산설비를 둘러보고 사무실도 방문하는 등 모든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A 씨는 거래 성사에 들뜬 마음으로 중국 측 간부들과 식사와 술 한잔을 거나하게 걸치고 나자 접대비가 3000위안(약 56만 원) 가까이 나왔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계약도 성사되었고 계약금 일부가 송금되었다는 송금 영수증까지 손에 넣었으니 ‘밥 한 끼 정도야’라는 생각이었던 것.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A 씨가 기쁜 마음으로 베이징에 돌아와 은행에 확인해보니 송금되었다는 돈은 온데간데없었고 ‘전산착오인가’라는 생각에 다시 중국 거래처로 연락했지만 통신두절이었다. 말 그대로 ‘먹튀’. 돈도 돈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중국에서 사업을 해야 하는 A 씨로서는 황당하면서도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듯 계약 성사를 빌미로 접대를 받는 사기형태를 ‘바이츠바이허’(白吃白喝)라고 한다. 공짜로 먹고 마신다는 의미인데 중국인들은 계약에 급급한 한국인들의 성격을 이용해 공짜로 먹고 마실 뿐 아니라 일부는 접대를 받는 식당과 결탁, 접대비의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받기도 한다. 접대비의 20~30%에 달하는 돈을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이른바 ‘티청’(提成)은 접대 금액에 따라 다르지만 지역마다 소득의 편차가 큰 중국에서는 한 달 이상의 생활비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중국에서는 기업포털 사이트에 이런 신종 사기수법과 사기 기업을 고발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을 정도로 일상화된 일이지만 정부당국의 단속이 쉽지 않아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엔 한국에서 중국까지 날아와 바이츠바이허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 중국 내 한국기업이나 중국 교민을 상대로 바이츠바이허가 이루어진 것이 과거 형태였다면 한국 내 한국기업을 상대로 펼쳐지는 새로운 수법인 셈이다.
한국에서 견실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던 B 씨. 그는 지난 3월 초 중국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박람회를 통해 회사를 알게 되었다”며 “같이 사업을 진행해보자”는 제안이었다. 긴가민가하기도 했지만 어려운 경제 위기 상황에서 한 건이라도 건져보자는 마음이 절실했던지라 그는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팩스와 메일을 통해 사업 진행을 해오던 차, 4월 초 “직접 베이징을 방문해 사무실을 둘러보고 계약을 성사시키면 어떻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B 씨는 중국 쪽과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라 걱정되는 마음이 앞서기도 했지만 한국에서 베이징까지야 가깝기도 하고 해서 ‘유람하는 셈 치고 다녀오자’라는 생각이 앞섰다고 한다. 그래도 사업 경험이 아주 없는 사람은 아닌지라 지인을 통해 베이징에 사는 교민과 연락을 취해 유사시 도움을 받기로 했다.
B 씨가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날, 공항에는 중국 측 회사 간부 한 명과 조선족 통역 한 명, 그리고 지인한테 소개받은 교민이 나와 있었다. “먼저 호텔로 가서 짐을 풀자”는 중국 측 직원 말에 그 교민은 “먼저 회사로 가서 업무를 보시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중국 측 직원은 공항까지 마중 나온 교민을 훼방꾼인 양 못마땅하게 쳐다보면서도 이를 수락했고 B 씨는 교민과는 나중에 연락하기로 하고 중국 측 일행을 따라 회사를 방문했다.
회사를 방문해 둘러보고 “계약을 하자”는 중국 측 간부 말에 기뻐하던 B 씨. 그 간부가 “식사를 같이하고 접대하는 것이 중국 관례”라고 덧붙이자 B 씨는 흔쾌히 응했다. 중국 돈 200만 위안(3억 7400만여 원)에 달하는 계약이 눈앞에 있는데 무엇이 아까우랴. 식사를 하러 들어간 곳은 중국회사 근처의 작은 식당. 홀이 아닌 룸(중국에서 룸에서 식사를 할 경우, 룸 가격을 따로 받거나 음식가격이 홀보다 5~15%가 더 비싸다)에서 중국 측 간부 8명과 B 씨와 같이 간 직원을 포함, 10명이 식사를 했다. 식사 중 자연스레 술이 돌고 50도가 넘는 중국 바이주(白酒)에 B 씨와 한국 직원은 거하게 취하고 말았다.
한편 중국 측 직원을 따라나선 B 씨가 걱정되던 현지 교민은 수소문 끝에 식당에서 술에 취해 있다는 B 씨를 찾아 호텔로 데려왔고 몇 시간 후 술에서 깨어난 B 씨에게 전후사정을 물었다. B 씨의 이야기를 듣던 현지 교민은 “계약이 이루어졌다고 식사를 접대해야만 하는 경우는 없다”며 “접대 계산은 했느냐”고 물었고 술에 취했던 B 씨는 “돈을 낸 기억이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서둘러 자신의 지갑을 확인한 B 씨는 신용카드 영수증을 하나 찾게 되는데 8500위안(약 160만 원)에 달하는 것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결제된 영수증에 어안이 벙벙했으나 ‘뭐 계약이 성사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B 씨. 그는 “중국에서 사업을 빌미로 이런 사기가 만연하고 납치 등 더 큰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는 현지 교민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당연히(?) 그 중국 측 사람들은 연락두절이었다.
이처럼 중국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한 사기가 쉽게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지리적으로 중국과 한국은 매우 가깝다. 인천에서 베이징까지 1시간 40분 정도면 도착한다. 게다가 저가 항공편이 많은 노선이기도 하다. 물가도 한국에 비해 저렴하다. 언어 소통에 어려움을 해결해줄 조선족이 많아 통역을 구하기도 쉽다. 그러나 이러한 유리한 조건이 중국에서 사업할 때 도리어 발목을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국 비즈니스를 할 때 유리한 조건을 생각하기보다는 넓은 지역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에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우선 감안해야 한다.
중국 베이징=곽다연 일요신문차이나 기자duojuan1223@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