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짐도 벅찬데 우리 짐까지…’
▲ 끄응… 지난해 10월 국민연금공단의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박해춘 이사장. 국민연금공단과 우리은행 CI 합성.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구조조정 전문가, 기업회생의 달인….’
서울보증보험 LG카드 우리은행 등을 맡으며 과감한 구조조정과 실적 개선으로 화제가 됐던 박해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게 붙여진 별명들이다. 이 때문에 박 이사장은 일부의 낙하산 인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불신이 팽배해 있는 국민연금공단을 개혁할 적임자로 평가받으며 지난해 6월 17일 취임, 이제 1주년을 앞두고 있다.
박 이사장의 국민연금은 그러나 시작부터 삐거덕거렸다.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기금운용본부 인사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수익률에 집착한 나머지 무리한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시 기금운용본부의 한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주식투자 확대에 대해 반대가 우세했지만 그러한 의견들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결국 국민연금공단은 지난해 주식투자로만 19조 원의 평가손을 입었고 박 이사장은 국회 국정감사장에 불려나와 여야 의원들로부터 질책을 들어야 했다. 다행히 채권투자에서 선방해 지난해 마이너스 수익률은 면했지만 고위험을 수반하는 고수익 위주의 연기금 운용을 불안하게 보는 시선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월 초 금융감독원이 ‘우리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6월 8일 실시한다’고 밝히면서 박 이사장에게 또 한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금감원이 2006~2008년 사이에 우리은행이 입었던 1조 6000억 원가량의 파생상품 투자손실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2007년 3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우리은행장을 역임한 박 이사장에게 불똥이 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금감원은 이미 사전검사를 통해 ‘당시 우리은행 최고위층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파생상품 투자 결정이 박해춘 이사장 재임 전에 이뤄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후 리스크 관리 등 책임져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는 박 이사장 전임인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 역시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그동안 박 이사장과 황 회장 측은 ‘파생상품 투자 결정은 취임 전에 이뤄진 것으로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고 해명해왔다.
금감원은 투자 손실뿐 아니라 지난 2007년에 벌어졌던 은행들 간 출혈 경쟁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들끼리 부동산 대출 카드사업 등을 놓고 지나친 경쟁을 벌여 자산 부실화를 초래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 이사장의 책임 유무를 가리는 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이 해에 LG카드 사장에서 우리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긴 박 이사장은 취임 당시 “신용카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영업부문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을 만큼 카드사업에 애착을 보였다. 박 이사장은 야심작 ‘V카드’를 선보이며 ‘카드대전’의 불을 댕겼고 열세를 면치 못했던 우리은행 카드부문을 급성장시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은행들이 일제히 카드사업에 ‘올인’하는 ‘쏠림현상’이 일어났을 뿐 아니라 불법 영업 등도 빈번하게 이뤄졌을 것이란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한 외국계 은행의 지점장은 “2003년 카드대란을 연상케 할 정도로 경쟁이 과열됐다. 그 시작이 우리은행이라는 게 금융권의 지배적인 시각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금감원 역시 박 이사장이 진두지휘했던 카드영업 등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은행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우리금융지주의 최대주주(지분율 72.97%)인 예금보험공사(예보)의 움직임도 박 이사장을 곤란에 빠트릴 가능성이 있다. 예보는 금감원과 별도로 지난 5월 말부터 우리은행에 대한 투자 손실 등과 관련해 자체적으로 점검에 나섰고 일부 임원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점검 결과를 금감원에도 통보했다고 한다. 예보 관계자는 “최대주주로서의 당연한 역할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사원 역시 박 이사장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박 이사장이 우리은행장 재직시 몇몇 기업들에게 부당한 대출을 해줬다는 제보가 있어 확인 중”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 측은 공식적으로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 관련 내용은 지난 3월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감사하던 도중 우리금융지주 관계자들로부터 전해들은 것이라고 한다. 감사원은 지난 3월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우리금융지주 회장 재직시 컨설팅 용역업체를 부당 선정하고 한미캐피탈을 인수할 때 적정한 가치 평가 없이 매각사가 제시한 고가의 인수가격을 그대로 수용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박진만)가 감사원이 보낸 자료를 검토 중이다.
이러한 금감원 예보 감사원 등의 파상공세는 현 정권이 박 이사장을 바라보는 시선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승승장구했던 박 이사장은 정권 교체 후 ‘변방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200조 원이 넘는 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를 거머쥐었다. 이를 두고 ‘친 MB계’ 인사인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의 추천이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박 이사장을 ‘전 정권 사람’으로 보는 현 정권 인사들의 시각이 바뀐 것은 아닌 듯하다. 특히 올 들어 연기금 운용 등을 놓고 정부와 마찰을 빚으면서 양측의 사이는 더욱 소원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정권 초반 인재풀이 좁다 보니 실력이 검증된 박 이사장에게 국민연금공단을 맡겼지만 결국 우리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청와대가 박 이사장과 거리두기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공단 안팎과 정치권 일각에서 박 이사장의 교체설이 불거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정부 측 기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소속 한 국회의원은 “아직 임기 초반인데도 불구하고 청와대를 중심으로 박 이사장 사퇴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연기금 운용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한 시선이 반영된 것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공단 측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