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에 투자하는 게 결국 ‘남는 장사’
▲ 경기 침체로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들이 고용지원센터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
▲ 송복순 씨 | ||
풍년집은 서울 강남구 잠원동 먹자골목에 위치한 198㎡(60평) 규모의 소갈빗살 숯불구이점이다. 최근의 경기침체에도 월매출 3000만~3500만 원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는 이곳은 10년여 전 송복순 씨(여·62)가 생계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33㎡(10평) 남짓한 허름한 식당이 모태다. 평범한 주부이던 송 씨는 남편 사업이 어려워져 아르바이트로 친구가 하는 식당에서 일을 돕다 그 식당을 인수한 것.
당시 그가 택한 메뉴는 인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3500원짜리 가정식 백반과 1인분 6000원짜리 저렴한 소갈빗살. 평범한 아이템이었지만 그는 정성으로 차별화를 선언했다. 가정식 백반은 국과 찌개의 종류를 매일 바꿔서 내놨고, 반찬도 푸짐한 양으로 여섯 가지를 준비했다. 식후에는 따끈한 누룽지를 제공하고, 밥은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어머니의 손맛이 가득한 백반에 직장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단다.
송 씨의 가게는 입소문이 나면서 점심시간이면 손님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점심의 열기는 저녁에도 이어졌다. 비록 수입육이지만 최상위 등급의 고기만을 사용했고 주문과 동시에 즉석에서 양념을 해 내놨다. 또 주 고객인 남성들을 위해서 무침상추를 만들었는데 냉면 그릇에 담겨 나오는 무침상추에 젓가락만 사용해서 고기를 싸먹는 편리함에 고객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남들은 어렵다는 IMF시대였지만 넉넉한 인심과 다양한 노력으로 오히려 가게의 규모를 넓힐 수 있었다. 하지만 즐거움은 잠시, 첫 번째 광우병 파동에 직격탄을 맞았다. 손님이 눈에 띄게 줄고 매출 또한 급격히 떨어졌다.
“가게를 시작해 3~4년 동안 정신없이 앞만 보면서 달려왔죠. 갑작스럽긴 했지만 이런 위기 상황이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위기 상황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삼고, 다른 음식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다른 점포의 색다른 메뉴를 먹어보고 맛있는 것은 기억해뒀다가 자신의 가게에 접목시켰다. 새롭게 등장한 메뉴와 그의 넉넉한 인심을 기억하는 고객들은 한 달쯤 지나자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시련은 또다시 찾아왔다. 2003년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으로 큰 타격을 받은 것.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전량 금지되면서 이번에는 수요와 공급에서 동시에 어려움이 발생했다. 고기값이 천청부지로 치솟아 손님이 와도 고기가 없어 장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주변의 수많은 경쟁점포들이 문을 닫았다. 결국 다른 메뉴를 추가하는 것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한 끝에 돼지갈비를 새로운 메뉴로 내놨다. 양념 돼지갈비를 맛본 손님들은 조금씩 다시 가게로 되돌아왔다.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2005년에는 건물주로부터 건물을 인수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장수 창업의 비결을 송 씨에게 묻자 “장사란 10배 남을 수도 있고 밑져서 망할 수도 있다”며 “고객을 돈으로만 본다면 오래 갈 수 없고, 넉넉한 인심이 꾸준한 고객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라는 평범한 진리가 답으로 돌아왔다.
▲ 최용길 씨 | ||
최용길 씨(58)는 맥주전문점으로 10년째 지하철 7호선 신풍역 3번 출구를 지키고 있다.
“주변에 수많은 점포가 생겼다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 왔습니다. 유행을 뒤쫓으면 오래갈 수 없더군요. 그렇다고 변화가 없으면 안돼요. 도태되기 십상이죠. 기본을 지키되 성장을 위한 노력은 꾸준해야 합니다. 10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10년 전 그는 20년이 넘도록 근무한 건설회사가 IMF로 부도를 맞으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운영이 가능하고 꾸준한 영업이 가능한 아이템으로 맥주전문점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렇게 2000년 12월 신풍역 상권에 새롭게 등장한 생맥주 전문점은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잘된다’고 하면 곧 유사업종이 생겨나게 마련. 저가를 내세운 유사업종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손님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매출이 떨어지자 최 씨는 손님을 다시 끌어오기 위해 경쟁업체처럼 가격을 내려야 할지, 아니면 업종을 전환해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메뉴 가격을 낮춰 수익성을 떨어뜨리거나 투자금을 회수하기도 전에 다른 업종으로 바꾸는 것은 더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승부수를 던졌다. 오히려 매장 업그레이드와 동시에 파격적인 이벤트를 실시한 것. 편안한 인테리어로 바꾸고 당시로서는 상당한 금액의 상품을 준비했다. 손님들은 다시 몰려들기 시작했다.
‘변화’가 빠져나가는 고객을 잡았다면 꾸준한 고객을 만드는 비결은 따로 있다고 한다. 바로 변화 뒤에 숨은 지속적인 관리라고. 그의 점포는 기껏해야 2~3년 운영한 것처럼 깔끔한 모습이다. 이를 위해 쓸고 닦는 청소는 기본, 벽 천정 등 지저분해지고 벗겨진 페인트는 수시로 다시 칠한단다.
그중에서도 그가 특히 신경을 쓰는 것은 생맥주 관리다. 생맥주 전문점의 경쟁력은 바로 ‘톡 쏘는 신선한 맥주 맛’에 있기 때문이다. 생맥주관 청소는 10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실시하고 있다.
최 씨는 “장사가 잘 될 때 프랜차이즈를 그만두고 개인 브랜드로의 전환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하지만 비용절감의 득보다 간판을 내려서 잃는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해 마음을 접었다고. 다만 현재 99㎡(30평) 남짓한 매장을 더 크게 넓히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단다.
그는 장수 창업의 비결로 “어려울수록 변화와 투자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소비자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 과도한 투자나 지나친 변화는 오히려 독이 되어 망하는 지름길로 이어질 수 있으니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ilyo.co.kr